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잔액의 영성(靈性)
요즘은 모바일 뱅킹과 인터넷 뱅킹이 편리해져서 은행에 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계좌 이체도, 적금 가입이나 해지도 모두 스마트폰으로 가능하지요. 저는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주식을 포함한 금융 투자도 손끝에서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월급을 받으면 아내 계좌로 이체하는 일, 경조사에 축의금을 보내는 일이나 관련 모임에 회비를 내는 일도 모두 스마트폰으로 하게 됩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대금을 지불하는 일도 온라인 상에서 카드 번호를 입력하는 걸로 완료하게 되지요. 아마 대부분 그러하시리라고 짐작합니다.
택배로 물건을 받거나 해서 실제로 물질로 드러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은 그저 숫자들이 오고 가는 것일 뿐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쉽게 그것을 자산이나 현금으로 인지하지요. 그래서 스마트폰에 찍힌 숫자가 크면 왠지 안심이 되고, 마이너스 통장의 잔액 표시에 뺄셈 기호가 붙으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실물화폐를 주고 받을 때는 그보다 더 숫자에 매였겠지요. 그래서 여전히 큰 금고 안에다 현금 다발을 넣어 두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나 봅니다.
금덩이를 땅에 묻어두고 매일 들여다 보면서 기뻐했다는,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금이나 돌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그것을 도둑맞은 자리에 돌덩이를 묻어두고 기뻐하면 된다고 한 이솝 우화가 떠오릅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물질이 필요하고 자산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필요한 것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가져야만 제대로 살고 있다는 강박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시장경제 구조 아래에서, 역설적이게도 숫자들만으로 재화의 크기와 이동을 보여주는 전산화된 금융 시스템은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관념이 그저 환상일 뿐임을 오히려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크게 부족하지는 않지만 많이 넉넉하지도 않은 규모의 경제적인 삶을 꾸려 왔습니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무언가를 많이 쌓아놓고 살아 보지는 못했다 싶은데, 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의 앞길을 지키시는 그분의 돌보심을 더 깊게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무언가가 생긴다면 필요해서 생기는 것이고 생기지 않는다면 필요치 않아서 그러한 것이겠지요. 기도 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청하기는 하지만, 나의 욕망을 신(神)이 허락하시는 필요와 착각하지 않는 것, 매일매일 그 간극(間隙)을 기억하고 돌이키는 것이 또한 기도이고 수행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