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필요한 순간

어떤 선택도 완벽할 수는 없다.

by Panda

여행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똑같이 흘러가는, 별 탈 없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다,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지루하고 갑갑하게 느껴져 여행이 가고 싶을 때도 있고, 또는 불현듯 항상 보아오던 풍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을 갈망하게 되기도 한다. 무언지 모르지만 내가 보지 못한 그곳에는 특별한 것들이 있을 것만 같은, 그곳은 내가 있는 곳과 달리 멋들어진 삶이 존재할 것 같은 착각을 가지기도 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순간 여행을 가보자 하고 결심을 한다.


여행을 하자 하고 결정한 순간 나는 두 가지 고민을 한다.

- 혼자 떠날 것인가?

- 나와 함께 할 동행을 찾을 것인가?


내가 하는 이 고민은 누구에게는 공감을 얻지 못할 수 있다. 친구 중에 한 명은 함께 여행을 하며 했던 말이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은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렇게 멋진 광경을 보고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재미야.”,


이런 이야기를 한 지인도 있었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이 좋아. 늘 누군가랑 여행을 하면 여행 후 마음이 허전해. 여행은 온전히 나만을 위해 가는 건데, 동행이 있으면 때론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상대가 싫으면 못 가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먹기 싫은 걸 먹어야 할 때도 있고,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나온 건데 그 시간을 완전히 느끼고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거든. 물론 외로움이 생기는 순간도 있지만, 사실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게 여행인데 동행이 있으면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거든”.


나는 그들의 의견에 모두 동의한다. 나 역시도 똑같이 그런 경험과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와 혹은 연인과의 여행도 해보았고, 그리고 혼자 여행을 떠난 본적도 많다. 혼자 떠날 때 밀려오는 외로움을 느껴보았고, 함께 했을 때 동행에 의한 짜증이 밀려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느낄 때 이 고민을 하게 된다.


혼자 떠났던 여행에서 우연히 생긴 일련의 사건들은, 물론 그 순간들을 비디오로 촬영해 영원히 기록을 남겼으며 좋았겠지만, 증명할 수 없는, 평생 내 기억 속, 내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잊지 못할 경험들이 많다. 이런 기억과 순간은 때론 나에게 새로운 삶의 지혜를 가져다 주기도 했고, 내가 가지고 있던 경험치를 넓혀줌으로써 나의 마음속 공간과 생각의 범위를 넓혀 주었다. 덤으로 두고두고 마치 옛날 옛적 고전 동화를 알려주던 할머니처럼 주변인들에게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남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선택 사항을 버리지 못한다.


2018년, 발리

인생에 시련이 찾아왔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일하던 직장에서 계약이 끝나 실업자 상태가 되었다. 이직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생각보다 이직이 쉽지 않아 친구가 이직 중간에 계약직으로 잠시 일해 보는 건 어떡겠냐고 제안을 해 면접을 보고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더랬다. 6개월 계약직을 구하던 업무였지만, 면접을 3번이나 보았고, 월급도 전 직장보다 훨씬 많이 주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나는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거기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함께 일하시던 분들의 보수적인 태도와 고리타분한 생각들은 나를 질리게 했다. 직장 생활의 회의감을 극으로 달하게 만들었던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6개월 이후 나는 직업을 잃게 되었다. 그 사이에 다른 직장을 알아보자 했지만 그 또한 생각보다 쉽지 않아 결국 아무런 준비 없이 실업자 되었다. 사람은 참으로 이상하다. 그 회사에 미련도 그 속에 일부가 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내가 아닌 그들에 의해 먼저 거부되었다는 생각은 모멸감으로 다가왔고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누군가에게 자존심 때문에 힘들었던 감정을 털어놓지도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시에 애정이 식은 남자 친구를 보았고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뭐라도 새로 시작해야 했지만 선뜻 용기 내어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다짐했던 건 마음이 끌리지 않는 건 시작하지 말자였다. 일이든 사랑이든. 좀 더 시간을 갖고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상황에 이끌여 무언가를 떠밀듯 시작하지 말자..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구석에서 울며불며 상황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자학하는 것보다는 여행을 잠시 떠나보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동행을 구할 생각을 하진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떠나고 싶었기에.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이라고 구글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발견한 곳이 발리의 우붓이었다. 발리의 우붓이라는 곳은 혼자 여행하는 배낭객들의 천국이라고 했다. 혼자 여행해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라고. 여전히 혼자 하는 여행은 내게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기에 혼자 여행에도 이상하지 않을 곳을 찾아봐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이었다.


밤 9시경 발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둔 차를 타고 예약해둔 숙소로 갔다. 우붓은 공항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낯선 환경과 어둠 속에 시골 같은 풍경은 두려움을 증가시켰다.


우붓에서 여러 가지를 체험했다. 현지 요리 수업에 참여했고 우붓에서 가장 유명한 요가 수련원이 요가반(Yogabarn)에서 거의 매일 요가도 하였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먼저 보이는 것은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동질감이라는게 생긴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공기 중에 서로가 서로를 실로 연결해 놓은 느낌이다.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된 친구는 몰리(Molly). 몰리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입양되어 미국 양부모 밑에서 자랐기에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빠르게 친구가 되었다. 3년 전에 엄마를 찾았고, 자기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쌍둥이 동생 역시도 입양이 되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다고 했다. 쌍둥이 동생과는 일란성이지만 서로 살아온 환경에 의한 스타일 때문인지 아주 다른 얼굴이었다고 했다. 한국이란 곳이 궁금해 2년 정도 울산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한 적도 있다고 했다. 몰리는 미네소타(Minnesota) 출신이었지만 7년 정도 여행을 하면서 일을 하던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였다.


그녀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요가 자격증이 있기에 요가 선생님으로도 일을 한 적이 있었고, 웹디자이너이기도 해서 현재는 웹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런 능력들 덕에 굳이 사무실에 출근하며 한 곳에 머물며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베트남, 태국, 발리 등을 여행하며 때론 몇 년 정도 한 도시에 머물며 떠나며 살아온 게 7년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었고, 예를 들면 요즘 가장 인기가 있는 한국 연예인은 누구인지 등과 같은, 그녀는 내게 미국 문화를 알려주었다. 우리는 한국 데이트 문화와 미국 데이트 문화와 같은 것들을 주제로 밤새 수다를 떨곤 했다. 그녀도 혼자 하는 여행이 었기에 내 동행이, 나도 혼자 하는 여행이었기에 그녀의 동행이 참 즐거웠다. 때론 혼자 여행 온 다른 누군가들과 그룹 지어 어울리곤 했다. 운이 좋게 혼자 온 여행에서 때론 혼자, 때론 둘이, 때론 그룹 지어 여행을 즐기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몰리를 통해서 알게 된 그녀의 디지털 노마드 삶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7년간 여행하며 돈을 벌다니. 몰리뿐만 아니라 우붓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살고 있던 세상과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좋은 기업에 취업해서 돈을 벌며 안정적이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말이다. 발리 우붓이 좋아 우붓에서 정착해 심리 치료사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누군가도 있었다. 1년간 세계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국제기관에서 일하면서 동남아를 중심으로 여행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 누군가도 있었다.


삶은 정말 다양했다.


혼자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세상을 보고 왔다. 몰리는 이런 말을 한적도 있었다. “요즘은 다시 미네소타로 완전히 돌아가서 정착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모두 내가 부럽다고 해. 여행을 하며 돈을 벌고, 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있는 내 모습이 정말 부럽다고. 그런데 7년간 여행을 하다 보니 정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여행을 지속하다 보면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기가 힘들거든. 아마도 발리 여행을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어. 사람들은 자기가 가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을 하자나.”


아마 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계약직 업무를 시작했고, 다시 그 계약이 만료된 것도, 타이밍 좋게 내가 직장에서 잘리던 그 순간에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도, 마치 신이 나에게 혼자서 발리 우붓을 여행하고 오라는, 그렇게 하라고 미리 만들어 놓은 계획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디지털 노마드: 갑갑한 실내 사무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리를 싸매고 근무하는 직장인이라면, 학창 시절 야외수업처럼 사무실에서 벗어나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독일에는 스마트폰, 노트북, PDA 같은 디지털 장비를 휴대한채 자유로운 공간에서 일하는 소위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들이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고 바라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일반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과감히 포기하고, 여행을 하거나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일한다. 개인의 취미나 재능, 경험 등을 토대로 기존 직장 개념에서 탈피한 디지털 노마드는 하나의 직업군으로서 일반 직장인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 네이버 백과사전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특별한 우연히 연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현저히 줄어든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여행은 행복감으로 다가온다. 구전동화와 같은 이야깃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잘 짜인 계획하에 여러 여행 장소를 함께 둘러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일상을 잊고 순간을 즐긴다. 그 속에서 오는 편안함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그런 느낌. 뭔가를 딱히 느끼고 돌아오는 여행은 아니다. 그저 매일 보는 일상이 아닌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는 충만감을 느낀다.


2016년, 홍콩

첫째 조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지 벌써 1년이 지나간다. 당장이면 웃는 얼굴로 깨어나 “엄마, 아빠, 할머니, 고모, 할아버지”를 부르며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를 거라는 믿음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오빠와 새언니는 일주일씩 돌아가며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의식이 없는 조카를 돌보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그들의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때 아빠는 새언니와 함께 여행을 갔다 오는 게 어떡겠냐는 제안을 했다. 엄마, 새언니, 둘째 조카, 나 이렇게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지친 언니에게,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그리고 슬픔 속에서도 우리에 웃음을 선사하는 첫 해외여행을 하게 될 5살 조카에게, 그리고 이들을 뭔가 보호하고 행복하게 해줘야 할 것 같은 큰 책임감을 갖는 내가 떠나게 되는 여행이었다. 나는 그 전에도 홍콩을 여러 번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선 모든 계획은 내가 짜겠노라고 큰소리를 쳤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행복감을 선사했다.


엄마는 처음 타보는 2층 버스를 좋아했고, 5살 조카는 처음 보는 두리안 때문에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 냄새를 갖고 있는 과일은 5살 인생에서 놀람과 재미가 되었다. 매일 병원과 집을 오가는 언니는 새로운 환경과 경험에 짜릿함을 느끼는 듯했다. 엄마와 조카 덕에 저녁 7~8시가 되면 호텔에 귀가하여 일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혹시라도 지치지 않을까 무리한 여행을 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행선지를 가기 전, 발길 닿는 여행이 아닌, 미리 교통수단과 미리 레스토랑을 정해야만 했다. 나는 매일 밤 다음날 가야 할 곳들을 미리 검색해 두고 수첩에 빽빽이 정리를 해두었다. 우리의 여행은 웃다 울다를 반복했다. 서로이기에 가족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었고, 또한 밀려오는 슬픔을 감추지 않고 울 수도 있었다.

더불어 서로를 배려해야만 했다. 때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해야 하는 여행이었다. 나뿐이었을까. 엄마도 마찬가지고, 새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른들이 가자고 하는 곳에 군소리 없이 조카도 따라와 주었다. 그렇게 조금은 포기가 필요한 여행이었지만 함께 배를 타고 마시던 맥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식당에 앉아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며 최고의 순간을 담으려고 했다. 그 자체가 추억이 되었다.

잠시나마 삶의 무게에서 떨어져, 즐겼던 여행.


여행을 하고자 하는 순간 언제나 내게 찾아오는 고민,


혼자 떠날 것인가. 누군가와 그 여정을 함께 할 것인가.


무슨 선택을 하든 완벽하게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이는 살아오면서 얻은 교훈이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혼자서 떠나게 되는 여행에서는 함께 할 때 얻지 못하는 경험을 얻게 된다. 함께 떠나는 여행에서는 혼자일 때 알지 못하게 되는 서로가 있음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때론 선택에 늘 후회가 남는다. 어떤 길이든 흑과 백이 존재하니 말이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우리에게 늘 숙제처럼 남는다.


다만 그 어는 선택지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저 머물러 있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어떤 길이든 떠나본 사람만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건 아닐까. 여행이 필요한 순간 가지게 되는 고민처럼 말이다.


다시 여행을 떠날 그날이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고민해 본다. 다음 여행을 하게 되면 나는 혼자 떠날까, 아니면 누군가와 그 여정을 함께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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