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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Apr 28. 2024

바흐의 음악이 24년을 만났을 때 - 세르게이 말로프

선율, 악기, 관객과 교감하는 세르게이 말로프.

물론 이 모든 것이 막달레나 바흐의 필사본에 고스란히 적혀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프의 연주는 어쩌면 바흐가 상상했을지도 모르는 독주악기의 다성음악, 한 명의 연주자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절묘한 즉흥 합주를 들려준다. - 글 신예슬 (공연 팸플릿에서 발췌)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여러 빛깔을 보게 된다. 악기에 따라 또는 연주자마다 다른 다양한 빛깔이 지휘자의 손끝에서 만나면, 오로라가 된다.


실제로 진짜 빛깔이 보인 건 아니다. 악기 또는 연주자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를 내 마음은 빛깔로 느낀 거다. 느낀 대로 보일 때가 있듯이 마음이 느낀 대로 내 눈에는 빛깔로 보였다. 필자에게 오케스트라는 귀로 화음을, 눈으로는 여러 빛깔을 향유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진 문화다.


그런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건, 다양한 악기와 연주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에 한 공연을 관람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꼭 악기가 다양하지 않아도, 연주자들이 많지 않아도 화음과 여러 빛깔을 향유하는 게 가능하다.


최근 관람한 공연은 세르게이 말로프의 내한공연이었다. 오케스트라만큼 악기가 많지 않은 데다 연주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의 공연에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바이올린, 전자 바이올린, 루프 스테이션이 다였다. 그런데도 여러 빛깔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아우라)이 다채로워서다. 한 사람에게서 이토록 여러 빛깔이 나올 수 있다니, 놀라운 광경이었다. ‘나는 어떤 빛을 내는 사람일까, 나도 여러 빛깔이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번에 여러 빛깔을 내뿜는 그는 참으로 찬란했다.



세르게이 말로프는 바이올린, 비올라, 바로크 바이올린, 비올론 첼로 다 스팔라 등 여러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의 악기를 완벽하게 연주하기도 어려운데, 여러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실력까지 인정받았다고 하니, 천재가 아닌가 싶다.


그가 비올론 첼로 다 스팔라를 연주하는 영상이 주목받았다고 하는데, 조회수가 백만 번 이상이라고 한다. 그의 연주를 영상으로도 본 적이 없는 필자는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이번에 그의 공연을 보고 단번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세르게이 말로프의 연주 실력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 즉흥으로 음을 떠올리고 표현하고, 하나의 곡으로 탄생시키는 능력은 감탄을 자아냈다. 즉흥연주의 대가가 피아노 부문에서 베토벤이라고 한다면, 현악기 부문에서는 세르게이 말로프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Julia Wesely


전자 바이올린은 우리에게 익숙한 바이올린의 모습과 좀 다르다. 울림통이 없다. 울림통이 없는데 어떻게 저리도 웅장하고, 풍부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지 신기해서 보고 또 봤다. 나중에 팸플릿을 읽어본 후에야 그 방법을 알 수 있었다. 현의 진동이나 음향을 전기 신호로 변환한 후 앰프로 증폭하여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래서 전자기타의 소리에서 느껴지던 특유의 매력이 전자 바이올린에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여기에 현의 소리가 주는 선명하고 웅장한 사운드와 바이올린만의 애절한 매력까지 더해진 사운드였다.


전자 바이올린도 신선했지만, 그보다 더 신선한 충격을 줬던 악기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였다. 악기와 소리는 물론 이름도 생소해서 그 악기가 등장한 순간부터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리는 첼로 같은데, 악기를 어깨에 메고 활로 현을 그어 연주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신선한 충격이다. ‘어깨첼로’라고도 불리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는 첼로보다는 작고, 비올라보다는 크다. 얼핏 보면 바이올린 같은데, 첼로처럼 묵직하고 깊은 저음의 소리를 낸다. 어깨에 메기 때문에 악기가 자연스럽게 연주자의 가슴에 위치하게 된다. 악기 오른쪽에 있던 꽃은 앞가슴에 단 브로치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악기가 아니라 그의 가슴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 같아 연주자의 감정이 세밀하게 느껴졌다. 침묵을 유지한 채로 연주하고, 듣고 있지만 음악으로 세르게이 말로프와 대화한 시간이었다.


세르게이 말로프의 발 앞에는 루프 스테이션이 놓여있었다. 이것은 연주 일부분을 녹음하고, 재생하여 그 위에 다른 소리를 쌓을 때 사용하는 악기다. 여러 소리를 동시에 쌓을 수 없을 때 유용하게 쓰이는 악기다. 


확실히 이 악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형태로 음악 작업하는 모습을 미디어로 많이 접해서 익숙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소리를 쌓아가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평소 미디어로 소리를 쌓는 작업을 볼 때마다 실제로 보고 싶었는데,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바로 앞에서 보게 되어 감격이었다. 악기가 한정적이고 연주자는 한 명이었지만, 루프 스테이션 덕분에 오케스트라를 관람한 것 같았다.


©Julia Wesely


공연이 시작되자 세르게이 말로프는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565’ 곡을 연주하면서 무대 위로 등장했다. 가벼운 발걸음과 상반되게 묵직한 분위기의 연주가 이어지는 광경이 재미있었고, 임팩트 있었다. 


이 곡은 바흐가 오르간을 위해 쓴 곡이다. 귀에 익숙한 곡이며, 들어보면 왜 오르간을 위한 곡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무언가를 찢는 느낌이 드는 멜로디가 인상적이고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다. 이 특징을 전자 바이올린이 잘 살려냈다. 오르간 소리와 닮은 점도 많아서 이 곡과 전자 바이올린의 궁합이 최고였다.


다음으로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단조, BWV1001와 모음곡 6번 D장조, BWV1012의 연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Improvisation Hommage a Didier Lockwood’, ‘요한 세바스찬 바흐 – 소나타 2번 A단조 BWV1003, 안단테’를 앙코르 곡으로 들려주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 중 기억에 남았던 곡은 모음곡 6번 D장조, BWV1012였다.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로 연주했는데 가슴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선율이 피어나는 것 같아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잊어버린 채 넋 놓고 바라봤다. 음들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 음들이 황홀하고 편안하게 들렸다. 한 음, 한 음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유려하다’라는 말이 제격인 연주였다. 나중에 팸플릿에서 첼로를 위한 곡이라는 문구를 보고 첼로가 연주한 걸 인터넷에서 찾아 들어보았다. 음들의 느낌이나 곡의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첼로가 연주한 버전도 물론 좋았지만,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버전이 더 마음에 들었다.


©Julia Wesely


이번 공연을 통해 세르게이 말로프라는 매력적인 사람을 알게 되어 기뻤다. 그는 진심으로 선율 그리고 악기와 교감했다. 실력도 천재적이었지만, 자신의 실력에 자만이나 안주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즉흥으로 연주할 때마다 온 힘과 마음을 담아서 담대하면서도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악상을 표현하는 모습에서 겸손함과 노력이 보였기 때문이다. 무대와 가까운 앞좌석에서 관람하여 더 그런 면들이 잘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선율, 악기와 교감하며 손가락과 활을 움직이던 모습, 발을 구르며 연주하던 모습, 악기뿐만 아니라 그의 표정과 몸짓에서 선율이 드러났던 순간들까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눈에 선하다. 인사할 때마다 관객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모습도 좋았다.


클래식 공연을 관람했지만, 길거리 공연을 본 것 같기도 했고 바로크 시대에 타임슬립 하여 길에서 연주하는 그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만큼 세르게이 말로프는 음악뿐만 아니라 관객과 교감할 줄 아는 연주자였다.

 



클래식 고유의 색을 향유하는 공연도 좋지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어느 쪽으로 치우침 없이 다양하게 향유하는 방식은 음악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요즘 패션 트렌드로 예를 들자면, 내가 10대 때 유행하던 스타일이 지금 다시 유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뭐야, 이거 어릴 때 유행하던 거잖아. 내 눈엔 촌스러워 보이는데’라는 생각으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꾸 눈에 보여서 익숙해진 건지 언젠가부터 싫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분들이 눈에 보이고, 현세대의 색이 더해져 개성 있고, 세련된 스타일로 보였다. 그제야 비로소 왜 다시 유행하고,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나의 시야도 넓어졌다.


이처럼 문화예술도 고전만의 색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현대적인 색을 입힌 공연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의 폭이 더 넓어질 거라고 사료된다. 


전에도 고전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클래식 공연 관람으로 인해 바랬지만, 이 공연을 통해 그 바람이 더 커졌다. 고유의 색은 유지하되, 현대적인 색을 입힌 클래식 공연이 더 많아져서 클래식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야가 더 확장되길 바란다.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원문보기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9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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