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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Jul 20. 2024

‘W’는 뭘까? - 리얼 뱅크시

‘BANKSY IS NOWHERE’에서 ‘W’는 ‘나’다.

도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해설에서 [최은영 작가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일에 ‘여전히’ 용감하다. 그리고 축소시키려는 현실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물으면서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렇듯 그녀의 소설은 용기에서 비롯되어 탄생했다.


어느 날, tvn에서 하는 ‘톡파원25시’를 보다가 뱅크시라는 그라피티 작가를 알게 됐다. 방송에는 뱅크시의 가치관, 작품 스타일, 대표 작품 등에 대해 나왔다. 방송을 보면서 뱅크시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최은영 작가가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왜 떠올랐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두 사람의 용기가 비슷해서였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굳이’라는 위선으로 짚어내지 ‘못하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두 사람이 대신 콕 짚어준다.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과 메시지를 던져서 스스로와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특히 뱅크시의 용기는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라피티를 불법이며, 저급한 예술이라는 대중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뱅크시가 그림을 남긴 집은 값이 순식간에 올라갈 정도로 인기가 상당하다. 경매에서는 그의 작품이라고 하면 고가에 낙찰된다. 한편, 뱅크시는 2019년 열렸던 소더비 경매에서 자신의 작품 내부에 숨겨둔 파쇄기로 낙찰되자마자 분쇄했다. 아마 현대사회의 자본주의가 예술계까지 뻗어나간 것을 비판하고자 했던 것 같다. 놀라운 사실은 절반이 잘린 작품은 2021년 경매에 다시 나왔고, 304억 원에 낙찰되었다. 그 작품은 뱅크시의 대표작인 「Girl with Balloon 풍선과 소녀」이며, 잘린 작품은 「Love is in the Bin 사랑은 쓰레기통에」로 바뀌었다.


뱅크시는 자본주의, 권력, 전쟁, 폭력, 위선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탄생시켜 왔다.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관련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에 높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용기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증거다.


뱅크시는 얼굴 없는 작가이다. 그에 대해 알려진 건, 1974년생,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백인남성, 기혼이 전부다. 알려진 ‘뱅크시’라는 이름도 가명이다. 그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아무도 없을 때 벽에 작품을 남겨놓고 사라진다. 몰래 작업을 하므로 작업 속도가 빠른 스텐실기법(도안을 떠서 스프레이로 뿌리는 기법)을 활용한다.

뱅크시의 매력은 용기가 끝이 아니다. 센스까지 겸비했다. 공공장소나 사유지의 벽에 작품을 남기는 그는 장소와 연관된 그림을 그린다. 예를 들면, 교도소 담장에 그린 탈옥하는 죄수자, 작업 당시 성클리닉 건물이었던 벽에 그린 불륜 현장 등이 있다. 주변에 있는 물건을 활용하거나 사회적인 문제점을 대조를 통해 풍자하는 방식 또한 그의 센스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 그의 작품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페스트컨트롤(뱅크시가 직접 설립했으며, 작품을 판매하거나 진품 여부를 판정해 주는 회사) 인증 작품이라니 꼭 보고 싶어서 ‘리얼 뱅크시’ 전시회에 다녀왔다.



이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뱅크시 연구의 권위 있는 큐레이터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기획되어 ‘찐’ 뱅크시를 느낄 수 있는 전시다. 


관람해 본 결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진짜 뱅크시를 찐으로 느꼈다’이다. 전시회명처럼 관람객들이 진짜 뱅크시를 만날 수 있도록 애쓴 흔적이 보였다. 작품을 눈으로 보고 느끼는 데에서 나아가 포토존, 체험공간, 뱅크시의 메시지가 담긴 글귀, 현장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을 통해 온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지하 1층부터 지하 4층까지 이어진 전시는 공간이 관통하고 있어서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특이하게 지하 4층부터 시작하여 계단을 통해 한 층씩 위로 올라가며 관람하는 방식이었다. 평소 계단을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벽에 재현해 놓은 그라피티가 있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오르며 관람했다.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직접 벽화를 보는 착각도 들었다.


계단 옆 벽면에는 뱅크시 작품의 특징 중 하나인 쥐와 노란 스마일 그라피티가 재현되어 있었다. 쥐 그라피티에는 소소한 이벤트가 있었는데, 층마다 부착된 쥐 그라피티를 찾아 큐알코드를 찍으면 경품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번에 지하 4층까지 내려가려니 힘이 들었지만, 그림을 구경하면서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전시장 입구에 도착해있었다. 입장 전부터 뱅크시의 세계에 들어간 것 같았다.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Where is Real Banksy?’ 문구와 지도였다. 지도에는 뱅크시가 발자취를 남겼던 곳에 표시되어 있었다. 꽤 많은 곳에 표시된 걸 보면서 한국의 서울에도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라는 문구였다. 뱅크시가 그동안 왜 사회적인 문제를 지적해 왔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권력, 폭력, 위선, 전쟁을 비판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더 나아가 예술가로서 책임감이라는 이유도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여기서 예술가로서 책임감이란, 뱅크시만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곧 뱅크시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활방식은 편리해졌지만, 자연생태계는 불편해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뱅크시가 기후위기를 작품의 모티브로 삼는 것도 예술가로서의 책임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몇 걸음 더 옮기면, ‘BANKSY IS NOWHERE’ 라는 네온사인이 보인다. ‘I’의 자리는 관람객이 서면 채워지게 되어 있었고, ‘W’만 보랏빛으로 되어 있었다. W의 위치에 따라 이 문장의 뜻이 달라진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따라서 ‘Banksy is now here’이 될 수 있고, ‘Banksy is no where’ 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뱅크시는 지금 여기에 있다와 뱅크시는 어디에도 없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글자 하나로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기도 했다. 그 문장이 계속 뇌리에 남아서 문장을 계속 떠올리며 전시를 관람했다.


‘BANKSY IS NOWHERE’에서 W는 뭘까?

지하 4층에서는 ‘Section1. banksy was here’ 으로 뱅크시의 행보를 살펴볼 수 있었다. 뱅크시는 그동안 권력, 폭력, 위선, 자본주의, 전쟁, 기후위기에 대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보여줬다. 그는 주로 삼는 주제들을 일상에서도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디즈멀랜드를 일정기간 운영하고, 월드오브호텔을 세웠다. 이 두 가지를 재현해 놓은 걸 Section1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디즈멀랜드는 디즈니랜드를 풍자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긴 곳이었다. 하루 4천명의 관람객만 받았으며, 2015년 8월 21일부터 2015년 9월 27일까지만 운영했다. 월드오브호텔(Walled Off Hotel, 벽을 허무는 호텔)은 베들레헴에 있으며, 2017년에 문을 열었다.


뱅크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테러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세운 장벽 바로 앞에 호텔을 세워 세계에서 가장 전망이 안 좋은 호텔이라고 홍보했다. 이곳에 「와치타워(Watchtower 감시탑)」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2015년 위주로 뱅크시의 행보를 보고,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Section1에는 「사랑은 공중에 love is in the air (Flower Thrower)」 와 「잭앤질 Jack&Jill (Police Kids)」 그리고 「날고 있는 군인 Flying Copper」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보고 싶었던 작품들이었기에 보자마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사랑은 공중에 Love is in the air (Flower Thrower)(2003)


「사랑은 공중에 love is in the air (Flower Thrower)」는 예루살렘 베들레헴의 760km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장벽에 남긴 벽화이다. 입을 가린 남자는 꽃다발을 어딘가로 향해 던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모양새는 마치 무기를 던지는 것 같다. 사실 뱅크시는 남자의 손에 있는 무기 대신 꽃다발로 대체하여 가장 강력한 무기는 평화와 자유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잭앤질 Jack&Jill (Police Kids)


「잭앤질 Jack&Jill (Police Kids)」 은 하늘색 배경에 해맑게 웃으며 뛰는 아이들과 대조되어 police라고 적힌 방탄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여기서 Jack과 Jill은 한국의 철수와 영희같이 평범한 국민 이름이다. 뱅크시는 이 작품에 부모, 가족, 사회체제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직접 보니, 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봤을 때와 달리 배경의 색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순수함을 그대로 나타낸 하늘색이 방탄조끼와 더욱 대조되어 보여서 강렬하게 다가왔다.


날고 있는 군인 (Flying Copper)


「날고 있는 군인 Flying Copper」는 평화의 수호자와 위험의 이중성을 포착하여, 친근한 얼굴 뒤의 억압과 겁박을 꼬집은 작품이다. 뱅크시는 이 작품을 통해 대중이 권위와 권력을 거머쥔 사람에게 경계심과 회의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친근한 얼굴을 우리에게 익숙한 노란색 스마일로 표현하고, 무기를 들고 있는 군인과 등 뒤에 날개를 그려 대조시킨 모습을 실제로 보니 소름이 돋았다. 새삼 저 노란색 스마일이 이토록 무서운 그림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캐릭터가 한순간에 무섭고 낯선 캐릭터로 보였다.


풍선과 소녀 Girl with Balloon(2004-2005)


지하 3층에 마련된 ‘Section2. 풍선과 소녀’에서는 동시대의 예술과 현 사회의 분위기를 묘사한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여기서 화제의 작품 「Girl with Balloon 풍선과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뱅크시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며, 경매장에서의 퍼포먼스로 더욱 주목받게 됐다. 이 작품에 대해 ‘사람들은 풍선을 놓아준 것이다’와 ‘풍선을 놓친 것이다’로 해석이 분분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처음 발견된 벽에 그림과 함께 쓰여 있던 ‘THERE IS ALWAYS HOPE’로 항상 희망이 있다는 해석으로 정해졌다.


액자 뒤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과정부터 리허설 하는 모습, 실제 경매장에서 파쇄기가 작동한 모습, 리허설과 달리 절반만 잘리는 모습까지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낙찰되자마자 작품이 파쇄될 때 보였던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 섹션에서는 뱅크시가 주로 삼는 주제들이 담긴 작품을 많이 관람할 수 있었다. 하나하나 작품을 보고 옆에 있는 설명서를 보면서 기발하고 예리함에 감탄사가 나오거나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페스티벌(자본주의 붕괴)」, 「네이팜」, 「세일 오늘 마감」이었다. 


이 세계의 거대한 범죄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규율을 따르는 데에 있다. 명령에 따라 폭탄을 투하하고 마을 주민을 학살하는 사람이 곧 거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 뱅크시


지하 2층에는 ‘Section3. Real Banksy, Real Me’로, 제목대로 진짜 뱅크시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진짜 나에 대해 궁금해하길 바란다는 그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또한 우리가 당연하고 익숙하게 여겨온 규율과 지배구조에 회의하고,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줬다. 


모든 메시지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줬지만, 특히 위의 박스 안에 있는 메시지는 평소 나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여기서 뱅크시가 말하는 규율은 범죄로부터 지켜주는 규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두 번째 문장의 내용처럼 옳지 않은 명령을 규율이라고 생각하며 지키면 그것이 곧 전쟁, 학살, 폭력이 된다. 규율을 따랐을 뿐인데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그런 규율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볼 수 있다. 조직 내에서 부당한 규율을 따르다가 내가 손해를 보기도 하고, 권력을 거머쥔 사람의 명령을 따르다 보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또는 집단 차별이나 집단 따돌림을 만든다. 이처럼 규율이라는 가면을 쓴 범죄들을 우리는 구분하고 어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율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순간이었다.



마지막 ‘Section4. 행동하라, 지금보다 나아지도록 (Banksy is now here)’에는 뱅크시처럼 직접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체험존까지 있었다. 


여기서 보고 싶었던 「게임체인저」 작품까지 직접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게임체인저」는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의료진을 영웅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아이의 손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슈퍼맨과 같은 영웅 인형이 아니라 간호사 인형이 있었다. 영웅 인형은 바구니에 들어 있던 걸 보면, 아이의 픽은 간호사 인형이었던 것 같다. 간호사 인형을 잘 보면 여느 영웅처럼 망토를 두르고 있고, 흑백그림인데 간호사 가슴에 있는 십자가 모양만 컬러이다. 이는 코로나19시대에서 진정한 영웅은 의료진이라는 걸 나타낸다. 뱅크시는 이 그림을 영국의 한 종합병원에 기증하며, 흑백이지만 이 작품이 병원을 조금이라도 밝게 하면 좋겠다는 메모도 함께 줬다고 한다.


게임체인저라는 작품명과 그림에 담긴 메시지가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미디어에서 처음 접하고 계속 생각이 났다. 직접 현장에서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전시회를 통해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대표작부터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싶었던 작품들까지 향유한 후 전시장의 출구로 향했다. 출구로 가는 길에는 풍선이 가득 달린 열기구가 있었다. ‘사랑은 쓰레기통에’ 작품을 출구로 활용한 걸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발하고, 센스가 넘치는 전시회라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러나왔다. 재미와 감동, 깨달음, 생각의 전환까지 하나의 전시회에서 많은 걸 느꼈다.



‘BANKSY IS NOWHERE’에서 W는 ‘나’

관람하는 내내 뱅크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말라는 목소리, 예술 또한 주변 분위기에 맞춰 바라보지 말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예술품을 향유하라는 목소리 말이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현재의 나가 진짜 나인지, 진짜 내가 원하던 나인지, 사회적인 분위기에만 맞추다 나를 잃어가는 건 아닌지 사유했다.


동시에 어떠한 예술 작품에 감명받았을 때, 진짜 나라는 사람이 느낀 게 맞는지, 다들 좋아하니까 애써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전시장 초입에서 봤던 ‘BANKSY IS NOWHERE’에서 W는 ‘나’였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떠한 시선으로 보는지에 따라 뱅크시는 지금 여기에 있거나, 어디에도 없을 수 있다.



필자의 tmi

‘좋게좋게, 긍정적으로’ 방식은 부모님의 교육 방식이었다. 나쁜 방식은 아니었지만, 내겐 독이었다.


독이 되었던 이유는 너무 지나쳤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면 회피하거나 아예 차단하고 비난까지 하셨다. 아주 일상적인 하소연을 할 때도, 어떤 상황에서든 그랬다. 그리하여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썼고, 위축되어 있었다. 중학교 선생님이 아파도, 힘들어도 웃는 ‘실실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전에 기고한 에세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1%만으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비판의식도 있는 편이었다. 후자의 성향으로 인해 부모님의 교육방식이 더 맞지 않았고, 점점 더 독이 되어갔다.


그리고 원하던 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교육방식은 내 발목을 더 조여 왔다. 결국 일할 때도 독이 되어 재능이 애매하고, 너무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그에 비해 가족 안에서는 부정적이고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이 되었다. 결국 나 자체가 애매해졌다. 좋게, 좋게만 운운하며 회피해왔던 문제들은 서른을 앞두었던 시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팡팡! 터지고 있다. 


이는 나의 개인적인 사연에서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사회적인 큰 틀에서도 보면, 우리는 문제들을 애써 억누르고 차단하고, 회피한다. 여태까지 잘 살아왔는데, 굳이라는 합리화로 묻으려고 한다. 오히려 문제점을 들추고, 지적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보존되어야 할 사람인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그런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문제들은 폭탄이 됐고, 그 위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다간 나의 경우처럼, 사회적인 문제도 언젠간 말썽쟁이처럼 팡팡! 여기저기서 터질지도 모른다.


적당한 비판의식은 필요하다. 뱅크시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원문보기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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