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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Aug 08. 2024

유쾌함만 있는 게 아니네 - 영화 '파일럿'

+ 무대인사까지 좋았다.


영화 '파일럿' 개봉하기 전, 무대인사에 다녀왔었다. 사실 영화보다는 무대인사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연예인을 보는 것 보다는 '무대인사' 자체가 좋다. 영화를 본 후,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는 경험은 그야말로 특별하다. 몰입했던 이야기 속 캐릭터를 바로 실존인물로 보니 더 가슴이 벅차오르고, 작품을 더욱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 수 있게 한다.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정말 어디선가 그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묘해진다. 친근감도 느껴지고, 괜스레 그 작품이 더 좋아지게 된다.


무대인사에 대한 느낌을 글로 다 적지 못할 정도로 무대인사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무대인사' 자체를 좋아하게 됐다. 그동안 영화가 끝난 후의 무대인사를 봤으니, 앞으로는 영화 시작 전의 무대인사를 경험해보고 싶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무대인사의 매력이 떠오를 때마다 타이밍이 맞으면 가는 편이다. 이번에는 애인이 먼저 그 매력을 그리워했고, 제안에 가게 됐다. 더구나 영화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도 더 가고 싶었다.


영화를 보러 가는 날, 예상보다 차가 너무 많이 막혔다. 결국 지각으로 인해 앞 부분은 못 봤지만, 중간부터 봐도 스토리가 이해 되는 단순한 플롯이었다. 아무래도 코믹영화라는 장르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코믹영화인만큼 관람내내 웃음이 가득했다. 어이없어 웃기도 하고, 센스에 감탄하며 웃기도 하고, 말장난에 웃기도 하며  재미있게 봤다. (나는 코드가 맞는다 싶으면 잘 웃는 편이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조정석 배우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영화 예고편에서 봤던 인상적인 여장연기는 맛보기에 불과했다.


조정석 배우의 여장연기에는 '여장한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 목소리부터 몸짓 하나하나까지 모두 여성이었다. 마치 여성과 동기화가 된 느낌이랄까.... 보는 내내 감탄했다. 심지어 무대인사하러 나온 그 배우를 보는데 여장한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 정도로 조정석 배우의 여장연기는 대단했다.

 

내가 기대했던 건, 딱 여기까지였다. 코믹장르인만큼 한바탕 웃다가 가겠구나, 조정석 배우의 여장연기는 어떨까. 워낙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이니 기대이상이겠지. 이 정도가 기대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기대한 것 외에 다른 것도 얻을 수 있었다. 작품성도 있었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는 깊이가 있었다. 생각거리도 있었다.


타인의 입장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문제들


주인공인 한정우는 여장을 통해 자기입장이 되어 겪으면서 이해하지 못한 아니, 이해할 생각조차 안 했던 여성의 입장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영화에 잘 드러나있었다. 한정우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성차별을 뜻하는 말이 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게 된다.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하며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했지만, 이내 상대방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반성한다. 이는 비단 여성의 입장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을 잘 헤아릴 줄 알아야한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한정우가 무심코 뱉은 말들, 상처받은 윤슬기의 마음, 성희롱인줄 아는지 모르는지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여성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아래로 보는 서현석의 모습. 이 모든건 사회에서, 일상에서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있는 모습들이다.


 덧붙여서 사람을 도구로 취급하는 오너의 모습, 초심을 잃고 유명세에 눈이 멀어가는 한정우의 모습, 본인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가족을 소홀히 하여 결국 떠나게 만든 한정우의 처지까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문제점들을 예리하게 짚었다.


온갖 핑계로 가족을 등한시한, 그로 인한 결과



한정우는 밖에서는 잘나가는 파일럿이었지만, 안에서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바쁘다는 핑계와 이게 다 가족을 위한거라는 핑계로 가족에게 소홀히 대한다. 심지어 한정우는 가족을 등한시했다는 것조차 모른다. 그 결과는 결국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가장 힘든 시기에 이혼까지 통보받는다. 


한정우는 그 상황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 그러나 (정확한 대사가 생각나지 않지만) 아내가 필요한 건 잘나가는 파일럿이 아니었다고. 당신이 필요했다고 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울컥했다. 한정우는 아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잘못 알고 있었고, 집안 행사까지 이혼한 아내가 챙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정말 가족을 등한시해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후, 한정우는 가족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시 재결합하진 않는 듯 보였다. 하긴, 오래된 상처이니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


영화는 한정우를 통해 관객에게 혹시 앞만 보느라 정말 소중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익숙하다고 가족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그러다가 최악의 결과를 치르게 될 거다. 평소에 잘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얻은 것도 있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그것을 이용한만큼 대중의 앞에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스스로 진심어린 사과를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속인 당사자에게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부분이 너무 적었다. 그저 결말을 지으려는 것에만 급급한 것처럼 보였다. 그 상황에서 가장 많이 상처 받았을 사람은 다름아닌 윤슬기이다. 그러므로 슬기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해명이라도 하고, 마음을 전하려는 노력이 너무 한 장면만으로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슬기라는 캐릭터도 너무 쉽게 정미를 용서한 것처럼 그려져서 그 부분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만큼, 많이 믿었던 만큼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러게 미련없이 깨끗하게 용서할 수 있을까. 정미의 노력에 비해 너무 쉽게 갈등이 풀리는 부분은 매우 아쉽고,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코믹영화라서 그런걸까. 특유의 허세가 있었는데 그 허세가 몰입을 방해했다. 특히 가장 아쉬웠던 건, 엄마와의 통화장면이었다. 정우는 현 상황에 힘들어하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힘든 점을 토로하는데 엄마는 그저 쿨하게, 멋있는 척 하며 '쪽팔리게는 살지 마라' 라고 말하며 뚝 끊어버리고 낚시하던 모습은 아들이 힘든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엄마로 보였다. 오히려 부모보다 더 진심으로 걱정한 사람은 동생인 한정미였다. 물론 대사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그 장면은 좋지 않았다.


스토리면에서 좀 더 완성도가 있었다면, 코믹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좀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코믹영화에 비해서 메시지가 있는 좋은 영화였다. 영화 '파일럿'은 더운 여름에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유쾌함과 조정석 배우의 진짜같은 여장연기라는 볼거리에 예상치 못한 깊이있는 메시지까지 있는 영화였다.


관람을 하고 극장에서 나오면서 이 영화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를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만큼 개봉 후, 사람들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었다.


+ 쿠키영상도 있는데, 그게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좋았다.



+ 무대인사 후기.

배우들 모두 멋있고, 예뻤다. 연예인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마르고 얼굴 참 작고 피부가 매우 좋다.

괜스레 느낀 점일 있는데 개봉전안만큼, 더욱 영화 후의 관객들의 표정을 살피는 보였다. 내가 갔던 날, 그 시간의 분위기는 다른 무대인사 분위기에 비해 배우들도, 관객들도 비교적 차분한 편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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