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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Jan 26. 2024

Dunedin

Dunedin에서

잔뜩 찌푸린 하늘이 스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Dunedin을 출발한 관광열차가 능선을 돌고 돌아서  넘어가니 우리를 환영하는 꽃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성숙한 여인의 허리선 같은 능선이 얌전하게 누워있다가 어깨를 살짝 내리면서 지나가는 우리에게 목례를 보낸다.

깊은 계곡 속에서 흐르는 강물은 바닥에 바짝 엎드린 낮은 자세로  우리에게 최고의 예를 다하고, 심지어 비를 피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쉬고 있던 양 떼들도 나란히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  예를 표하고 있다.


여기는 뉴질랜드 남섬에 자리 잡은 古都 Dunedin 외곽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Christmas Creek이다. 현재는 관광용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Gorge Railway의 중간 지점이다.

지난날 황금을 찾아 이곳에 들어온 백인들이 크리스마스날에 이곳 강가에서 금맥을 발견했다 하여 붙인 강 이름이다.

북반부는 지금 겨울이지만 남반부인 여기는 남극의 한기를 가득 안은 서늘한 여름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짓궂고 사나운 비가 아니고 부드러운 이슬비라 마치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다.


이 관광열차는 Dunedin 항에서 Pukerangi를 수시로 왕복한다.

관광열차가 지나가는 창가에는 호수와 강, 강과 계곡 그리고 단애와 평원 등 다양한 정경들이 지속적으로 펼쳐진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이 마치

노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나의  여정과 흡사한 것 같다.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보니 조금은 씁쓸한 기분마저 느껴진다.


열차 안에서 건장한 마우이족 아주머니가 현지 산 Pinot crisr로

양조한 화이트 와인을 자꾸 권한다. 탑승객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이 지역 특산물이란다.

달달하면서 코끝에 진하게 느껴지는 전혀 생소한 특유의 와인향이 더욱  여린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

서빙하는 마우이족 아주머니의 호탕한 웃음소리 속에 마우이 전사들의 강력한 무릎춤이 떠 올랐다.

갑자기 여려졌던 정신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다.


2019,1,26일

Dinedin 인근 Gorge railway

열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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