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확장]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읽을 시간이 부족했던, 어딘가 메시지가 통할 것 같은 책 두 권과 친구가 부탁한 책 한 권을 챙겼다. 골라낸 두 권 중, 좀 더 생각하며 읽어야 할 것 같은 한 권은 여행 이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벼운 소설을 가방에 넣었다.
이렇게,
재밌을 줄을,
알았다. 박민규 이니까.
단편인 갑을 고시원을 읽었을 때부터 나는 그의 문체와 표현에 어느 정도는 매료되었다.
경쟁에서 도태되었거나 경쟁을 거부하는, 이른바 루저 또는 비주류의 심리를 그는 어찌나 따뜻하게 적어내는지. 주류이되 비주류의 심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이의 글이 자주, 위로처럼 느껴진다.
고성과 시대에 게으른 나는 루저가 될 수밖에 없는. 또는 시간을 향락하며 루저처럼 살고 싶은. 그 마음을 읽어내는 것 같아서.
아마추어로 살아도 되는 삶인데, 언젠가부터 모두들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삶의 많은 결과물들에 대해 과도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 삼미 슈퍼스타즈의 처참한 실적을 찬양하고, 모든 룰을 거부하고 내 멋대로 야구를 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자못 통쾌하기도 했다. '피로사회'의 메시지처럼, 우리는 프로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자기규율과 자기경영을 내재화하면서 자기 자신과 무한경쟁을 벌이고, 찰나적인 생존에 집착하고, 피로하고 우울해해.
평범한 야구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고교야구나 아마야구에 있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이 프로야구라는- 실로 냉엄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며, 물론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인 세계에 무턱대고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 평범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비록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인생이라 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살면서 늘 '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에 사로잡히며 사는 삶은 얼마나 괴로운가. 성과라는 타의적 목적을 쫓기보다는, 니체가 말하는 '사색적 삶'이나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제시한 '보헤미아 적 삶'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을 통해 구현된다.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서있던 곳이 행복해서 돈보다 시간을 누리며 살기를 바랐던 휴가에,
조금 다른 생각으로 느긋하게 살아볼까 생각하게 되었던 소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니.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