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시오.

<나만 볼 수 있는 것>

by 결의

하기 싫은 것은 티가 난다.


나는 지금 글쓰기가 싫다.

글을 쓰다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다른 생각으로 빠지고,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리고, 별로 흥미롭지도 않은 지난 일상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나만 볼 수 있는 것? 그게 뭐야

그게 뭐 대단하기나 한가?

좀 더 넓게 생각해 볼까?

나만의 생각과 행동들? 그게 무슨 가치를 지니지

주제가 그렇다면야


뭐 굳이 말하자면, 내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모습은 나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

굳이 또 말하자면, 어정쩡하게 친했던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못 본 척하려고 굴러가는 눈동자?

뭐 또 굳이 말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

또 뭐 굳이 말하자면, 가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

뭐 또 굳이 말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열정을 숨기는 거?

뭐 또 굳...


이런 건 나만 아는 비밀이지

이런 치부를 말해서 화가 난다던가 부끄럽지는 않지만

굳이? 싶은 것들

뭐 이런 걸 나만 안다고 해서 혹은 남이 알게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나

그냥 사는 거지

지금 글쓰기 싫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게 티가 났다면 그냥 넘어가 주라

갑자기 랩이 하고 싶어졌어


<그치, 하기 싫으면 티가 나지

근데 왜 하기 싫은지는 나만 알지

아무도 왜?라는 궁금증, 가지지 않지>



아, 내가 미워하는 애한테 방금 카톡이 왔어

원래는 되게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그냥 미워하게 되는 건 정말 한순간이더라

그거 알아? 미우면 더 신경 쓰이고 더 보게 되는 거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그래서 난 걔의 많은 모습을 봤어


그 친구의 말투, 습관, 웃음소리, 머리 만질 때 팔 동작, 나를 볼 때 표정,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는 표정, 또는 다른 사람들한테 대하는 행동, 기침 소리, 걸음걸이, 허리의 굽은 정도, 발걸음, 걸을 때 어깨는 얼마나 흔드는지 등등 소름 끼칠 정도지?

그래서 가끔 멍 때리면서 그 친구를 보면 내가 사실 걔를 좋아했던 건 아닌지 헷갈린다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을 쫓는 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내 시선은 미운 그 친구를 향해 있으니까


근데 극도로 미운 것과 극도로 좋아하는 것은 그러니까.. 극과 극은 남들이 보기에, 어쩌면 내가 자각하기에도 구분하기 힘들 때가 있는 것 같아


그냥 내가 멍청한 건가


어쩌다 보니 나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생겼어

미워하다 보니 내 눈에만 보이더라

걔의 힘든 표정이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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