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화된 미디어의 기회비용

2024년 12월 28일 얼룩소에 올렸던 글

by 심준경

1. 정치의 기능부전으로 인한 기회비용

국무총리 한덕수 씨가 탄핵되었던 12월 27일에 경제적인 쇼크가 왔었다. 한덕수 씨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자, 현재의 체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람들의 뇌리를 스치면서 증시와 환율에 엄청난 악영향을 준 것이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에 관한 판결이 내려지는 헌법재판소에 현재 6명의 재판관만이 있는데, 그것이 사람들을 자꾸 불안하게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쉽사리 인용되지 않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관 6인 체제에서 1명이 반대표를 던지면 '탄핵 기각' 가능성이 높다"거나 "헌법재판관 6인 체제가 4인 체제가 되는 4월까지 길게 끌어서, 탄핵 심사를 못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서는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혹시 모를 탄핵소추안이 인용되지 못할 사태가 생길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3명이 임명되는 절차는 국회에서 법관의 가진 사람 3명을 국회에서 선출한 후, 대통령, 혹은 대통령의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것이다. 해당 절차를 적어놓은 헌법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

제111조 2항 -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111조 3항 - 제2항의 재판관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지금 공석인 3명의 재판관 자리는 국회 몫으로 지난 10월부터 공석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국회가 선출하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국무총리 한덕수 씨가 임명하는 것이 의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탄핵하는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통과된 탄핵소추안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논리가 나온다. "그러므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합의를 하기 어려운 것이 명약관화함에도 불구하고 피소추자는 위헌적인 조건을 내걸어 사실상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였다." 즉, 사실 상의 임명 거부가 탄핵 소추의 사유이다. 그러나 한덕수 씨는 명분 상으로는 자신이 여야의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임명을 보류하겠다는 말을 했다. 즉, 한덕수 씨가 임명을 거부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만약에 국회의 선출 이후 대통령이 의무적으로 즉각 임명해야 했다면, "지체 없이 ~하여야 한다"는 조문이 적혀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의무가 아니며, 즉각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와는 달리, 법 조문에 의무로 적혀 있는 것은 상설특검 임명 요구이다. 그래서 상설특검을 임명하지 않은 것은 의무 위반이며, 한덕수 씨의 탄핵소추안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가 한덕수 씨의 탄핵 사유로 인용되기 위해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헌법재판관의 임명에 대해 합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지, 혹은 더불어민주당이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만 끌고갔던 것인지 재판관들의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어야 판결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의 경우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실질적으로 합의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미디어 환경에 자신이 놓여있는가에 따라서, 현재 정치적 상황을 보는 관점이 다른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맞이한 결과는 참 난감한 상황의 연속이다. 정치에서 타협을 토대로 결정지어줘야 할 많은 영역이 사법부에서 법관들이 따져서 판결해야 할 문제가 되어버렸다. 왜 이런 것일까? 나는 미디어들의 행태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미디어의 환경이 계속되면 증시와 환율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친 12월 27일과 같은 사건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상대 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는 미디어

우리 나라 언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구구절절 옮기는 일이다. 그 결과, 민주당 쪽 정치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면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을 '보수'라고 부르고, 보수정당 쪽 정치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면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을 '진보'라고 부르게 된 듯하다. 다시 말해, 다른 사회적인 아젠다들에 큰 관심이 없이, 어느 쪽 정치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면 안 되는가를 놓고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영화된 미디어의 핵심이다. 상대 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는 미디어가 민주화 이후로 계속 진영 논리를 확산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뉴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진영 논리는 점차 극단적인 방식으로 바뀌어 갔다. 12월 27일 한덕수 씨와 민주당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두고도 참 다른 언론의 스탠스를 볼 수 있다.

한겨레 신문은 한덕수 씨를 두고 '내란 대행'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앞으로 계속 반복될 수도 있는 탄핵의 반복을 두고는 '탄핵 단두대'라는 표현을 썼다. 상대 편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면, 상대는 정말 악랄하게 일을 진행할 것이라는 의식이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정제된 표현을 쓰는 신문도 이러고 있는 형국인데, 유튜브 세계는 어떨 것인가? 정말 극언들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국무총리 한덕수 씨의 동기가 이해가 안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임명을 보류하며 시간을 끌어봤자, 다른 것을 떠나서 한덕수 씨에게 무엇이 남아 떨어진다는 건가? 이를 두고 유튜브 세계에서 소비되는 방식은 참 동의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기자 장윤선 씨는 '장르만 여의도'에 나와서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했다. 한덕수 씨가 로펌과 상의를 해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한덕수 씨 개인의 관심은 어떻게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윤석열 복귀 시나리오를 가동하는 중일 거라는 썰을 풀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나리오가 얼마나 타당성이 있냐는 것이다. 취재된 사실은 하나다. 한덕수 씨가 자신의 법률 리스크의 최소화를 위해 로펌에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지나치게 많은 썰을 풀고 있다. 한덕수 씨의 사법 리스크가 과연 윤석열 복귀를 꿈꿔야 할 정도로 중차대한 일인가? 그렇지는 않다. 대통령실 직원도 방송을 보고 알았던 비상계엄령 선포를 국무총리인 한덕수 씨가 얼마나 빨리 알았을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빨리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한덕수 씨에게 큰 것은 정치적인 책임이지, 법적인 책임 자체만 놓고 보자면 그렇게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덕수 씨의 입장을 가장 악의적으로 생각하자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고 윤석열이 말했을 때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일의 진행이 원활하게 되기 위해 국무회의를 소집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반면에 한덕수 씨의 입장을 최대한 선해해보자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고 윤석열이 말했을 때에 말리려고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고,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말리면 자제하겠지 생각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진실은 그 사이에 있겠으나, 현행 형사 사법 체계는 피의자의 행동을 최대한 선해해주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러므로 그의 법적 책임 자체는 크지가 않다. 오로지 정치적인 책임만 클 뿐이다.

그러나 상대 편의 뜻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상대의 의도를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유튜브 콘텐츠들이 무분별하게 돌고 돈다.


3. 보수는 원 팀일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와야 한다. 보수는 원팀일까? 이 질문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원팀이 아니더라도 원 팀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북중러는 원 팀이 아니다. 한미일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서 미국의 우방국으로써 어느 정도 원 팀으로 기능한다.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공고할 때, 한국과 미국, 일본 세 국가는 모두 이득을 공유한다. 그러나 북중러는 사실 공통의 이해관계가 그리 크지 않고, 역사를 뜯어보면 서로 악감정도 상당히 많다. 다만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계속 힘을 발휘하면 여러 모로 손해를 볼 때가 있어서 원 팀처럼 보이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수는 윤석열 정부의 집권 세력이었다. 그들은 국회에도 있고, 직무정지된 윤석열도 보수고, 아직 직무를 유지하고 있는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도 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전에 그들은 명백하게 원 팀이었다. 그러나 윤석열이 사실상 식물대통령이 된 비상계엄령 해제 이후, 그들은 원 팀이었을까? 그렇게 보기에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원 팀처럼 보이게 행동하고 있다. 누가 봐도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서로가 허물만 남은 윤석열 정부를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 행동들을 규정짓기 전에 질문해야 한다. 저들은 왜 저러는 것일까? 향후 진행될 민주당 주도의 정치 질서가 자신들에게 위협적이기 때문에 원 팀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지금 그들에게 강요되는 미래는 명예와 경제적 이득의 소멸, 그리고 사법 리스크만 남은 미래다.

친 민주당 계열 유튜브에서는 명태균 게이트가 진행되는 내내 이야기했다. "보수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나라가 망한다." 그러나 그들이 목 놓아 찾았던 보수의 의인 10명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탄핵에 찬성한 10명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안철수 씨는 자신의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를 편들어주는 거냐고만 묻고 간철수라고 계속 비웃음 당하고 있다. 조경태 씨는 지표생물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그들이 당에서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탄핵에 찬성한 결과다.

행정관료들 입장에서는 어떤가? 김건희 특검법이라고 적혀 있는 법안의 뒤에는 15가지의 수사할 사항들이 적혀있다. 이대로 진행되면 행정부의 많은 구성원들도 전부 다 수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향후 정국에서 윤석열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김건희 부역자'였다는 말이 돌 것이다. 선의를 위해 자신의 몫을 내려놓더라도, 향후에는 사법 리스크와 불명예만 남는 것이다. 윤석열 탄핵과 내란 동조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아무리 대의더라도, 자신의 몫을 내려놓은 결과는 항상 사법 리스크와 불명예스러운 모욕을 듣게 되는 미래다. 그마저도, 진영의 배신자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민주당 주도의 정치 질서는 이것에 대한 아무런 숙고도 없이 상대에게 대의에 따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질서다. 그러한 질서가 아무런 견제 없이 진행되는 것이 윤석열의 대통령실, 여의도의 국민의힘, 행정부 산하의 고위관료가 원 팀으로 보이게 행동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해야 한다. 헌법재판관 6인 체제가 그렇게 위협적인가? 법조 엘리트들도 나름대로 그들 사회의 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깔끔하게 자신의 수입을 계속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윤석열도 자신의 변호인단을 선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 않는가? 그의 피의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변호하는 일은 어렵고, 그들 세계 내부에서도 위신이 깎이는 일이기에. 따라서 헌법재판관이 6명이더라도 윤석열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공화국 방어전'으로 재미 본 민주당은 '공화국 방어전'이 주는 효용을 최대한으로 뽑아먹기 위해 9명이 되는 것을 막는 자, 혹은 쌍특검을 막는 자들은 내란 공범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되면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진영화된 미디어가 이러한 민주당의 행동을 부추겨 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기회비용은 우리가 27일에 본 증시와 환율이다. 국가적인 리스크에서 양측 모두를 비판하는 일을 잊은 진영화된 미디어의 기회비용이라 할 수 있겠다.

진영화된 미디어의 기회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민의 행동은 무엇일까? 자꾸 누군가의 비판할 점에 눈을 감지 않는 것이다. 국가적인 위기의 상황에서 누군가의 비판 지점에 눈을 감아도 된다는 논리가 인정받는 경험이 많아질 수록, 정치 세력이나 이에 동조하는 진영화된 미디어는 국가적인 위기를 증폭시켜서 말할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해야 하는 일을 상대가 하지 못하게 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취약한 시스템은 도무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와 어떠한 대화도 거부하며, 상대에게 어떠한 손해를 입더라도 대의만을 바라보라고 말해야 유지되는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소수의 몇몇 사람에게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끝없이 강조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정치 세력이나 그것에 동조하고 있는 미디어들은 비판적인 관점으로 독해되어져야 한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한 사람들이 얻게 되는 이득도 없이, 얻게 되는 명예도 없이 일이 진행되어야 하는 대의만이 이야기되는 사회는 오래도록 버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정치적 타협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대의만을 강조하고 있는 미디어는 시민의 입장에서 계속 비판해야 한다. 그러한 미디어가 시민들 전체에게 리스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가 지금 마주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P.S. 최상목 씨는 한덕수 씨보다 협조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왜냐하면 세간에 한덕수 씨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였을 때에 떠돌았던 것과 같이 한덕수 씨가 차기 대권을 노리기에는 한덕수 씨의 나이가 지나치게 많았다. 그러나 최상목 씨는 5년 후의 대권을 보기에도 괜찮을 정도의 나이다. 따라서 사태 수습 후에 그가 정치적으로 얻을 수 있는 몫이 있다. 그러므로 사태 수습에 조금 더 적극적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이준석 딜레마: 밀레니얼들을 향한 시대예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