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지식의 체계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를 꼽으라면 순위권 안에 반드시 들어가는 인물입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저작으로도 그렇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학(학문)으로서의 지식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를 흔히 “학문의 제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의 스승인 플라톤의 관심이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진리, 절대적인 진리에 있었다면, 그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심은 땅에 있었습니다. 곧 구체적인 사물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왕실 의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진리 탐구의 방식으로 “관찰”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동물의 발생에 관하여(On the Generation of Animals)>에서 ‘벌’의 발생 양식에 대해 다루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이 충분히 밝혀지면 신뢰를 받아야 하는 것은 이론이라기보다는 관찰이며, 이론은 관찰 사실에 의해 확증되어야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연의 사물에 대한 관찰과 검증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적 사고의 창시자’로 여겨집니다.
생물학, 지리학, 수사학, 윤리학, 물리학, 수사학, 문학, 형이상학과 같은 현대의 학문 분야가 그에게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가 '학문의 제왕'이라 불리는 이유는 우리가 학문이라고 부르는 지식의 방법과 체계를 정립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학문’이라는 체계 속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이는 인류 지성의 새로운 도약이었습니다."
“학문으로서의 지식”이란 이전까지 없었던 특별한 형태의 지식입니다. 누구라도 자연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개인의 자연경험이 바로 자연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물리학자라고 불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두가 미학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신화와 과학이, 개인의 환상과 역사적 사실이, 역사와 기억이 구별되지 않던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는, 초월적인 진리를 구하기보다, 진리로서의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탐구하고 지식의 스펙트럼 속에서 질서를 파악하려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작이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완성되어 버린 이 지식의 분야를 오늘날에는 “형식논리학”이라고 부릅니다. 형식논리학의 관심은 참된 주장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졌는가입니다. 논리적 근거가 부족할 때, 이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논리 잃은 주장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신뢰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논리를 잃은 주장은 학문으로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는 자신이 저술한 논리학 책에 ‘오르가논’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오르가논’이라는 말은 조직, 기관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에게 있어서 논리학이란, 그 자체로 개별적인 독립된 학문이 아니라, 학문의 수단으로써 제안되었습니다. 논리학의 방법을 통해 경험된 사실이나 제안된 이론들을 체계화함으로써 지식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가 오르가논에서 정리한 대표적인 논리 형식이 삼단논법입니다. 예를 들면, (1)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2)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3)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반드시 죽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두 개의 전제를 바탕으로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내는 구조입니다 전제가 옳다면 주장도 옳다는 것이 삼단논법의 형식입니다. 검증된 두 가지 지식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논리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논리의 방법은 “귀납과 연역”입니다. 경험 가능한 세계에 관심을 두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지식을 관찰을 통한 "귀납"의 방법으로 찾아냅니다. “탈레스는 죽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죽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죽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한 사람이 죽음은 관찰된 개별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들을 통해 데이터가 쌓이고, 쌓인 정보를 통해서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주장이 성립하게 됩니다.
또 다른 진리의 방법은 ‘연역법’입니다. 연역이란 이미 알려진, 이미 인정받은 지식에서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 내는 형식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와 같은 형식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역된 지식을 다시 귀납의 방법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귀납을 통해 얻어진 지식은 다시 연역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이 순환 반복되면서 더욱 확실한 지식이 구축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학문을 체계화하고, 연구하는 방법을 정리하며, 인간이 지식을 쌓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구축한 논리학은 단순한 사고 훈련이 아닙니다. 이는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핵심 도구였습니다. 오늘날 과학이 실험을 통해 지식을 구축하는 방식, 수학이 논리를 통해 증명을 확립하는 방식, 심지어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원리까지—이 모든 것의 기초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 아리스토텔레스의 터전 위에 세워진 최초의 학문으로서의 지식이 유클리드의 기하학입니다. 약 한 세대가 채 지나기 전에 유클리드는 당시까지의 기하학적 지식들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원론'(Elements)’이라는 책을 내놓습니다. 총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으로 인해서 유클리드는 “기하학의 아버지라”불립니다.
기하학이란 기본적으로 도형과 공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집트 문명이 이룬 피라미드나 스핑크스와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는 기하학이 있어서 가능했지요. 현재 남은 고대 이집트 문명, 그리스 문명의 건축물들은 그들이 가진 기하학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탈레스는 기하학적 지식을 통해 일식을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또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크기를 계산해 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풍부했던 기하학적 지식들을 유클리드는 비로소 학문이 되게 한 것입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이 갖는 특별함은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의 방법을 따라 기하학 체계를 완성했다는 점입니다. 기하학은 어떤 우연적인 원인도, 외부적인 요소도 개입되지 않는 독립적인 학문의 체계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구별됩니다. 유클리드는 정의, 공리, 정리로 이루어진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정의”는 용어에 대한 약속입니다. 예를 들어 ‘삼각형이란 세 변을 가진 도형을 뜻한다’ 또는, ‘정삼각형은 세 변의 길이가 같은 도형을 정삼각형이라고 한다’ 또는 더하기 빼기의 부호와 같은 개념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는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지식인 것이지요.
“공리”란 정의를 사용해서 기술된 명제입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다섯 가지 공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간단히 이야기를 하면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하나뿐이다’라든지, ‘한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는 평행선은 오직 하나뿐이다’와 같은 명제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리는 증명과 검증이 필요하지 않은 지식입니다. 그 자체로 진리로 전제되어지는 명제입니다.
“정리”란 정의와 공리를 사용해서 수학적으로 증명된 참인 명제를 뜻합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직각 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두 직각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a² + b² = c ² )”입니다. 때로 정리는 공식과 같은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이와 같은 체계를 통해 그 자체의 독립성, 완전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근대를 일깨운 책이라고 평가받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도 연역적 지식의 체계를 닮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근본명제이면서, 데카르트 전체 사상이 출발하는 공리였던 것이지요. 유클리드 기하학의 체계는 이후 헤겔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모델이 됩니다. 물론 19세기 이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했지만, 유클리드 방식은 여전히 논리와 학문체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식에 질서를 부여한 자", "학문의 기초를 닦은 철학자"였습니다. 그가 세운 기초 위에서 학문은 더욱 깊어지고 세분화되었습니다. 철학은 개별 학문으로 나뉘었고, 논리는 과학의 방법론이 되었으며, 그의 사유 방식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학문과 사상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라, 지식과 학문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이후 서양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로 인해 지식은 ‘개인의 주관적 주장’을 넘어서 학문적 체계 속에서 검증되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