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 제38회 졸업식
오늘 11시부터 우리 의과대학 졸업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의대증원 이슈로 학생들의 동맹휴학 신청과 전공의들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어서 오히려 예년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네요. 별 일이 없었으면 작년 졸업식 축사를 조금만 바꿔서 사용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결국 지금의 상황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여 큰 폭의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졸업식에서 나눈 축사입니다
축사(祝辭)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기쁘고 즐거워야 할 졸업식인데, 참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불러 온 갈등의 한 가운데에서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로 사직과 동맹휴학 등의 방법으로 전공의들과 의과대학생들이 입장을 표명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배이자 의사로서, 그리고 의과대학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학장으로서 참담(慘憺)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정부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서 물러나 전향적인 자세로 의료계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대화와 타협의 창구를 열어서 이번 사태가 슬기롭게 해결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를 위해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힘껏 감당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일상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일은 중요합니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듯이, 잎들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싹이 돋듯이 삶은 언제나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의 명예로운 졸업과 의사국가고시 합격을 그 어느 해보다 기꺼운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학부모 여러분, 귀한 자녀가 의과대학을 무사히 졸업하여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시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오늘 이 자랑스러운 자리가 애쓰신 세월을 조금이나마 보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을 우리 학교에 보내주시고 저희가 가르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졸업생 여러분, 시작부터 쉽지 않기는 하지만, 여러분은 이제 학생이 아니라 어엿한 한 사람의 의사로서 많은 환자와 동료 의료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근무하는 진료 현장에서 의연하고 겸손한 태도로 의술을 펼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잘해 오셨듯이, 어느 곳에서든 스스로를 믿고 꾸준히, 힘껏 정진해 나가십시오.
하지만 온전한 실력과 인품을 갖추어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과정이 남아 있고 그만큼 많은 선택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할 때 부디 두려움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 속 깊은 열망을 따라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정확한 출처를 찾지 못하였습니다만, “너의 발이 전쟁터에 있어도 네 가슴에는 장미꽃이 피게 하라”는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참으로 만만하지 않음을 파국(破局)적으로 겪고 있는 시기이지만, 의사는 보람 있고 숭고한 직업입니다. 아픈 이들을 돌보고, 출생(出生)과 임종(臨終)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특권(特權)입니다. 부디 그 특권을 경제적인 보상만으로 축소시키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비록 힘이 들고 고달프지만 의사로서 행하는 업무 자체가 여러분 삶의 기쁨이고 보람이었으면 합니다.
의사들의 권위와 사명감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것 같은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일이 참으로 안타깝고 공허한 것 같지만, 처음에 말씀드렸듯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고 우리들 각자의 자존(自尊)과 품위는 누군가가 대신 세워 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다시 한 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수라는 이유로 여러분에게서 분에 넘치는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어서, 여러분의 선생일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고단하지만 빛나는 여정(旅程)을 시작하는 여러분의 앞길이 더욱 아름답고 충만하게 펼쳐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24. 2. 23.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강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