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도그마 -타협 불가능한 신념의 구조

지식의 구조와 타협에 대해

by 결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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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도그마; 타협불가능한 신념의 구조

어느 날 저녁, 아들이 저에게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아빠, 그냥 제일 똑똑한 목사님, 신부님, 스님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토론하게 하면, 누가 진짜 옳은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저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때 똑같은 궁금증을 가졌던 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의 진리가 그렇게 단순하게 판가름 나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양한 생각과 믿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그마(dogma)'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의견', '믿음', '판단'을 의미하며, '그렇게 보인다', '그렇게 생각된다'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우리말로는 보통 '신념', '교리', '신조' 등으로 번역됩니다.


많은 사람이 도그마를 종교적인 의미로만 생각하거나, 독단적이고 고립된 믿음으로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 도그마는 종교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기본적인 '지식의 구조' 또는 '사고의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어떤 전제를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인 다음, 그 전제 위에서 세상을 해석하고 모든 것을 설명해 나가는 '지식의 방법'인 셈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그마'라는 단어는, 원래의 중립적이거나 철학적인 의미에서 많이 멀어져 있습니다. 본래는 '견해'나 '판단', 또는 '전제'를 뜻하던 이 말은, 지금은 종종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도그마적이다'라는 표현은 융통성 없고 독선적인 태도를 지적할 때 자주 쓰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절대적 진리에 대한 의심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게 되면서, 고정된 신념 체계에 대한 경계심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를 되살려 보면, 도그마란 단지 고집스러운 믿음이 아니라, 모든 지식과 이해가 출발하는 기본 구조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도그마의 이러한 모습은 아주 오래전,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자연주의 철학자들은 세상의 근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하며 다양한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탈레스는 "모든 것은 물에서 비롯되었다"라고 주장했고,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은 수(数)다"라고 말했죠. 데모크리토스는 세상의 최소 단위를 '원자'라고 보았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고대 철학자들의 주장은 오늘날의 과학처럼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주장은 세계를 바라보는 각자의 강력한 '믿음'이자 '전제'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어떤 근본적인 원리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설명해 나갔죠. 당시에는 신화, 역사, 과학, 철학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던 때였고, 이들의 사유가 바로 모든 지식의 원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철학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늘 그리스 자연주의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도그마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유물론(唯物論)'과 '관념론(觀念論)'입니다. 이 두 가지 지식 체계는 인류 문명사 내내 서로 갈등하고 다투는 숙명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물론은 오직 물질만이 존재하며, 세상의 모든 현상은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반면 관념론은 유물론에 반대하며, 물질 너머에 '정신'이나 '신', 또는 인간의 인식을 초월하는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 두 사상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닿습니다. 유물론의 바탕에는 파르메니데스라는 철학자의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그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없는 것(비존재)'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 존재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흔히 아는 형식 논리학의 '동일률(A는 A다)'과도 연결됩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 명제를 바탕으로, 존재의 불변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제논은 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운동'이라는 인간의 경험조차 환상이라는 역설을 만들어냈습니다. '아킬레스가 아무리 빨라도 거북이를 영원히 앞지를 수 없다'는 유명한 '제논의 역설'도 바로 이러한 파르메니데스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반대로 관념론의 대척점에는 플라톤이 있습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세계 너머에 영원불변한 '이데아(Idea)'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사상을 명제로 요약하자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도 있다"입니다. 즉, 우리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추상적인 개념(예: 완전한 선, 아름다움 자체)도 어딘가에는 존재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처럼 유물론과 관념론은 서로 다른 근본 전제, 즉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도그마 위에 세워진 지식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그마적 특징은 종교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기독교의 핵심 도그마 중 하나는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성령과 함께 한 분의 하나님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이 믿음을 받아들이면 기독교인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교리 체계는 바로 이 삼위일체라는 도그마로부터 연역됩니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교 교리의 근본에는 석가모니 부처께서 깨달았다는 '연기론(緣起論)'이 있습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의 연속이며, 인연에 따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 '실체'로서의 존재는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불교는 심지어 초월적인 절대자로서의 신을 부정하는 도그마적 특징을 지니기도 합니다.


도그마적인 경향은 정치 이데올로기에서도 아주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집권 이념이 곧 절대적인 진리, 즉 국가의 '교리'가 됩니다. 이를 의심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억압받고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지요. 국민들은 국가가 정한 이념적 도그마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도록 강요받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는 어떨까요?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의 공존과 자유로운 토론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도그마와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기본적인 '정치적 도그마'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화국의 헌법 가치, 인권, 자유, 평등과 같은 핵심 원칙에 대한 굳건한 신념이죠. 많은 민주주의 시민들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천부인권의 개념을 마치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입니다. 이것 역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일종의 '도그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그마적 구조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다룰 것 같은 과학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이를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특정 시대의 과학자 공동체가 공유하는 이론, 법칙, 가치관의 총체인 패러다임은 그 시대의 '정상과학(normal science)' 활동의 근간이 됩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서구 세계를 지배했던 천동설은 당시의 우주관을 설명하는 강력한 과학적 도그마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바로 이 견고한 패러다임에 도전하여 과학혁명을 이끌었죠. 뉴턴의 고전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대체된 과정 역시, 하나의 과학적 도그마가 새로운 도그마로 전환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지식이 이렇게 근본적인 도그마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인간 인식의 한계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무한히 검증하고 증명할 수 없습니다. 모든 지식은 결국 어떤 증명될 수 없는 '근본 전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고, 그 전제로부터 다른 이론들이 파생되어 나옵니다. 도그마란 바로 그렇게 세워진 지식의 전체적인 이론 체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의 지식은 필연적으로 도그마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 없이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낼 수도 없죠. 하지만 각자의 믿음, 즉 각자의 도그마가 서로 충돌할 때, 갈등과 논쟁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유물론과 관념론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대립하고, 종교나 정치적 신념으로 인한 갈등이 계속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도그마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제 도그마를 단순히 '타협 불가능한 믿음'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삶을 해석하는 필연적이고 근본적인 틀로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신념은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다리'를 놓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도그마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과 성숙한 대화가 가능해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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