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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Oct 19. 2022

긁지 않은 복권의 동전 같은 한옥 카페 '지은'.

서울의 한옥 카페와 다른 매력을 가진 청양의 한옥 카페.

서울에는 한옥 카페가 많다. 테마가 ‘한옥’이라 분위기나 인테리어는 비슷비슷하지만, 동네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최근에는 서울의 한옥 카페가 아닌, 충남 청양의 한옥 카페를 방문했다. 청양은 출렁다리와 알프스마을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유명한 관광지역은 아니다. 그런 지역의 작은 마을에 있는 한옥 카페는 숨어 있던 보물 같았다. 




충남 청양군 남양면에 위치한 한옥 카페 ‘지은’은 문화재로 지정된 방기옥 가옥에서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카페 공간이 따로 있지만, 공간이 협소하여 손님 대부분은 음료를 가지고 방기옥 가옥으로 간다. 


방기옥 가옥은 1985년 충남 문화재자료 제279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전통가옥이다. 이곳에는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보호수)도 함께 살고 있다. 1776년에 조선시대 판서를 지낸 조대감이 지었으며, 방기옥은 현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옥 카페는 후손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커피 외에 전통차도 있어서 한옥 체험을 하며 전통차를 마실 수 있다. 



카페에서 주문하고,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제일 먼저 다락이 눈에 들어왔다. 사극에서나 익숙한 모습의 다락을 보니 TV를 보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인테리어 소품이 눈에 띄었다. 여러 개의 골무를 하나의 실 같은 거로 매달은 모빌이 있었고, 꽃 자수 티코스터가 가랜드로 걸려 있었다.


주문한 음료가 나와 카운터로 가니 음료와 간단한 다과가 파스텔 색감의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그 바구니를 들고 카페와 초가집 왼쪽 뒤편에 있는 방기옥 전통가옥으로 갔다.


ㅁ자 형태를 띤 가옥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당에 서서 가옥을 둘러봤을 때는 나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아늑하고 고즈넉했다. 규모는 매우 크지 않았는데도 웅장함까지 느껴졌다. 이 가옥은 초기에 담장과 디딜방아로 인해 사랑채를 볼 수 없는 가로왈 자 형태의 가옥으로 되어 있었으나, 담장과 디딜방아가 소실 된 후 ㅁ자 형태의 가옥이 되었다고 한다. 



가옥에는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여러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ㅁ자 형태라 모든 방이 마당을 바라보고 있어 자연을 즐기며 휴식하기 좋았다. 내가 갔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어 고요했다. 덕분에 귀는 자연의 소리에, 눈은 자연 경치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는데, 주인이 직접 쓰던 물건들이나 오래된 소품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여행을 하는 듯했다. 오래된 곳이었지만,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음료를 주문하면 간단한 다과도 함께 나온다. 한옥 카페와 잘 어울리는 미니 약과를 사람 수에 맞춰 예쁜 그릇에 담아줬다. 카페 주인의 귀여운 센스에 작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같이 간 사람과 차분하고 정다운 분위기의 공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그 순간이 더욱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출처를 알 수 없는 긴장에 한껏 움츠려있었던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그곳에 있는 시간만큼은 몸에 힘을 빼고 머리를 비웠다.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사계절을 담은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이번에는 푸릇푸릇함과 어우러진 가옥의 모습을 봤으니 다음에는 겨울의 가옥을 보고 싶었다. 겨울에 다시 방문해서 몸속까지 녹여주는 따뜻한 전통차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고 싶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래, 오래 머물다 가고 싶다.



한옥 카페 ‘지은’의 주변에는 건물이 없고, 아기자기한 집 또는 논이 있다. 서울의 한옥 카페는 카페에서 나오면 눈앞에 다시 현대의 모습이 펼쳐진다. 삼청동처럼 예스러움이 남아있는 동네여도 현대의 모습이 자꾸 시야에 들어온다. 그래서 한옥 카페를 들어가고, 나올 때는 이질감이 드는데, 오히려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느껴지곤 한다. 충남 청양의 한옥 카페는 주변풍경과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주변 풍경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서울의 한옥 카페는 카페를 나오면 과거에서 껑충 넘어온 것 같다면, 청양의 한옥 카페는 카페에서 나와도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사실 충남 청양은 10살쯤부터 19살까지 유년 시절을 보낸 나의 고향이다. 내가 자란 곳이 한옥 카페가 있는 그 마을은 아니지만, 그곳의 풍경은 익숙하다. 익숙한 그 모습이 한옥 카페 덕분에 새롭게 보였다. 한옥 카페와 조화롭게 이루어진 주변 풍경을 보면서 이 지역만의 환경이나 분위기가 유독 한옥 카페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옥 카페 하나로 이곳만의 색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


청양에서는 이 카페처럼 색다른 카페가 없고, 중장년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장소도 찾기 어렵다. 그래서 도시나 관광지역에서나 볼법한 색다른 카페가 생겨서 반가웠다. 심지어 한옥 카페 ‘지은’ 덕분에 최근 청양을 찾는 사람이 전보다 많아지고 있다. 이 글을 열면서 청양의 한옥 카페는 숨어 있던 보물 같다고 표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은 한옥 카페 ‘지은’과 같은 곳이 도시나 관광지역으로만 몰려 있는 편이다. 그래서 유명한 지역은 유명세가 더 높아지고,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은 더욱 존재감을 잃어간다. 물론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요소가 부족한 탓이 클 것이다.


이제는 맛집이든 카페든 갈만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리 멀고, 외진 곳이라도 방문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지역만의 특색을 활용한 색다른 곳이 많아지면, 유명하지 않은 지역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문화발전이 미약한 지방 같은 경우에는 문화적으로 발전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긁지 않은 복권 같은 지역은 청양뿐만 아니라 곳곳에 있을 것이다. 복권을 긁는 동전과 같은 곳이 더 많이 생기길 바란다.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원문보기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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