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자가 발 디딜 곳이 없는 극단의 정치 환경
2025년 1월 13일에 얼룩소에 올린 글
현실주의자는 대부분의 경우,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더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의견의 합의를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의견이 완전히 다른 상대를 나와 같은 의견을 갖게끔 만들기란 무진장 어렵기 때문입니다.
경제에 관해서라면, 케인즈주의자와 신고전학파는 서로 대화를 통해 양측이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경제 정책을 만들어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케인즈주의자라고 부를 정도의 사람이면, 혹은 스스로를 신고전학파라고 부를 정도의 사람이면, 경제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를 정반대 성향의 경제학 조류를 좋아하도록 만들 수는 없습니다.
요즘 한국 정치판은 이러한 사고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국민의 힘 정당을 좋아하던 사람이 더불어민주당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뭅니다. 그런데 요즘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를 보면, '한국 보수 소멸'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현실주의자들이 계속 정치에 등을 돌리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첫번째는 탄핵 사유부터 시작됩니다. 탄핵 사유에 국제 외교를 집어넣음으로써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이 반발하게 만들었습니다. 국민의 힘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외교 노선에 관해서는 비판적인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현재는 미국이 "우리 편이야? 중국 편이야?"를 묻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외교 노선 변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물론, 윤석열 정부는 정도가 지나치긴 했습니다) 외교 관련한 내용을 집어넣어서 불필요한 반발을 샀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탄핵이 이루어질 때 추경호 씨 관련한 내용을 넣음으로써 추경호 씨의 이야기를 듣고 국민의 힘 당사에 갔던 국회의원들이, 탄핵 가결표를 던지기에 심리적인 저항선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림을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의사에 항상 반하여서 행동한다는 구도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러한 방식은 특검법을 만들 때에도 동일합니다. 특검 수사 대상에 외환의 죄까지 추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외환의 죄는 외국과의 공모를 통하여 국가에 혼란을 줄 때입니다. 상대의 공격 유도라고 적힌 수첩에 적힌 바는 외국과의 공모라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특검에 수사 대상으로 추가하기에는 너무 근거가 빈약합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답답해 하는 여론이 있으니, 국정 조사로 해결할만한 문제인데, 아예 외환의 죄를 특검 수사 대상에도 추가를 해버림으로써 여당 내에서의 이탈표 단속을 더불어민주당에서 해주는 꼴입니다. 그리고 그건 모두, 국민들이 상대 정당을 싫어하도록 구도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에 충분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국민의 힘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비판해야 할 대상이고, 이미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힘을 이탈표를 충분히 유도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이탈표를 적게 만들고 있는 민주당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두번째는 여당이나 정부 내에서 대화가 가능한 상대를 만들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강경 노선인 사람이 있고, 온건 노선인 사람이 있습니다. 강경 노선인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상대 편에게 적대적이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잘못은 보지 않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온건 노선인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온건 노선인 보수정당, 혹은 정부의 지지자들이 그들이 원하는 바를 대신해서 이루게 해줄 사람을 찾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덕분에 보수 정당 내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같이 행동해야 할 때에 같이 행동을 해줄 사람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직 대표 한동훈 씨를 여당이 왕따시키는 데에 공동으로 같이 왕따를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를 대화 상대로 삼아, 그가 요구하는 내용을 탄핵안을 작성할 때 어느 정도 반영해주었다면, 여당 내에서도 그를 따를 사람이 그토록 적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안에서도 대화를 통해 우리가 이 국면을 해결해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을테니까요. 그랬다면 그가 그토록 쉽게 축출되었을지는 의문입니다.
경제부총리 최상목 씨에 대한 대우도 같습니다. 그가 권한대행 자격을 승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것을 보면, 그가 그래도 정부 내에서 이념적 성향이 강하기 보다는 현실주의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헌법재판관 3명을 모두 임명하지 않았다고, 헌법재판관을 임명했다고 여당이 비판할 때에 같이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대화 창구를 열고 같이 협의하는 모습을 보일 때에 여당 지지자들 중에서 타협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정치란 그가 맡은 직위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지지자들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지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도층과 보수층 전체가 정치에 신물나게 하는 것이 목적인지, 더불어민주당은 여당과 정부 내에 비둘기파에게 정치적인 공간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덕분에 매파만 큰 목소리를 갖게 된 게 지금의 형국입니다.
마지막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전략적 인내가 부족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일처리에 반발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늦추는 방식으로 저항하기를 택한 사람들에게 모두가 내란 공범이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립니다. 덕분에 국무총리 한덕수 씨는 아예 '내란 대행'이라고 칭해진 채 곧바로 탄핵되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말 내란 선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를 내란 선동죄로 고발해버린 사례도 있습니다. 정말 중도층과 온건보수층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만드는 게 그들의 전략인지 모릅니다.
그 결과인지 여론 지표들이 참 이상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갤럽 1월 2주차 정기조사에서는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32%로 집계되었습니다. 해당 조사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조금 뜯어보니 제가 내리게 된 결론은 중도-관망파와 온건보수들이 대답하기를 거부하고, 해당 인구 집단 내에 그만큼 강경보수층이 대답을 많이 한 결과인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김문수 씨의 대선 지지율이기도 하지만, 정기조사 자료 검토 결과 무당층의 질이 확 내려갔다고 보였다는 것입니다. 한국갤럽 정당지지율 표 추이를 보면 무당층의 비율이 확 내려앉았습니다. 11월 2주차 무당층 26%, 11월 3주차 무당층 27%입니다. 그리고 12월 1주차 또한 무당층 26%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평시 여론조사에 응답자들의 26~27% 정도가 무당층에 해당한다고 보입니다. (11월 4주차는 명태균 게이트의 격화로 인한 정치 피로감 증대로 응답이 약간 회피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12월 2주차 23%, 12월 3주차 21%, 1월 2주차 19%로 쭈욱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12월 4주차와 1월 1주차는 집계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12월까지는 지지성향 유보자가 지지정당을 선택한 것으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1월 2주차 19%를 보면, 무당층의 정치 피로감 증대로 인한 답변 회피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바로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무당층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도무지 어떤 정당을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습니다. 국가에 이렇게까지 큰 혼란이 생겼는데도 정쟁을 점점 더 격화하는 모습을 보면 욕을 퍼붓고 싶을 정도입니다.
무당층 중 정치에 관심이 있는 정도를 살펴보면 그와 같은 해석을 하기에 어느 정도 개연성이 생깁니다. 무당층 중에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비율('많이 있다'+ '약간 있다')은 11월 3주차 32%,12월 1주차 29%, 1월 2주차 23%입니다. 그리고 무당층이 성향상 보수인 경우도 조금씩 줍니다. 11월 3주차 17%, 12월 1주차 16%, 1월 2주차 13%입니다.
온건보수와 중도 관망파가 정치에 대한 의견 표명을 하기를 꺼려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기층에 온건보수층이 어느 정도 있어줘야, 강경보수층들도 의견을 바꿀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비율이 아주 높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32%가 찍힐 정도면, 전체 국민의 20%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20%도 결과적으로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정치가 계속되면 저 20%는 생각을 바꿀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일본의 적군파 같은 사태가 우리나라에도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부디 윤석열 체포 이후에는 조금 정치판에 변화가 오길 바랍니다. 헌법재판관 충원도 되었고, 윤석열이 체포도 된 후면, 불안해 할 이유도 조금 없어진 상황일테니, 평화롭게 이야기가 오고 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