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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미 Sep 04. 2022

금융공기업 자소서 및 평가

나는 어떻게 쓰고 평가했는가

 이공계생에게 금융권 진입장벽 중 하나는 아마 글일 것이다. 공대는 태생적으로 말빨이 약하다. 과제 대부분도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어서 제출하고 시험 또한 문제 푸는 방식이니 이해한다. 그런데 금융권은 주로 훌륭한 언변과 글 솜씨를 자랑하는 경영•경제 애들이 즐비하다. 그런 곳에서 평소 글 한번 써 본일 없는 공대생이 작성한 자소서가 눈에 띄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취업할 때 자소서를 어떻게 썼고 면접 위원으로 참여해 수천 명 자소서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개인적 경험이 바탕이니 나의 이야기가 절대적인 사실은 아님을 미리 말해 둔다.

 블라인드 채용이 일상화된 요즘 자소서는 지원자를 평가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블라인드 채용에서 지원자의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다. 핸드폰도 뺏기고 인터넷 안 되는 PC에서 오로지 지원자의 자소서만 본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정말 꼼꼼하게 지원자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이공계생은 가급적 자소서를 깔끔하게 두괄식으로 작성하길 추천한다. 다 같이 공대생인 취업 전형에선 잘 썼다고 자부했던 글이 상경계 애들과 경쟁하면 갑자기 초라해진다. 다들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 정말 기가 죽는다. 그럴 때 간혹 그런 잘 쓴 글들을 따라 하는 지원자들이 있다. 그런데 억지로 나에게 맞지 않는 스타일로 자소서를 쓰면 더욱 이상해질 뿐이다. 진짜 글을 잘 쓰는 상경계 지원자들은 미괄식으로 쓰던 두괄식으로 쓰던 그냥 글을 잘 쓴다. 그런데 이공계생이 미괄식으로 쓰면 서론이 긴 느낌이 들어 글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공대생은 괜히 힘 빼지 말고 두괄식으로 자소서 질문에 깔끔하게 답하는 게 최선이다. 대학 4년 동안 안 해 보던 글쓰기가 취업 준비 몇 개월 만에 실력이 늘 수 없다.

 문단 나누기는 필수이다. 문단은 하나의 주제와 생각만 담아야 한다. 그런데 간혹 문단 나누기를 안 한 지원자의 글을 보면 정말 내용이 눈에 안 들어온다. 자소서를 읽는 평가자를 위한 배려 차원에서 문단 나누기를 꼭 하자.

 묻는 질문에 꼭 모두 답해야 한다. 간혹 자소서 질문을 제대로 안 읽는 지원자가 많다. 예를 들어 대외활동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얻은 점을 기술하라는 질문에 대외활동 경험만 신나게 얘기하는 지원자가 많다. 그럼 반쪽짜리 자소서 밖에 안된다.

 자소서는 지원자의 보고서 작성 능력을 보기 위한 목적도 있다. 금융공기업에서 보고서는 매우 중요하다. 보고서를 통해 정책이 결정되고 실행된다. 그래서 보고서는 간결하면서도 명확해야 한다. 보고서 작성 팁에 보고 받는 자가 초등학생이라 가정하고 작성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알기 쉽고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간혹 자소서에 본인만 아는 얘기를 온통 써 놓는 지원자가 있다. 특히 공대생들이 전공 관련 지식을 잔뜩 써놓기도 한다. 본인들 전공에서 상식도 다른 사람에게 어려울 수 있다. 내가 면접을 볼 때 평가자가 나의 성적표를 보고 구조 동역학이 무엇이냐 질문했다. 그 순간 내가 자신 있는 내용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했다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쉽게 얘기했다. 건물을 지진으로부터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학문이다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공계생은 금융권에 자소서를 쓸 때 두괄식과 간결하고 알기 쉽게 쓴다를 명심하자. 글쓰기 훈련이 부족한 우리들에게 화려하진 않지만 순수하고 명확한 자소서가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 괜히 내가 못하는 것을 보고 어설프게 따라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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