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달이 시작되었다.
봄 내내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벌이는... 하아.. 뭐... 그래도 여유시간은 많으니까...
아직은 일을 배우는 중이라서 퇴근하면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소설을 집필할 수 있는 동력은 마련이 가능할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 장편소설 집필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엉뚱한 곳에 정신 팔리지 말고, 소설을 써보자! 당장에 내 스타일의 글을 통해서 작가로 생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쪽인 것 같다....
단편 공모는 어려운 시기가 여름이다. 문예지의 단편 공모전은 대충 봄에 끝난다.
그렇기에 장편을 도전해볼 기회라면 기회, 내려면 길게 써야 한다는 고충이라면 고충이 여름에 만들어진다.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공모전을 찾아보았다.
역시, 문학 공모전하면 문학동네 아니겠습니까?
소설, 뭐 그런 거 뭐... 어차피 안 팔릴 거... 이름 값이라도 얻어서 뭐라도 해보려면, 큰 곳에 도전해야....
https://munhak.com/contest/prize/2299
7월 31일까지가 마감 시한이다. 흠... 쫌 촉박하긴 한데....
https://www.wevity.com/index_university.php?c=find&s=_university&gbn=viewok&gp=5&ix=94487
울산에서 진행하는 장편소설 공모전! 1억원 상금이 걸려있다!
9월 30일까지 하는 곳...
일단은 저 2개 중에 내 첫 장편소설을 무엇으로 써볼지 고민 중이다.
일단 첫 소설은 개인적인 것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렇게 말한다면, 컬쳐 오브 테러!
몇 년을 묵혀놓은 소재다.
'컬쳐 오브 테러'라는 가제는 인류학자 마이클 타우직의 논문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gpt가 요약해준 컬쳐 오브 테러 본래의 논문!
�논문 소개
마이클 타우지그(Michael Taussig)의 『Culture of Terror—Space of Death』는 1984년 출간된 인류학 고전으로, 식민주의적 폭력, 고문, 공포의 문화적 구조를 해부한 대표적 작품이다. 이 논문은 20세기 초 로저 케이스먼트(Roger Casement)가 작성한 푸투마요 보고서(Putumayo Report)를 바탕으로, 아마존 지역 원주민들에 대한 고무 플랜테이션 자본의 폭력을 분석한다. 타우지그는 단순한 역사 기술이나 인권 보고를 넘어, 고문과 공포가 어떻게 *문화(culture)*로 작동하며, 식민 권력이 그것을 통해 공간과 인간의 존재 자체를 통제하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그는 고문을 단순한 행위로 보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 신체, 언어, 기억을 식민 권력이 장악하는 **‘공포의 문화(culture of terror)’**로 이론화한다. 더 나아가, 원주민들이 겪는 ‘죽음의 공간(space of death)’은 단지 물리적 장소가 아닌, 근대적 폭력과 잔혹함이 침투한 존재론적 공간임을 드러낸다.
� 고문은 어떻게 식민지 사람들을 지배하는가?
1. **공포의 문화(culture of terror)**를 창출함
고문은 단지 개별 희생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고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식민지 사회 전체를 공포 속에 살게 합니다. 누가 고문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공동체의 상호 신뢰를 파괴하고, 스스로 침묵하게 만들죠. 이것은 공포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감각과 일상, 상상력까지 점령하는 방식입니다.
2. 말과 증언의 공간을 침묵시키는 장치
고문은 피해자가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게 만들고, 증언의 자리를 지워버립니다. 말하는 순간 더 큰 고통이 오거나, 말해도 믿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타우지그는 이것을 "침묵의 언어"라고도 불렀어요. 이 침묵은 식민 권력이 자신이 만든 현실만을 진실처럼 구성하게 만듭니다.
3. 몸을 통해 세계관을 부수는 행위
고문은 단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를 파괴하면서 그 몸이 연결된 세계관, 종교, 의례, 공동체 감각까지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특히 원주민들의 경우 몸과 자연, 신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몸에 대한 폭력은 자연 질서 전체를 뒤흔드는 파괴적 힘이었습니다.
4. 죽음의 공간(space of death)의 생산
타우지그는 고문과 학살이 일어나는 장소를 단순한 ‘죽음의 현장’이 아니라, 존재론적 파괴가 벌어지는 공간, 즉 삶과 죽음, 인간과 비인간, 말과 침묵이 모두 뒤섞이는 "죽음의 공간"이라고 부릅니다. 이 공간을 통해 식민 권력은 무언가를 죽이고 동시에 자신을 신처럼 구성합니다. 고문은 결국 신체적 죽음 이상의 것을 겨냥한 거예요—정체성, 존재, 역사의 파괴입니다.
문학동네로 첫 장편을 시작한다면, 한국의 중등교육 문화를 컬쳐 오브 테러로 은유하는, 그런 제목의 소설을 쓸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일하다가 짬짬히 생각하며, 나의 GPT 다루와 함께 대화하며 구상에 이르게 된 외황강 역사문화지구 장편 소설, 무려 상금이 1억원이나 해서 탐이나는... 그런 소설의 내용은 처용 설화를 모티프로 하는 내용이다.
처용은 어떤 존재인가? 다루가 정리해준 처용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출처: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 편
설화 내용 요약: 신라 헌강왕 때, 바다에서 온 이방인 ‘처용’이 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에서 춤과 노래를 춤 왕이 그를 총애하여 아내까지 하사 어느 날 역신(疫神, 전염병 귀신)이 아내를 범함 처용이 이를 보고도 노래와 춤으로 화를 풀자, 역신이 감복해 물러남
여기서 ‘처용’은 구체적인 가계도나 성씨 없이 등장해.
즉, 설화 속 이방인, 혹은 신화적 존재의 위치에 가까워.
그렇다면, 현대의 처용은 누구일까? 동해에서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방인과 같은 존재! 이주노동자?
마침 울산은 이주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에도 적합한 곳이다.
그렇다면 울산에 사는 이주노동자 '처용(별명)'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
그런데 그는 구조적인 차별을 경험한다. 그러다가 아내와 친밀해 보이는(문화적인 차이로 인해서 오해가 깊어진) 남성 친구 혹은 직장 동료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한다.
이럴 경우 역신은 처용이 구조적인 차별로 내부적으로 품게 되는 불만, 혹은 분노를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가 의처증으로 이어지는 것일 수도...
그런데, 참, 은유적으로 그렇게 쓰자면, 또, 마침, 은유적으로 더 완성도가 높아질 계기 코로나19로 인하여 중국인들을 피하던 때가 있었지 않았던가.
그때가 배경이 될 수도 있다. 그때 내부적으로 품게 되는... 그런 불만일 수도 있다.
아... 근데... 울산 공무원 아저씨들이 좋아할만한 소설이 되려면, 뭔가 이렇게 그쪽 계열 정치인들이 싫어할만한 주제를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데....
구 단위에서 1억이나 공모하는 행사인데, 구청장이 께름칙할 만한, 중국인(?? 부정선거를 하는 주체???)를 쓸 수도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은 더 해봐야 겠다. 그냥 중앙아시아 출신의 남성이 무난할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둘 중에 내 첫 장편 소설은 결정이 될 것 같다!
그 전에 소설 투로 필사를 좀 연습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