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박사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 대한 독서토론 후기
[오늘과 함께하는 현재학]은 사적 경험인 '오늘'과 공적 논의의 무대인 '현재'가 함께 이어졌으면 하는 취지에서 기획한 콘텐츠입니다. 공적 논의의 중심이 평범한 사람들의 사적 경험으로 이동되었으면 하는 소망에서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현재를 다룬 책에 대해 독서 토론을 하며 서로가 느끼는 오늘을 함께 공유한 경험을 정리하며 글을 썼습니다. 2024년 1월에 쓴 글을 이곳으로 옮깁니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독서모임, 영화관 풋잠의 주인장께서 진보는 타겟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서적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어보자고 했다. 그 책은 내가 수능이 끝날 무렵 유행했던 책이었던 관계로, 20대 초반의 감성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 책의 모든 구절 하나하나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읽기 전에는 조금은 다른 입장이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라는 틀로 설명해 경제 정책의 전반에 대하여 악마화하는 경향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경제 정책은 각 경제 주체들의 행동에 대한 대응의 기조도 강하며, 모든 경제 정책을 국가가 결정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경제 주체들 사이에는 우리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는 여러 강대국들도 포함된다. 경제에 해박한 양반이 왜 이런 책을 읽자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들어 읽을 때에는 정말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싫은 신자유주의를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해주다니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책을 덮자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책은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인가? 이를 위하여 장하준 박사의 23가지 책을 비판한 책, 박동운 박서의 <장하준 식 경제학 비판>이란 책까지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그리고 토론 주제를 결정해보았다. 역시 독서 토론을 발제하는 일은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첫번째는 23가지 논제 중 지금의 경제 상황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인플레이션 관련 주제를 선택하였다. 장하준 박사의 책에서는 “적당히 낮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나쁘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시카고 대학이나 IMF에 적을 둔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행한 연구에서도 인플레이션이 8~10퍼센트 이하일 경우 국제 경제 성장과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기준을 더 높게 잡아 20퍼센트, 심지어 40퍼센트라고 주장하는 연구 논문들도 있다.”(85쪽)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책이 도가 지나칠 경우 투자가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성장을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극도로 적대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경제가 안정되면 저축과 투자가 늘어나고 이는 결국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86쪽)이라고 서술된다.
그래서 "우리는 40년만의 인플레이션 부활이라는 2020~2024의 국면을 지내고 있습니다. 2022년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5.1%였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전세계에서 돈이 풀리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경험을 하셨었나요?"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또한 지금 연준을 필두로 한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린 상황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또한 물어보았다. 그리고 코로나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솔직히 금리가 올라가서 첫 월급을 받을 때 마음이 편했던 경험 또한 이야기했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물가 인플레보다 심각했던 것은 자산 인플레였다. 그리고 많은 청년들은 패닉에 빠져 묻지마 투자를 하다가, 정말 무모한 잡코인에 투자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첫 월급을 받았을 때에는 금리 인상으로 굳이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아도 마음 편하게 돈이 어느 정도는 들어오겠구나 싶은 상황이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은 박동운 박사의 '장하준식 경제학 비판' 서적의 서술에 더 부합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지금 인플레이션이 20% 정도라고 하자. 노동자는 실질임금 하락을 우려하여 노조를 통해 명목 임금 인상 20% 이상을 요구할 것이다. 사용자가 들어주지 않으면 노조는 파업도 불사할 것이다. 명목임금 인상이 이루어지면 이는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 ‘물가 상승 -> 임금 상승 -> 물가 상승 -> 임금 상승’ 관계는 연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 금융자산 보유자는 20% 인플레이션에서는 실질 수익이 틀림없이 감소할 것을 우려하여 주택, 토지 같은 부동산에 투자할 것이다. 이 결과 부동산 가격은 상승하고, 부동산 소유자의 분배는 향상될 것이나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의 분배는 상대적으로 크게 악화될 것이다. 제조업자는 임금 상승으로 인한 비용 상승 때문에 이익이 감소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사업장의 해외 이전도 계획할 것이다. 수출업자는 국내 물가 상승으로 수출이 부진하고, 수입업자는 수입 물가의 상대적 하라으로 수입이 증가할 것이므로 이 결과 무역수지가 악화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생산 감소로 일자리마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자 풋잠의 주인장 분은 사실 지금의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열패감에 대해서 말하고자 이 책을 같이 읽어보자 제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장하준 박사가 주장하듯이 "교황보다 독실하게"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청년들이 경쟁에 몰두하고, 그리고 모두가 마음 한 구석에 열패감을 앉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하셨다.
그에 대하여 다른 이야기를 해보았다. 세상에 1987년에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했다는 이유로 그 이후 종북으로 인한 투옥 경력과 학원 강사 경력만 있는 사람이 유튜브를 시작해서 뻔뻔하게 독자연구를 통한 자기만의 균형감 없는 주장으로 운동권을 힐난하고, 그것만 가지고도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으로까지 초청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나는 이 세상에 그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서울대병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야당에서는 유시민 씨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금 뻔뻔한 헛소리를 해도 무조건적인 옹호를 받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한국의 서울대병은 고질적인 것이며, 서울대 출신의 말 잘하는 이들에게는 헛소리를 해도 뻔뻔하고 당당해질 수 있는 권리마저 부여된다. 이런 사회의 원리 모두를 신자유주의 탓을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풋잠 주인장 분의 주장은 그러한 학벌의 위계가 강화된 것도 신자유주의 탓이라는 말을 했다. 그럴 수도 있으나, 아닌 부분도 있다는 것이 여전히 나의 생각이긴 하다.
마지막 논제는 우리가 과연 바라는 경제 정책을 위하여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정치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결국은 그렇게 피력하려는 사람들이 정말 정파적이 되어서는 온갖 꼴볼견의 조롱, 야유 등을 주고 받으면서 눈살 찌푸리게 만든다."라는 내 생각 때문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재벌들, 대기업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 고위공직자들 등등이 경제적 주류가 되는 동안 중산층과 서민들이 서로 소통하여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내고 문화적 주류가 되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화적 주류가 되어 쪽수를 통해 저쪽이 우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세상의 불합리, 부당함 등을 상상력을 동원해 하나의 세계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정당한 세상을 원한다고 보여주면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이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하여 정당한 세상, 정당한 몫을 서민들에게 나누려고 하는 세상을 보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는 제언을 덧붙여보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지금의 정파성은 한국의 역사적 맥락 또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지, 다들 정치에 너무 과열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했다. 오히려 정파적이기만 할 뿐 정치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견도 나왔다. 또한 한 때 페미니즘 책을 읽었던 분은 가장 사적인 부분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즘 리부트의 구호 또한 언급하며, 오히려 정치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 이러한 의견들에는 나도 동의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사람들은 정파적이기만 할 뿐 누가 어떠한 방향을 통하여 정치 행위를 하면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리라는 생각은 적은 것 같다.
이 토론 이후 오랫동안 내 생각을 정리했다. 여전히 우리가 정당 활동과 거리 시위 등의 정치에 대한 직접 참여를 통하여 더욱 중산층과 서민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는 없다. 오히려 대중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유도하려는 행위가 만물신자유주의론을 펼치면서도 막상 대안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하는 한국 민주진보진영의 고질적인 문제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그러한 의미에서 내가 제안하는 것은 공론장에 사적인 경험들이 섞여들어가게 하고, 문화적인 경험 속에 정치적 차원의 문제를 넣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것은 정파적과는 구별되는 것이여야 한다.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경험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맥락들을 알려주고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불어넣는 것, 그리고 사회의 경제적 주류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담론에 관하여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게 도와주는 것, 그럼으로써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맥락을 복원시켜보는 것이야 말로 중산층과 서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인 장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여차저차 복잡한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