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을 둘러싼 논쟁이 페이스북에서 한참이다.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던 토론이 열기에 힘입어 한동훈 전 대표와 장혜영 전의원의 라디오 토론으로까지 이어졌을 정도다.
작년 5월에 안타깝게 고 정슬기 씨가 쿠팡에서 야간 택배 노동을 하다가 과로사하게 되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민주노총 산하의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심야시간대(자정~새벽 5시) 배송 제한’을 제안하면서 논쟁이 촉발하게 되었다.
새벽배송을 처음 도입한 마켓 컬리 물류센터에서 주로 일하는지라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다. 만일 새벽배송 규제가 현실화된다면, 컬리의 경우에는 새벽배송이 서비스의 핵심이기에 서비스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이다. 아예 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론이나 여러 상황을 보면 그럴 일 자체는 없을 것 같다. 아쉽다. 한국 진보는 왜 이렇게 사회적 수용이 불가능한 주장만 하는 것인가? 야간 노동자의 과로사를 막는 방법은 그런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2024년 한국의 소비자가 가장 만족한 서비스는 1+1 행사가 성행하는 편의점도, 외국인들도 많이 들른다는 올리브영 같은 K-뷰티 스토어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새벽배송이었다(https://www.segye.com/newsView/20250611501388).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들이 가장 높게 평가한 항목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신뢰성, 선택 가능성, 가격 공정성, 소비자 불만 및 피해 등 4개 항목을 100점 만점 기준으로 종합 평가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새벽배송은 71.8점을 기록해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새벽배송은 ‘가격 공정성(65점)’과 ‘신뢰성·선택 가능성(67.4점)’ 부문에서 택시(60.7점), 항공(64.7점), 치과(55.2점) 등 기존 오프라인 기반 서비스들을 앞질렀다. 이는 가격 대비 품질 만족도와 서비스 이용 편의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과연 새벽배송을 제한한다고 했을 때, 이에 대한 사회적 수용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5시까지 배송을 제한하여도 5시부터 7시까지 서비스를 개시하면 된다고 한다. 노동당의 논평이 그와 같은 입장이다. (http://www.laborparty.kr/?page_id=13642&uid=3558&mod=document&pageid=1)
이렇게 할 경우 새벽 5시에 들어가서 미리 지정된 새벽배송부터 먼저 배송한다면, 꼭 필요한 새벽배송의 대부분은 지금처럼 아침 7시 이전에 충분히 배송 가능하다. 지금은 꼭 필요하지 않은 물품 역시 아침에 배송되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를 꼭 필요한 배송과 구분하여 나중에 배송할 수 있도록 하면 아침 7시 이전에 배송할 물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캠프에 들어가도 배송 가능하다. 또한 다른 대부분의 택배회사와는 다르게 쿠팡은 최종 분류나 프레시백 반납 등 각종 배송 전 업무를 택배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는데, 별도 인력을 고용하여 이 업무를 맡기면 택배 노동자가 캠프에 들어가서 바로 배송을 시작할 수 있으므로 역시 배송 시간이 절약된다. 즉 새벽 5시부터 배송을 시작해도 꼭 필요한 새벽배송은 오전 7시 이전까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물론 자정부터 새벽 5시 사이에 긴급하게 배송받아야 하는 경우나 새벽 5시 직후에 배송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정 필요하다면 이런 긴급배송을 담당할 소수의 인원만 당직 개념으로 활용하면 된다.
새벽배송은 필수적이어서 새벽배송을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소비자는 필수적인 것만 소비하지 않는다. 새벽배송은 소비자가 선호하는 서비스이기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 새벽배송은 신뢰성·가격 공정성 등 소비자 평가에서 최상위에 올라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이커머스 업계 선두주자들은 새벽배송을 염두에 두고 서비스를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특성은 성장성이 담보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새벽배송 서비스에 계속 힘을 실으려면 어느 정도의 성장성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새벽배송 관련한 시장이 더 성장한 이후에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를 이어나가야 한다. 과연 노동당의 논평이 소비자의 특성과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논평을 썼는지는 의문이다. 고로, 나는 지금 진보 진영 일각에서 이어 가고 있는 논의는 과연 현실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남는다.
그러나 새벽의 물류 업무를 과연 이대로 두어도 되는지는 여전히 걸리는 측면이 많이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새벽노동으로 인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예방 대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새벽배송기사를 대상으로 한 심층 면담과 설문조사 결과 이들은 대부분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에 시달렸다. 이들은 국민 평균(47.6%) 보다 건강하다고 인지하는 비율(30.3%)이 낮았다. '수면이 충분하지 않다'라고 답한 비율은 66%였고, '몸이 아프지만 일했다'는 비율도 63.6%였다. 또 응답자 58%가 새벽배송의 육체적 부담을 호소했다. 야간 배송 업무에 대해 현실적이면서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대안은 보다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당장에 쿠팡 CLS 택배기사 1만 명이 소속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가 정부와 국회의 ‘심야시간(0~5시) 새벽배송 제한’ 논의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CPA가 쿠팡 CLS 소속 야간 택배기사 2,4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3%가 심야배송 제한에 반대했고, 95%는 “야간배송을 계속하겠다”라고 응답했다(https://www.globalepic.co.kr/view.php?ud=2025110313581895479aeda69934_29). 쿠팡 정규직 배송기사로 구성된 쿠팡노조도 "쿠팡 노동자들은 지난 10여 년간 새벽배송을 통해 국민의 아침 밥상과 아이들의 학교 준비를 책임져왔다"며 "새벽배송은 이제 국민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고 쿠팡 물류에는 생명과도 같은 핵심 경쟁력 중 하나"라고 강조하며 야간 배송 제한에도 반대하였다. 이들은 민주노총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2023년 민주노총을 탈퇴하였기에(https://www.chosun.com/national/labor/2023/11/08/RSDOQHZDNNBXPEMUHFCD62CBZ4/),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야간배송 제한을 제안한 민주노총 산하의 전국택배노동조합에 속해있지 않다. 현재의 야간 배송업무 제한은 사회적 수용은커녕, 당사자 수용도 어려워 보이는 게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뿐만 아니다. 한동훈 전 대표를 포함한 야간 배송 제한 반대파들은 왜 민주노총이 야간 배송만을 제한하자고 하고 있는가를 논변의 근거로 삼고 있다. 지금 당장에 새벽배송을 제한하면 물류창고의 노동에 과부하가 걸린다. 이곳의 새벽노동도 제한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지 않고 새벽배송 업무만을 제한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규합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적인 집단이기 때문이라는 논변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택배 과로사 관련한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나왔기에 이와 같은 대안이 제시된 것이기에 사실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변이 먹혀드는 것은 지금의 새벽배송 제한 조치와 같은 방안이 원칙에 기반한 야간노동 규정이 아니라, 과로사 현실에 급히 대응하기 위해 던진 ‘땜질식 강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야간노동이 위험한 이유에 대한 원론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해법을 제시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야간노동은 앞서 말했듯이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한다. 또한 물류업, 운송업과 같은 업무는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수반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업무들에서 심혈관계에 과부하가 걸릴 위험성이 매우 크다. 이 일에 발단이 된 고 정슬기 씨의 사인 또한 심근경색이다. 따라서 물류업, 운송업 같이 무거운 것을 들어서 심혈관계에 무리가 가는 업무들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면서도 사회적 수용이 가능한 방안을 제시해야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건 새벽배송을 아예 없애는 극단이 아니라, 위험을 전제로 한 야간노동의 조건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대안은 유급휴게 제도 도입이다. 물류센터의 경우, 상온 물류센터에서는 폭염이 발생했을 때 2시간을 일하면 20분을 유급으로 휴게 하도록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산재 판단 때 심야노동(오후 10시~오전 6시)의 경우 노동시간을 30% 할증한다는 원칙을 어느 정도 참고한다면, 야간 노동의 경우 물류업과 운송업 등은 2시간을 일했을 때에 40분을 유급으로 휴게 하도록 하는 방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법률 상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업자로 분류되는 택배 기사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2시간 일하고 40분간 이동하지 않으면, 평균적인 40분에 해당하는 임금을 주는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야간에도 운영하는 물류센터의 경우 유급휴게 시간에 수면 보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동인원의 30~40%는 수용할 수 있는 수면시설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안을 도입한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서비스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야간 노동을 선호하지 않을 정도로 서비스 제공에 어느 정도 부담은 된다. 그리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각종 심혈관계 질환에 대한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이처럼 대안은 항상 땜질식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상황에 알맞도록 개념을 설정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원론에서 벗어난 '메신저 때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책은 이해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택배 과로사 관련한 대책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당장에 컬리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나도 저런 해법이라면 제발 하자고 할 것이다. 또한 기존의 서비스와 연결된 소비자와 기업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사회적으로 수용이 가능하다. 사회적으로 수용이 불가능한 방안만이 논의된다면 사회적 합의기구는 합의기구로서 무의미한 기구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