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경덕 Jan 24. 2024

입대

     입대

67년 12월 크리스마스날 아침심정은 공허 그 자체였다.

2학년 한 해를 데모에 휩쓸려  다니다가 황금 같은 일 년을 허무하게 날려 버렸다. 군입대와 학업 지속 여부를 놓고 심각하게 고심하던 시기였다.


다녔던 교회 청년회장으로부터 성탄절 이브 파티에 초청을 받았다. 멋 모르고 참가하였더니 눈치 없이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교회에서 만났던 자기들끼리는 모두 짝이 되어 있었다. 씁쓸한 기분으로 새벽 일찍 하숙집에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인 후 공허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바로 서울역으로 나갔다.

어딘가에 나를 반겨 맞아줄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았다.

제일 먼저 출발하는 열차는 장항선 열차였다.

수덕사를 최종 목적지로 삼고 예산행 표를 구매했다.

이날은 서해안 지방에 오후 내내 눈이 내려 이 지역의

시외버스는 모두 운행이 중단되어 있었다. 다행히 예산에서 덕산까지만 가는  마지막 차편이 있었다.

덕산에서 수덕사까지는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밤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마침 수덕사까지 가는 스님 두 분이 있어서 밤길이지만 맘 놓고 따라갈 수가 있었다.

눈이 내리는 밤중에  속에서 나무 지가 찢어지는 듯한 괴상한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산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하도 으스스하여 스님에게 물어보았다. 찢어진 소나무를 가리키며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

"소나무가 사람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은 설화입니다."

부드럽고 가냘픈 눈송이에도 이렇게 무서운 칼날이

숨어있다니, 놀라운 자연의 이치다.

수덕사 입구에 있는 초원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폭설에 가지가 찢겨나가며 밤새 울어대는 덕숭산 소나무의 울음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우~  우우~ 산 전체가 밤새 울고 있었다.


그날밤 많은 후회도 하고 대신 단순 결심도 했다.

내 어깨에 부담을 주는 눈을 내려놓으려면 나도 저 소나무처럼 가지를 찢어야 한다.

그리고 울어야 한다.

군 입대를 내심 결정하고 바로 서울로 다시 올라가

짐을 정리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 달 바로 해병대에 지원을 다.

지원하는 그날이 바로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하기 위해 내려온 날이기도 하다.

바로 43년 전 오늘이다.

그해 2윌,  내 머리카락은  바리깡에 사정없이 밀려 땅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다시 줍기까지 36개월이

걸렸다.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2011,1.21

            10년 전 쓴 일기지만 다시 읽어보니

            새로운 감회가 든다

작가의 이전글 성찬예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