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딜레마: 밀레니얼들을 향한 시대예보

2024년 9월 25일 얼룩소에 올렸던 글

by 심준경

1. 정보 혁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정보 혁명이라는 유령이 떠돌아다녔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류는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정보 혁명이라는 세 개의 물결을 거쳐왔다고들 말했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정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은 것 같다. "음……. 인터넷이라는 것을 통해 정보를 쉽게 획득한단다, 음……. 그리고 집에만 있던 전화기를 우리가 이제는 들고 다녀." 그런데 아무도 인터넷과 핸드폰이라는 게 세상을 얼마나 바꾸었는지는 정확히 말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사실 왜 정보 혁명이 산업 혁명만큼의 파급이 있다는 말인지는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능을 보고 난 시점에 방문했던 서점에서는 장하준 박사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베스트셀러였다. 그 책에서 가장 사이다 같이 느껴졌던 대목은 인터넷은 세탁기만큼도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보 혁명이라는 것이 점점 실체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씨앗 같은 단계에서 그저 유명무실한 것에 불과했던 정보 혁명이, 이제는 성숙기에 접어들어 실체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지난주에 연준이 금리를 한꺼번에 0.5%를 내린 이유에 대해 연준 전문가라고도 불리는 신한은행 오건영 씨가 삼프로TV에 나와 해설하는 영상을 보면서부터였다.

오건영 씨는 이번 연준의 결정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이번 추석에 화제가 된 T맵이 일으킨 ‘농로대란’ 사건을 화두로 던지며 시작했다. 추석 귀경길에 내비게이션의 추천경로를 따라서 운전을 하던 운전자들은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는 대체 경로로 좁은 논길을 안내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대체 경로를 안내받은 게 단순히 한두 차량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많은 차량이 좁은 논길에 몰렸고, 해당 도로는 그 많은 차량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좁은 도로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해당 논길에서 정체된 채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이전에는 ‘지역 주민들만 알 수 있을 만한 지름길’이라는 고급정보에 일반적인 운전자들도 쉽게 도달할 수 있게 되고, 많은 운전자가 해당 정보에 따라서 결정을 하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오건영 씨는 지금의 연준이 마주한 난관이 그와 같이 너무 쉽게 고급정보에 도달하게 된 세상인 것 같다는 견해를 이야기했다. 7월에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들도 많았지만, 연준 위원들은 물가를 확실히 잡은 후에 금리를 내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 과거의 세상에서는 그렇게 해도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상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는 것이다.

연준의 결정 이후 며칠 안 가 주식 시장에 확 이상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8월 4일 미국 노동부의 고용보고서가 발표되었고, 바로 다음 날 주가가 폭락했다. 당시 인터넷 곳곳에는 ‘샴의 법칙’이라는 말이 떠돌아다녔다. 과거에는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그러한 법칙들을 일반 투자자들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시장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아직 실제로 경기가 위축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금방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고급정보를 일반 투자자들이 알게 되고 그러한 정보들이 실제로 시장을 들썩이게까지 만들어놓은 것이다. 연준이 고용 지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온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시장의 반응 영향도 있을 것이라는 게 오건영 씨의 분석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실감했다. 아……. 정보 혁명이 성숙기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이제 과거에 우리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분석들을 이제는 유튜브를 통해 쉽게 접한다. 내 취미는 온갖 현상들에 대해 고급 정보를 곁들인 분석을 유튜브 2배속으로 들으며 산책하는 것이다. 나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직 드물겠지만, 과연 나 한 사람뿐일까?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정보 혁명이 완료되었을 때 마주할 세상과 그 세상에서 자라나는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2. 표준 시대의 붕괴


역사의 진보가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한참을 고민해본 바가 있다. 나에게는 대략적으로 산업 사회의 시작 이전과 이후는 다른 방향성이 있었다고 느끼게 된다. 농경 사회 이전, 수렵채집 사회에서 사람들은 강한 권력의 탄생을 경계하였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농경 사회에 정주의 방식이 채택되면서 사람의 삶은 제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제도적 삶에서는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생겨난다. 인류가 이에 대한 해법으로 마련한 건, 강력한 중앙의 권력을 마련하고 이에 대해 어느 정도 공적인 통제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중앙집권화를 통해 거대한 정치체, 국가의 중앙부가 생겨나고 시민 혁명을 통해 어느 정도 공적인 통제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산업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마련된 산업 사회는 표준이 중요한 사회였다. 산업에 알맞은 인력으로 양성되기 위해 개인은 표준적인 앎에 따르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중앙부가 기획한 표준적인 앎을 개인에게 교육시키고 잘 따라오는 자를 위에, 표준적인 앎에 대한 교육을 잘 따르지 못하는 자를 밑에 배치시켰다. 이러한 사회에서 표준적인 앎보다 개인적인 궁금증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은 괴짜(geek)로 불렸다. 표준적인 앎을 잘 따라가면 한 분야의 전문가로 양성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정보들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권위와 권력을 가지기도 했다.

사회의 진보에서 가장 큰 변수는 기술의 발전이다. 산업 사회에 도달했다고 해서 사회가 정체되어서 중앙집권의 사회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기술이 발전될 때마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힘의 크기는 커졌다. 그중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다. 중앙부는 중요한 정보를 자신들이 가짐으로써 권력과 권위가 유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점차 그러한 권력과 권위를 위험하게 했다. 어느 정도 통제되던 정보들도 쉽게 전파되는 시절이 되었다. 누군가가 어떤 자리에서 내뱉은 말이 평생 기록될 수 있는 녹음 파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MB정권 시절 미네르바 사건과 같이 자신만의 궁금증을 토대로 자신의 관점을 형성한 사람이 학위와는 관계 없이 탁월한 분석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중앙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이제는 전문가가 귄력을 지닌 사람이라기 보다 단순히 조언가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은 전문가가 하는 말을 모두 완벽히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국가의 중앙부에서 권력자들이 뒤에서 주고받던 말과 문서들이 점차 여기저기에 손쉽게 퍼뜨려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주하는 녹취 파일들에 대해 정치평론가 장성철 씨는 방송을 통해 폭로자들을 비판하곤 한다. 그 위치에 있으면 고민이 많고, 그렇기에 내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주고받으며 고민 상담도 하는데 그걸 폭로하면 어떡하냐고.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밝혀졌을 때 떳떳하지 못할 말,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구태여 해왔던 중앙부의 권력자들이 오히려 잘못되었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 이리저리 계속되는 폭로들은 그 잘못들이 바로 잡혀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이준석의 횡설수설


점차 이리저리 계속되는 폭로들로 인하여 대한민국 밀레니얼 세대 중 최초로 주요 정치인 중 한 명이 되었던 이준석 씨 또한 난처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씨 공천 개입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로까지 커지면서 명태균, 김영선과 자신이 만난 칠불사 회동의 전말에 대해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명태균 씨가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씨의 권세를 통해 김영선 씨가 공천되도록 만들었던 사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전말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본인이 공천에 대한 최종책임자인 당 대표로 재직 중인 시절에 일어난 사건인데도 말이다. 해당 의혹에 대해서 이준석 씨가 답해야 하는 바는 변호사 신인규 씨가 잘 정리해두어 링크를 공유한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 “뉴미디어로 흥한 자, 뉴미디어로 망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준석 씨가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기를 얻은 것으로 유명하고, 해당 게이트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보도한 뉴스토마토가 뉴미디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관점은 다르다. 이준석 씨는 레거시 미디어 시절의 문법으로 뉴미디어 시대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일 뿐, 뉴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한 사람이 아니다. 뉴미디어의 시대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매우 다양한 송신자가 있고 수신자는 언제든 다양한 송신자와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레거시 미디어 시대에 익숙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뉴미디어 채널을 1~2개를 정해서 듣는다. 그리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 소셜 미디어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그 뉴미디어에서 전달하는 정보가 산업 사회에서의 표준적인 앎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수신자가 레거시 미디어의 시대의 문법으로 뉴미디어 시대를 살았고, 그것은 사람들이 각자가 관심 있는 세계에서만 사는 분절된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준석 씨는 그런 분절된 시대를 최대한 활용한 사람이다. 레거시 미디어 시대의 화법으로 뉴미디어를 살고자 한 것이다. 그는 특정한 세대, 특정한 성별, 특정한 계층을 타겟팅하여서만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 천박한 구석이 있었다. 나에게 큰 짜증을 유발해 얼룩소에 입문하게 만든 그의 발언은 이번 총선 국면에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관련 공약과 관련하여 대한노인회장과 토론하다가 마지막 발언 시간에 상대가 반박할 수 없는 시점이 되자 “경마장역” 발언이었다. 자신이 타겟팅한 지지층의 이기주의를 극대화하며, 이기주의에 딴지를 거는 사람에게 이상한 프레임을 씌운다. 그리고 그 전략을 통해서 비호감을 가진 사람은 있더라도, 견고한 코어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레거시 미디어 시대의 문법으로 정치를 하려고 했다. 뒷공작, 공천 거래와 같은 수법을 계속 쓰면서 몸짓을 키우려고 했고, 그것이 칠불사 회동이라는 사건이 보도되면서 그런 과거 방식의 정치인이라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22살이나 많은 김근식 씨로부터도 구태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점점 다양한 이야기들이 뉴미디어에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스피커가 분석한 칠불사 회동의 전말에 대해서 사람들은 접할 것이다.

이준석 씨는 딜레마 상황에 처해 있다. 다시 미디어에 나가서 본질을 이리저리 회피하면서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말하려고 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말에 점점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석가들의 이야기를 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레거시 미디어 시대의 방법대로 대충 묻어버리고 갈 것인가? 아니면 뉴미디어 시대의 문법에 적응하여 어차피 밝혀질 것 다 사실대로 말할 것인가? 그의 앞에 있는 딜레마 상황이 나 같은 밀레니얼 세대를 향한 시대예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4. 노마딕 긱의 시대가 올 것이다.


산업 혁명 이전과 이후가 삶의 방식이 달라지듯이, 정보 혁명 이전과 이후는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더이상 정보의 통제와 일정한 시점에서의 폭로가 권력과 권위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 표준적인 앎에 만족하는 시대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능동적으로 정보를 찾아서 습득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그걸 잘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친민주당 성향의 정치 유튜브 채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싫어한다. 내가 진보라고 말하기 쪽팔리게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그들을 때로는 인간 이하 취급하고 싶어 하는 속마음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번 공천 개입 파문이 열리면서 내가 가장 많이 참고할 수 있는 채널이 어디겠는가? 김어준 씨의 방송은 안 봐도 김어준 채널의 여러 프로그램에 가서 이야기를 듣는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못하게 한 스픽스 채널에 들어가서도 이야기를 듣는다. 각각의 패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어떤 패널의 이야기가 어떤 지점을 분석할 때에 강점이 있으며,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줄 수 있을지를 파악해본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전체 그림을 그려본다.

산업 사회에서는 자신의 궁금증을 가지고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괴짜라고 불렀다. 그런 괴짜 중에 아주 극소수만이 권위를 인정받고 그 분야의 최고전문가가 되었다. 왜냐하면 평균적인 앎을 지향하는 게 안전했기 때문이다. 최상층이 아니면 고급정보를 얻기가 어려웠고, 고급정보가 배제된 채로 만들어진 자신만의 그림은 대체로 괴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자 하면 알 수 있는 영역이 정말 많아진 시대이다. 그렇기에 여러 미디어들을 유목하듯이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궁금증을 해결해나가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사람들이 미래에 성공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목하는 괴짜, 아니 쫌 그래도 내 소개인데 있어 보이게 말해야지, 노마딕 긱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레거시 미디어 시대의 문법 속에서 자라났다. 뉴미디어가 생겨난 것은 거의 대부분 사춘기가 이미 지나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이준석 씨 앞에 놓인 딜레마 같은 선택지처럼 두 개의 선택지가 있는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 시대의 문법대로 뉴미디어를 활용하여 몰락할 것인가? 아니면 뉴미디어 시대의 문법을 만들어나갈 적극적인 행위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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