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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국정감사에 관하여

by 심준경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관례 상 대법원장은 인사를 한 후에 이석을 해왔다. 아니, 대법원 국정감사 자체가 이슈가 된 적이 없었기에 그래왔다고 언론들이 말한다.


보통 국정감사는 여당이 수비수고, 야당이 공격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올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는 여당이 공격수고, 야당이 수비수가 되어버렸다. 올해 대선 앞두고서 내려진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원 판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생긴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대선에 대법원이 개입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권의 시각에서 사건을 본 것이다. 재판을 해야 하는 재판관의 입장에서는 재판을 하고 있는데 대선이 온 것이다. 그것도 피고인이 유력 대선 후보인 대선이 와버린 것이다. 이런 사건에서는 판결을 내리는 것도 정치적인 행위이고, 판결을 내리지 않는 것도 정치적인 행위가 되어버린다. 대선이란 굉장히 큰 정치적 사건이기에, 어떤 선택을 하건 정치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법원 구성원 다수가 유죄의 심증을 갖고 있는 와중에서는 사실 대법원에게 가장 정무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럴 때 경우의 수는 셋으로 나뉜다. 사실 더 있지만, 이번 대선은 사실 대진이 확정된 순간 이재명 대통령 비토층마저도 선거 결과를 이미 확신했기에 3개만 써도 될 것 같다. (1) 대선 전에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한다. (2) 대선 후에,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중에 파기환송을 해버린다. (3)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후에 파기환송을 한다.


(1) 대선 전에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한다: 이렇게 했다. 지금과 같이 민주당 지지층의 반감을 샀지만,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

(2) 대선 후, 임기 중에 재판을 진행한다: 행정부와 사법부가 대놓고 대립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완벽한 블랙홀이 생기는 것이다.

(3)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후에 파기환송을 한다: 국민의힘 지지층에게도 반감을 사고, 민주당 지지층에게도 반감을 살 수 있는 결정이다. 더불어, 사법부가 권력의 눈치를 많이 보다가 죽은 권력에게는 잔인하다는 인상도 남긴다.


더불어 재판이 신속하면 더 좋다는 게 통설인데, 5년을 선고를 못 내릴 것이면 그때 하는 게 맞았다고 본다. 또한 국민의 입장에서는 선거 후보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선거 과정에서 말 한 마디한 것 가지고 피선거권을 박탈할 문제냐고 여권 일각에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에 관한 규칙을 어겼으면, 선거에 대해 불리한 처분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거에서 중요한 정보나 의문점에 대해서 후보자는 확실하게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보자의 발언의 진실성을 파악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은 일반적인 사람의 지식을 훨씬 상회한다. 기초지자체가 지정하는 토지의 용도에 관한 법적 지식이 풍부해야지만, 해당 사건의 진실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기초지자체 의원 경험이 있는 김수민 평론가가 해당 사건에 대해 서술한 바를 인용하겠다.



성남시 백현동에 가면 51.3m짜리 수직 옹벽이 있다. 아파트 10층 높이다. 이 옹벽에 붙어 있는 커뮤니티 센터에는 도서관, 카페, 사우나 등이 있지만 주민들이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안전성 문제로 사용승인이 반려되었다.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위험한 옹벽과 동거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15개동 1223가구 규모다. 여기 사는 주민들은 대지권도 가질 수 없다. 전체 준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령상 옹벽의 높이는 15m로 제한된다. 성남시 건축위원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특히 성남 지역의 경우 침식과 붕괴가 쉬운 탄층파쇄대가 많다. 그러나 5차에 걸친 심의 결과, 성남시 공무원들이 강하게 밀어붙인 끝에 옹벽은 현실이 되었다. 성남시 도시주택국장을 압박한 것은 정진상 씨로 알려져 있다.


51m짜리 옹벽을 지어가면서 하려던 짓은 무엇일까? 이 아파트의 용적률은 무려 316%다. 서울 지역 고층 아파트 지역의 용적률도 300%를 넘어가지 않는다. 이 용적률을 그대로 챙겨먹기 위해 옹벽이 지어진 것이다.


원래 이 부지는 한국식품연구원이 쓰던 부지고 자연녹지다. 이 자연녹지는 준주거지로 단박에 4단계 상향된 덕분에 저런 용적률을 확보했다.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가‘가 2021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쟁점이 된 것이다. 일반적인 도시계획 과정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지자체지 누구겠는가.


국감에 출석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는 “국토교통부가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협박’은 잊어도 좋다. 지레 과장한 것까지 허위사실공표로 처벌하지는 않는다.

국토부는 공공기관 옛 부지에 대한 매각 방침을 갖고 있었다. 매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토부가 성남시에 공문을 보낸 것을 ’독촉’이나 ‘압박’이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4단계 용도변경은 명백히 성남시의 일이다. 국토부도 공문에서 용도변경은 성남시의 재량이며 이것은 특별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확인시켜주었다.


원리적으로도 성남시의 용도변경 여부나 수준에 대해 국토부가 직무유기로 고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무유기는 법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 적용되는 것이다. 용도변경에서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지시할 권한이 없고 성남시가 4단계 용도변경을 해야 하는 법적 의무는 하나도 없었다.


‘매각’과 ‘용도변경‘을 분간 못하는 자는 닥치고 빠져 있으라. 나는 지금까지 백현동 말고 ’일거 4단계 용도변경‘ 사례가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고, 민주당이 그런 사례를 찾아온 적은 더더욱 없다. 한국식품연구원측도 2단계 용도변경이면 족하다는 입장이었다. 중앙정부가 ‘매각이 되도록 해달라‘고 한 것을 자기네가 ’4단계 용도변경‘을 해놓고 ”협박받고 어쩔 수 없이 했다“. 이게 거짓말이 아니면, 부모한테 성적 올리라고 채근받은 학생이 컨닝을 해놓고 ”컨닝은 부모가 시켰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사안을 개인적으로 정리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그러니 법원에서 확실한 판결을 알려주고 하는 투표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견해다. 내가 비록 성인이 되어서 본 대통령인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 중에 그래도 이재명 정부가 제일 일을 잘 처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니고 있음에도 이와 같은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판결에 대해 민주당 지지층 일각에서는 이것을 '사법 내란'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한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국헌을 문란시키거나, 국토를 참절했단 말인가? 어떤 부분이 민주공화국에 반한다는 것인가? '대법원의 정치적인 선택에 의해 내 마음이 상했다' 이외에는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파기환송 이후, 고법에서 다시 판결을 내리고 대법원이 형을 확정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시간이었기에, 큰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박탈할 수도 있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유력정당에서 낸 후보가 법을 어겼음에도 꼭 투표를 통해 심판받아야 한다는 말은,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위배되기까지 한다.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동시에 존중되어야 하는 구조다. 공화주의는 모두가 공통의 법 아래에서 행동하도록 통제되는 것이 중요한 원리이다.


민주당은 이와 같이 지지층이 자신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갖는 것에 부응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법원 내부에 개혁할 게 그렇게 없어서, 조희대 대법원장 괴롭히기가 민주당이 바라는 사법개혁의 요체는 아니지 않는가? 부디 정치권의 누군가가 연상되는 개혁 말고,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개혁할 수 있는 민주당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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