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드레스에 화관을 쓴 작은 여자애가 있었다. 소녀는 떨린 마음으로 '생애 첫 성체를 영'했다. 조심스럽게 걸어서 자리에 앉았다. 두 눈을 꼭 감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기도를 했다. '우리 엄마 아빠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첫영성체의 기도는 꼭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의 기도도 이루어졌다.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부모님은 올해 여든여덟 살, 여든일곱 살이 되셨고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
내겐 아들이 있다. 하늘이 보내주신 고귀한 선물, 첫아이 ‘빅터’이다. 태아 빅터를 조심히 담고 살았다. 태아가 3개월쯤 자랐을 때 초음파 검사를 했다. 의사 표정이 심상치 않고 검사 시간도 길었다. 검사 결과 아이의 콩팥 한쪽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빅터는 콩팥을 하나만 가지고 태어났다.
빅터는 조심스럽게 자랐다. 어른에 순종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뭐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마음이 따뜻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다. 건강이 염려되었지만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성인이 된 빅터는 독립해서 서울에 살기를 바랐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감히 떼어낼 용기가 없었으나 현실을 받아들였다.
빅터는 독립한 1년 동안 바쁘게 살았다. 스펙을 쌓기 위해 일을 많이 했고, 대충 먹었다. 담배를 피웠다. 몸무게가 10kg 가까이 늘었고, 어지럼증을 여러 번 겪었다. 불면증이 생겨 신경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 혈압도 130을 넘었다. 백병원 한** 교수님이 신신당부하신 건전한 생활 습관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빅터의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나의 어두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종착지까지 닿았다. 가슴이 뛰고 숨이 막혔다. 자식을 챙겨주지 못한 자책으로 한숨도 못 잤다. 간절한 기도가 쉼 없이 나왔다. 첫영성체 기도가 떠올랐다.
“하느님, 제 생에서 두 번째 첫영성체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빅터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100살까지 살게 해주세요!”
친구들과 자식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크고 작은 걱정거리를 한마디 이상씩 말했다. ‘자식 앞에서 엄마는 영원한 을(乙)’이란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또 말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무조건 천당 가야 해!”
친정엄마가 전화했다. 빅터 때문에 걱정이 많단다. 한편으론 ‘우리 딸이 고생하니 빅터가 괘씸하다’고 했다. 엄마는 자기 자식 걱정이 더 크다. 엄마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