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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다시 Feb 22. 2023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집을 나서기 전 부랴부랴 만두를 먹었다. 저녁 식사를 못할 것 같아서 바쁜 참에도 입에 쑤셔 넣었다. 모임 끝나고 집에 와서 먹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늦어지면 소화에 부담이 생겨 부대끼기 때문에 나름대로 계산한 것이었다. 

 여섯 명이 모임을 했다. 모임이 끝나고 한 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언니가 말했다.

 “우리 집에서 우동 먹고 가!”

 여섯 중 한 명이 동의했다. 그가 말했다.

 “언니의 호의를 무시하지 말자. 우리 함께 가자!”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일정이 있는 이도 있었고, 나처럼 저녁을 먹고 온 이도 있었으며, 피곤해서 집에 빨리 가고픈 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언니 집에 갔다. 언니는 시원한 멸치 육수에 어묵을 넣어 국물을 더 진하게 우려냈다. 우동 면발은 쫄깃하게 잘 삶아졌다.

 “난 안 먹어!”

 사람은 여섯이었지만 면기는 다섯이었다. A가 먹지 않겠단다. A는 저녁을 이미 먹었고 집에 가면 바로 자야 해서 먹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우린 국물 몇 모금이라도 먹기를 권했지만 A는 한 방울도 먹지 않았다. 난 이미 집에서 만두를 많이 먹어 조금만 먹고 싶었지만, 먹기를 거절하면 집주인 언니에게 기쁨을 주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감히 안먹겠단 말을 못 했다. 또 함께 먹고 있는 일행의 좋은 분위기에 방해될까 봐 목구멍까지 배가 불렀지만 차마 먹기를 그만두지 못했다. 

 우동 먹기가 끝나자 집주인은 각종 후식을 내왔다. 콜라비, 샤인머스캣, 파인애플, 사과, 귤, 과자 등. 

 “배불러 죽겠는데 과일은 왜 이리 많이 내놔?”

 우린 진짜 마음에 있는 말을 했다. 모두 배가 불렀다. 후식은 안 먹어도 됐다. 그런데 손님이 먹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집주인 언니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우린 과일을 입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어 몇 번만 오물거리며 삼키곤 했다. 우동과 어묵에 이어 이번엔 샤인머스캣 대여섯 방울과, 콜라비 네댓 조각, 파인애플 두 조각이 내 위장에 차곡차곡 쌓였다. 평소 소화력이 약해서 쉬이 체기가 생기는 내 몸은 밀려드는 음식에 소화를 시키느라 크게 무리하고 있었다.

 “과일 한 조각만 먹어봐.”

 아까 우동을 먹지 않은 A에게 우린 과일이라도 입에 대라고 친절을 위장한 ‘먹기 강요’를 했다. 늦은 저녁에 우리만 과식하는 일이 억울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절대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의 굳셈이 부럽기도 하면서 괘씸하기도 했을 것이다. 절대 먹지 않고 있는 A는 몇 년 전에 과체중과 고혈압으로 건강에 이상이 생긴 후로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고 했다. 우린 A의 의지를 칭찬했지만, 한편으론 우리에게 없는 의지를 가진 그를 질투하거나 또는 우리처럼 나쁜 길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한 것 같다. 

A를 뺀 우리는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 불쌍해지지 않으려면 A도 우리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A는 끝까지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먹기를 거절한 A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끝까지 소신을 지켰다. 동시에 건강도 지켰다. 


 “술 하세요?”

 “아니요, 전 못해요.” “저도 술 안 마십니다.”

 몇 명이 술 받기를 거절했다. 어르신이 나에게 왔다.

 “한 잔 받으세요.”

 “아, 네.”

 방금 전 사람들에게 술을 권할 땐 조심스러운 모습의 어르신이 내 앞에선 전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술을 따랐다. 나도 앞사람들처럼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르신의 단호함에 거절할 틈을 놓쳤고 잔을 내밀고 말았다. 

 왜 어르신은 내 앞에선 망설이지 않았을까? 왜 난 먹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고 술을 받았을까? 어르신이 나에게 술을 따라준 것보다, 내가 술을 먹겠다고 이미 마음을 먹은 것이 먼저인 것 같다. 

 어르신은 단체여행팀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어르신의 표정은 늘 평화로웠고 꼭 다문 입술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된 여행 일정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즐겁게 참여하셨다. 여행 마지막 식사에서 어르신은 소주 한 병을 따로 주문하셨고, 테이블을 돌며 술을 한 잔씩 권했다. 어르신은 팀의 연장자로서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위장병 환자인 나는 건강을 생각해서 앞사람들처럼 술을 받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난 이미 어르신이 소주를 주문할 때부터 한잔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내가 알지 못한 일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의 ‘마음먹기’는 주변인이나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흐지부지되는 일이 다반사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배는 명치부터 배꼽 아래까지, 양쪽 갈비뼈를 감쌀 정도로 불러 있다. 불쌍한 내 위장은 오늘밤을 넘겨 내일 새벽까지 일할 것이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 많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 아니라, 이미 거절하지 않아야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먼저이다. 백 가지 중에서 아흔아홉 가지는 확고하고 한 가지만 흐지부지해도 거절을 못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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