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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쁠경 Apr 19. 2022

2022년 비움의 기록_01. 시작

사람이 떠나가면 물건을 정리한다.

0.

2022년, 불안한 내 삶의 믿는 구석이었던 남자친구와 이별했다.

열 번은 이별을 한 것 같은 연애가 지지부진한 과정을 겪고 끝이 났다.

다시 연결되겠지, 하는 마음이 늘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의 의지로) 정말 마지막을 만들었다.


불안하고 예민한데다 유리멘탈인 자로서, 

나에 대한 애정을 한치도 의심하지 못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디디고 선 견고한 땅이 마구 흔들리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적대적인 환경에서 하루를 보내는 내게,

일상의 쉼터가 사라지고, 땅은 어지럽게 흔들리고, 어둡고 시니컬한 마음을 밝혀주던 불빛이 꺼졌다. 


그래도 후회해서는 안된다.

지난 연애는 애정에 목말라 마시던 소금물이었다.

성공하고 싶은 화가가 붓질을 할 수 없는 캔버스를 마주한 갓처럼 순간순간 절망적이었다.


아무튼 이제 나는, 육년의 연애 이 전보다 못생기고 늙고 지친 모습으로,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세상에 다시 섰다.

절망적인 마흔 두 살이다.


1.

1월부터 3월까지 널뛰는 감정, 폭식, 폭음을 반복하면서, 셀프케어를완전히 잊고 지냈다.

왜 노숙자는 씻지 않는지 알 것 같은 날들이, 

가장 밑바닥의 모습으로 채워나간 하루들이 지나가고, 지나갔다.

그리고 지난주부터는 거짓말처럼 따스한 봄이 되었는데, 드디어 나는


정.신.을. 차.렸.다.



2.

정신을 차린 내가, 또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내가,

근 이 주간 내가 한 일은 일단 물건을 비우는 것이다.

 좁은 집을 뒤덮고 있던 물건을 구매가의 10% 수준으로 팔았고, 팔리지 않는 물건은 과감하게 버렸다.

소파, 운동기구, 거울 등이 사라져 거실은  휑해졌다. 

붕뜬 마음에 마구 사들였던 구두와 옷, 쓰지 않는 가전제품 등이 사라지니 수납이 쉬워졌다.

추억이 깃든 주얼리, 선물받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정리하니, 마음이 가뿐해진다.


물건이 사라질수록 마음이 정갈해지고,

마음이 정갈해지니 불필요한 물건이 사라진다.



3.

이렇게 다, 정리할 셈이다.

필요한 것들만 가지게 되도록 말이다.

필요한 마음만 남기게 되도록 말이다.

필요한 추억과, 사람만 기억하게 되도록 말이다.


가을이 오기 전에 다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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