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adame Kyu
Oct 03. 2023
대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 그 짧은 순간에 이미 안다. '엄마가 집에 없다'. 어릴 때 나는 학교 끝나면 좀처럼 다른 길로 새지 않고 곧장 집으로 왔다. 학교에 있는 그 몇 시간을 성실하게 채우고 나서는 하교할 때가 되면 엄마가 보고 싶어 져, 집에 가는 길, 전속력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 유별난 그리움은 집이 주는 안온함에 대한 갈구였고, 엄마는 우리 집만의 특별한 공기를 만드는 존재였기에 나에게 집은 엄마였고, 엄마가 곧 집이었다. 나는 나의 자매들에 비해 훨씬 더 엄마 아빠 품을 파고드는 막내였다. 게다가 마음에 조금의 허전함도 참지 못하는, 심하게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니 때로는 대문에서부터 "엄마"를 목청 껏 부르며 들어온다. 그 시간 즈음 엄마는 집안일을 하거나, 때로는 낮잠을 자기도, 친구분들과 다과를 즐기기도 했다. 엄마가 무엇을 하든지 나는 집에 엄마가 있으면 그걸로 방과 후의 일과를 온전히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 엄마가 없다.
'집에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는 집안의 공기. 내 허파에 차오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집은 마치 오래전부터 집이 아니었던 듯, 그곳은 이내 적막하고 쓸쓸한 빈터가 된다. 고요함이 공허함이 되면, 어린애는 마치 그 공간을 소음으로 채우려는 듯 눈물도 나지 않는 울음을 터트리며 울기 시작한다. 신파가 따로 없을, 목놓아 울부짖는 '엄마', '엄마'.
그 소리는 동네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 같았고, 붉은색 대문집 막내 딸내미 집에 도착, 또 제 엄마를 득달같이 찾는다는 공습경보 같은 것... 엄마는 그 소리에 앞집 아니면 옆집에 있다가 냉큼 달려오곤 했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한창 재밌었을 수다도 중간에 끊고 내게 와줬던 것이다.
엄마가 있어야 되는 집. 그 공기가 너무나 포근했기에 난 엄마의 그 근사한 능력을 이어받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내 집의 공기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