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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Dec 02. 2024

소요유

  소요유

옛 어른들은 사람의 건강을 논 할 때  아홉 수를 잘 넘겨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야만 다가오는 10년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다.

길을 가면 고갯길이 있고, 무슨 일을 할 때도 고비가 있듯이 삶의 여정에도 매 십 년마다 고비가 있는 있다는 말이다.

젊을 때 건너 온 29,39,49,59수는 별생각 없이 지나쳐버렸다. 그러나 69수를 넘길 때부터 이 말이 제법 의미 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70고개를 넘어선 지가 불과 며칠 전 같은데 벌써 80수 고개가 코 앞에 다가와 기다리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아직도

준마 같이 달리고 싶고

독수리처럼 날고 싶고

호랑이처럼 표호하고 싶은데


손주는,

하비 손이 왜 이리 쭈굴쭈굴해?

아내는,

당신 머리숱이 언제 이렇게 빠졌지?

라고 묻는다.

이제는,

조금만 오래 걸어도 고관절당기며 가벼운 통증을  느낀다.


다 털어버리고 또다시 일탈을 감행했다.

여기는 대만 남단 가오슝 해안에 있는 치치라는 조그만 섬이다. 혼자 훌쩍 떠나와 이곳 바닷가에서 한 나절을 멍 때리며 지나온 길도 한번 뒤 돌아보고 앞으로 넘어갈 80고개도 상상해 보았다.  

조금 후 넘어야  80 고개를 대비해 호흡부터 먼저 가다듬다.


파도는

쉼 없이 밀려와도

쌓이지 않는다.

소리만 다를 뿐


세월은

덧없이 지나가지만

쌓이는 것이 많다 

미련, 후회, 아쉬움


파도는 다시 밀려오지만

세월은 자꾸만 밀려간다

돌아보지도 않고 사라진다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소요유'란 말이 장자 편에 나온다.

인생은

소풍 갈 '소'에

멀리 갈 '요'에

놀 '유'란다.

남은 여생의 종착역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하루하루가 소풍 가는 날이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중간중간 틈나는 대로 쉬어가자.


쉬엄쉬엄 희희낙락하며 소요유를 실천한답시고,

후회 없이 즐겁게 살아 보겠다는 욕심으로 떠나왔다,

용을 쓰며 이렇게 떠나온 어리석은 중생이 한편으로는

처량하게 느껴진다.

     2024, 11, 26

         타이완 치치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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