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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Jan 12. 2024

성찬예식

성찬예식


주일 예배에 참석하려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채비를 해야 한다. 교통체증이 없더라도 갈 때는 1시간 10분, 돌아올 때는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거리로는 약 60km 정도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 오가는 길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꼭 이렇게 먼 길을 오고 가야 하나?"

스스로에게 물어보다가 답을 찾지 못해서 아내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3년 전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교회에서의 예배모임이 일시 중단된 적이 있다. 대신 공식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집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참으로 편했다.

주일날이 두배로 길어진 것 같이 느껴졌다.

한 달에 한번 행하는 성찬예식마저 집으로 배달되어 온 떡과 포도주로 집례자의 순서에 따라 참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편리한 것을, 왜 진작 몰랐을까?

그러나 모든 예배 순서를 거실에서 나름대로 진지하게 참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나고 나면 항상 허전하였다. 아쉽기도 하고 자꾸만 무엇인가 불경스러운 일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것마저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매 달 첫 주에 행하는 성찬식이 있는 예배만 참석해 볼까?

잔머리가  가지를 치며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얼마 여행길에서 우연히 손에 들어온 소설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기우가 쓴 "25시에서 영원으로"란 단행본을  읽게 되. 


"하늘의 권세들이 예배 중에 사제와 함께 한다.

세상의 삶 속에서 폐허가 된 우리의 영혼 안에 성체(떡)와 성혈(포도주)이 들어오면 우리들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을 지니게 된다. 등불이나 촛불을 들고 있으면 그 얼굴이 불빛으로 인하여 빛나듯이, 빛들의 빛이신 하나님을 자기 안에 지닌 사람은 그 안에서부터

빛이 나고 마침내 온몸과 온 육체가 변모하여 아름다워진다."

대목읽어 내려가다가 이게 뭐야 하며 두어 번 더 읽었다. 한동안 정신이 멍해졌다가 번쩍하며 다시 돌아왔.


우리 교회는 매달 첫 주에 성찬예식이 있다.

수가 거듭될수록 성찬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흐트러지고 건성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져 갔다.

습관적 타성이 악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말씀으로 나눔으로 몸과 마음이 변모하여 빛을 발하기는커녕, 봄을 기약하지 못하는 고목나무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지난날 무시로 오갈 때 보았던 남한강의  새벽 물안개가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봄은 봄 차림으로, 여름은 여름 차림으로, 사계절 내내 자신의 모습을 숨기듯 조용히 들어내며 우리들을 반겨주었던 양평행 길이다.

동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나면 아침 첫 햇살을 받은 북한산이 제일 먼저 인사를 한다. 특히 인수봉은 수줍은 듯한 얼굴로 항상 나를 바라본다. 착각을 벗어나기도 전에 강 건너 예봉산이 자기도 쳐다봐 달라고 사정을 한다. 오른쪽에 정좌한 검단산은 이미 토라져서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다. 몇 번의 숨바꼭질로 팔당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진짜 비경은 여기서부터 펼쳐진다.

강 건너 우측으로는 앵자산, 좌측으로는 청계산, 눈길을 멀리하면 용문산 백운봉 자락에  이어 대부, 소구니, 유명산 자락들이 연이어 눈에 들어온다.

호수에 내린 나뭇가지들의 기막힌 음영도 눈에 들어온다. 그 위로 한 무리의 철새가 날아간다.

매 주일 아침마다 감상하는 채색의  대형 수채화다.

두물머리를 지나간다.


'바다 그리워

 깊은 바다 그리워

 남한강은 남에서 흐르고

 북한강은 북에서 흐르다

 흐르다가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하나 되어 바다로 흘러가네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아,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한강 되어 네 '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는  믿음의 동산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 오늘도  당신의 말씀을 들으러, 형제자매의 음성 들으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더 밝고 높은 아신동산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 되고 싶어 말씀보다 먼저 주신 이 아름다운 자연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발로 밝고. 손으로 만지며

자연의 말씀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다.

숲 속을 지나 친 삶의 계단을 오른 후 당신이 지신

십자가 앞에 내 모든 것 내려놓는다.


당신이 날로 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 사역에 희들을 정원사로 동참할 수 있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성천예식에서 받은 당신의 성혈과 성체가 내 몸에

들어와 한 달 동안 등불이 되어 타게 하소서.

작은 빛이나마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소서. -아멘-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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