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취미를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즉흥적으로 끌리는 무언가가 생기면 반짝 흥하고 금방 싫증을 내거나, 해보지도 않고 그저 머릿속 상상에만 그치기 일쑤다.
내가 꾸준하게 즐기지 못한 이유를 변명해 보자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권태와 무기력 때문이다. 무기력이 찾아오는 시기에는 도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시체놀이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람들과의 대화에 끼려면 맛보기 정도에 그친 취미들에 대해 이것저것 아는 체 정도 해본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우와, 꽤 많은 걸 해봤네요. 취미가 많은데요." 같은 반응을 보인다.
속 모르는 소리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과 아이디어들은 한 여름 햇살처럼 뜨겁게 끓어오르는데 실상은 에어컨 아래 침대에 드러누워 차갑게 식어버린다.
취미 이야기가 긴 대화로 이어지면 이내 밑천이 드러난다.
꾸준히 무언가를 배우고, 움직여왔는데 항상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듯한 나 자신으로 마주할 때마다 허무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제자리걸음이더라도 계속 걸어가야 한다.
무료한 일상에 취미나 소소한 즐거움마저 없다면 우울한 삶일 것이다.
언젠가 [유퀴즈 온더블록]에서 유재석이 아나운서 강지영의 인생관에 공감하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냥 버텨야 한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갈 수밖에 없다. 사방에서 돌을 던져도 맞고 가는 수밖에 없다. 돌을 맞고 주저앉는 순간, 거기가 끝이다."
2024년 7월 설렘과 긴장 가득 한국무용 학원에 들어섰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학원 입구에 초인종이 없었다.
문을 똑똑 두드려 봤지만 인기척이 없어 순간 잘못 찾아온 건가 싶은 마음에 당황했다.
잠시 후 선생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수줍어하는 듯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뭔가 모를 친근감이 들었고, 어느새 긴장이 조금 풀렸다.
들어선 학원은 전반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깔끔했다. 곳곳의 작은 소품들로 감성을 더했다.
상담실 겸 휴게공간을 지나 연습실 안은 두 벽면에 큰 전신 거울이 있었다. 가끔 아이돌의 안무 연습 영상을 볼 때 보던 장면이었다. 기분이 들떴다.
주변에는 한국 무용 학원과 어울리는 장구, 삼고무 북, 부채, 버선 등이 보였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상담이 시작됐다.
학원 수강생들이 촬영한 한국무용 댄스 필름들을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수업내용과 방향을 설명했다. 영상 속 한국무용의 우아한 춤사위와 영상미에 심장이 뛰었다. 제주도며 사극 드라마, 영화 촬영지 같은 장소 섭외부터 촬영, 편집, 인스타나 유튜브에 영상 업로드까지 모두 직접 하신다고 하니 더욱 믿음이 갔다.
'한국무용 댄스 필름 촬영'
새로운 로망과 버킷리스트가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우선은 몸에 안 맞을 수도 있으니 기초반 한 달만 들어보고 계속할지는 그때 결정하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 홀린 듯 20만원 일시불 결제를 했다.
서른다섯 살에 취미 한국무용을 처음 배우기로 결심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몸도 마찬가지다. 몸도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게 된다. 성격과 인성은 ‘표정’에서 드러나고, 생활과 성실함은 ‘체형’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살이 찐 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근육으로 단단한 몸이 아니었다. 마른 비만이다.
매년 건강검진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갈수록 오랜 시간 많은 움직임이 버겁고 숨이 찬다.
오래된 배터리 마냥 충전시간은 길어지고, 금방 방전되는 듯하다.
몸을 단련하기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이란 걸 처음 시작한 건 스물다섯 살이 넘어서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투자하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을 때부터이다. 여러 운동을 골고루 방황했지만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요가와 필라테스는 운동의 강도는 적당했지만 조용해서 지루했다.
피트니스는 1 대 1 PT 수업을 해봤지만 나의 저질 체력과는 맞지 않는 고강도의 운동이었다.
수영은 생존 수영 정도 배워보려고 시작했다가 물의 공포와 비염으로 인한 호흡곤란 이슈로 물과는 맞지 않는 체질임을 알고, 앞으로 평생 물가 가까이 가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그만뒀다.
그나마 에어로빅, 방송댄스, 1일 발레 체험을 했을 때는 즐거웠다.
운동을 재밌게 할 수도 있구나. 노래 한 곡에 맞춰 칼군무를 완성했을 때 성취감도 있었다.
음악과 함께 하는 운동, 반복되지 않는 동작들로 몸이 자유로웠던 운동이 가장 흥미로웠던 기억이다. 하지만 그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운동이랑 담을 쌓고 살던 어느 날 인스타 알고리즘 속 우연히 한국무용 릴스를 보게 됐다.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내적 댄스가 꿈틀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관심이 생겼다.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다 그 영상 아래 친구의 인스타 아이디가 이 영상을 좋아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같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혼자서는 선뜻 시도하기 힘든 일을 함께할 동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친구에게 연락했다.
“우리 한국무용 배워볼까?”
친구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연락이 왔다.
“우리 한국무용 배우러 갈까?”
일단 질렀지만 나 역시 망설였다.
불규칙한 직장 근무시간에 수업 시간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았고, 한국무용 학원이 부산에 많지 않아 발품을 팔아 집과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을 다녀야 했다. 그리고 1회 수강료 역시 싼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끈기였다.
과연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이 설렘과 열정이 얼마나 갈까? 금방 싫증 내고 못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고민들로 도전을 망설였다. 잦은 조기 중도 하차에 스스로에게 실망만 늘어가다 보니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 시간과 돈 낭비하지 말자며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는 성향으로 변했다.
그러다 하루하루 단조로운 일상에 점점 재미가 없어지고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새로운 경험보다는 반복되는 경험이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이론이 있다.
청춘과 멀어지는 나이이고, 몸을 사리고 주저하는 일이 많다는 생각에 회한이 밀려들었다.
일단 질렀지만 미적지근 한 내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 듯 유달리 더 의욕적인 친구의 모습을 보며 다시 마음을 잡고 용기 내어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심리적 에너지 수준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린 시절 꼭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보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 숫기없고, 조용하던 나.
다니던 중학교는 한국무용 특성화 학교였다. 학교 강당 안무실에서 한국 무용을 연습하던 언니들을 볼 때면 부럽고, 예뻐 보였다. 바짝 빗겨 올린 머리에, 하얀 무용복과 버선을 신고 장구 소리에 맞혀 춤을 추는 모습에 홀딱 반했었다.
지금도 무대 위에 노래하고 춤을 추며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동경하고 부러워한다. 어쩌면 내가 평소 뮤지컬을 좋아하고, 아이돌을 덕질하는 이유가 설명되는 순간이다.
‘나도 저렇게 무대 위에서 공연해 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튀진 않았지만, 주목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나도 사람들 앞에 서서 주목받던 경험들이 있었다.
유치원 때 재롱잔치 준비로 춤 연습을 하던 날.
선생님은 나를 친구들 앞에서 세워 춤 보조를 시켰다. 아이들이 나를 보며 춤을 따라췄다. 그땐 쑥스러운 감정보단 인정받고, 주목받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학예회 날, 영어 노래에 맞춰 수화를 하는 무대에 섰다. 그 공연을 위해 한달 전 부터 친구들과 방과 후 남아서 연습을 했었다. 한 팀이 된 듯한 소속감과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취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는 체육 수업시간에 조를 나눠 방송댄스를 추는 실기 과제가 있었다.
당시 우리 조는 가수 ‘보아’의 ‘아틀란티스의 소녀’라는 노래에 맞춰 댄스를 연습했다.
당시 아바타가 춤추는 영상을 따라 안무를 따라하는 게 유행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각자 집에서 동영상을 보고 연습을 해오면, 학교에서 만나 몇 번 맞춰보는게 다였다.
실기 발표 당일, 나는 가장 앞 줄에 서서 친구들을 이끌었다. 친구들보다 춤추는 것에 진심이었는지, 생각보다 잘 췄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꽤나 놀란 표정들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그린빈’이라는 음악 동아리에 들어갔고, 연말 학교 행사에 노래를 부르는 공연을 했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은 최초이자,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나에게도 이런 무대 경험들이 있었구나!'
현재, 잠들어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깨어날 때마다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떠올리며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 또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서른다섯 살에 취미 한국무용을 처음 배우기로 결심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권태와 무기력의 시간을 버티며, 그래도 멈추지 않고 걸어가야만 하는 삶인지라 잠들어 있던 내 안에 열망 가득했던 옛 기억들을 떠올리며 현재를 주저 하지 말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단조롭기만 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 넣기로 했다. 이제 한 발을 내디딘 한국무용의 세계에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