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직도 여름

by 김 경덕

아직도 여름

월력상으로는 여름의 끝자락, 8 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그러나 금년의 무더운 날씨는 아직도 체격이 튼튼하다.

짜증이 날 정도로 연일 기승을 부리며 꺾을 줄 모른다.

가는 여름을 배웅하려고 일정을 잡았지만 반대로 더위와 동행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다시 천리포로 내려갔다.

아직도 한낮의 온도가 32'C까지 올라갔는데도 텅 빈 만리포, 천리포 해수욕장엔 피서객 대신 형체가 없는 폭염을 안은 해무만 가득하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 십 번을 찾아왔지만 올 때마다 이곳의 풍경은 항상 새롭다.

이곳 천리포 수목원에는 사시사철 나를 기다려 주는 꽃과 나무들이 있다. 비록 혼자만의 짝사랑일지라도 기다림이 있고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만남이 있다. 이번에 나를 반겨준 꽃은 다양한 종류의 무궁화와 수련 그리고 해당화다.


천리포에서 잠깐 발품을 팔면 해풍이 바닷가 고운 모래를 밤마다 몰래 쌓아 올린 신두리 사구가 있다. 여기에는 세월의 저 너머로 마음대로 유영할 수 있는 모래 언덕이 있다. 오랜만에 갔더니 모래 언덕을

예쁘게 단장까지 해 놓았다.

근처의 소나무 숲은 추억을 이야기하고 바다는 흘러간 옛사랑을 노래한다.

바다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 시간인 이른 아침 더 좋다.


물가를 따라 모래사장을 거닐면 곱디도 고운 모래사장 위로 현악 4중주가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톤이 낮은 콘트라 베이스부터 높은 바이올린까지

들려오는 음폭이 무척 넓다. 먼바다에서 밀려온 파도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콘트라베이스로 연주를 시작하면 첼로로 그 음을 완성하고 비올라로 톤을 높였다가 바이올린 소리를 마지막으로 모래 속으로 사라진다.

이 소리 역시 아침 썰물 때가 최고다.

오늘은 하늘이 멋진 수채화까지 그려 놓았다. 낭새섬 너머로 그려놓은 하늘이 너무 멋을 부렸다. 마치 일행을 환영하는 현수막 같아서 가슴에 담았다.


모항항 수산시장에서 고이 모셔온 갯물과의 만남과 나눔은 이번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다.

여름 제철 생물 농어회, 붕장어 숯불 구이, 참소라와 맛살조개구이에다 산 전복까지 좁은 상위로 비집고 올라와 자리를 차지하였다.

향기 좋은 뉴질랜드산 백 포도주 잔을 서로 마주치며 짓궂은 금년 여름을 밤이 기울도록 성토했다.

풍성한 갯물 잔치에 그 귀하디 귀한 꽃게탕은 밤늦도록 찾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해장용으로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기다림, 동행, 새로운 만남과 나눔, 그리고 도전이 함께한 여섯 장정들의 1박 2일 천리포 기행이었다.

쉽지 않은 조합의 다양한 연령층의 만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보람과 스릴도 느낄 수 있었다.


'덥다고 너무 덥다고

저리 가라고 밀어 보내지 않아도

머물고 떠날 때를

알고 있는 여름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남- 시 중에서



2025, 8,30일

태안 천리포 수목원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배롱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