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수로

by 김 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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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수로


5월 1일, 오늘은 통수가 시작되는 날이다.

일제 때 완벽하게 경지 정리가 되어 있는 남녘땅 넓은 평야 지대에서

나는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 오월 초하루는 어느 명절만큼이나 기다려지는 날이다.

이 날은 농수로에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날 즉 통수가 시작되는 날이다.

4km 정도 떨어진 대형 양수장에서 낙동강 물을 펴 올려 수로로 흘려보낸다.

수로 규모는 2m 이상 폭에 깊이는 어린이 키 정도였다.

잘 정비된 수로에 퍼 올린 깨끗한 강물은 겨우내 마른논을 무논으로

만들고 못자리 준비를 시작으로 가을 추수 전까지 매일 통수를 시켜 벼농사용

용수로 사용된다.

주목적은 벼농사용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다 목적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첫 통수가 이루어지는 날은 우리들이 그 해에 첫 수영을 하는 날이다.

아직 날씨가 차가워서 물에 들어가기가 이르지만 우리들은 숨겨둔 용기를

은근히 서로 자랑하며 찬물 속으로 마구 뛰어든다.

찬물로 인해 금방 입술이 새파랗게 굳어지고 온몸에 좁쌀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얼른 물 밖으로 나와 뜀뛰기를 계속한다.

땀이 날 때까지,,,,,,,,,,,,

어릴 적부터 이런 놀이를 하고 놀았는데 감기가 감히 덤빌 수가 있었겠나?

겨우내 몸속에 보관하던 묵은 때도 적당히 씻어내며 그 해 첫 목욕을 하는 날일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야외 스포츠 센터 수영장이 개장 날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그동안 낮은 물에서 봄을 기다리던 붕어, 피라미, 매기, 미꾸리

참개, 새우 등 각종 민물고기가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새벽잠을 설치고 일찍 수로에 나가보면 밤새 수위가 줄어들어있다.

낮보다 훨씬 맑아진 물속으로 붕어가 때를 지어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유영을

즐기고 있다.

이곳이 바로 우리들이 좋아하는 황금 어장이다.

채비는 신통치 않았지만 잘만 하면 아버지 아침 밥상에 올릴만한 매운탕 거리는

충분히 잡을 수가 있었다.


배수로가 지나가는 마을 앞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빨래터가 마련되어 있다.

엄마나 누나들은 빨래터로 유용하게 활용하지만 우리들은 세면대로

더 유용하게 활용하였다.

손도 씻고 발도 닦고 세수도 하고 때론 이 물로 소금 양치질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이 날 이후부터는 손에 붙은 때는 물론이고 눈곱이나 코딱지를 달고

다니는 동무들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이곳은 우리들의 경연장과 공연장이기도 했다.

이때쯤 토끼풀이 흰 꽃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한 뺌쯤 되는 꽃대까지 꺾어 연결하면서 다리 아래 물 위로 흘려보낸다.

물살이 급하지 않을 때는 5m까지도 연결하여 물 위에 흘려보낼 수가 있었다.

매일 챔피언은 바뀐다.

그날의 챔피언은 각자 베어서 모아둔 쇠꼴(풀)을 독차지하게 된다.

직성이 차지 않았던 나는 갈댓잎으로 배도 띄워 보내 보기도 하고 종이배도

접어 뛰어 보기도 하였다.

그중에 최고 챔피언은 비료 포대 종이로 만든 종이배, 왜냐하면 방수가 되어있어

오랫동안 멀리 떠내려 보낼 수가 있었다.

나무로 깎은 배를 수차례 만들어 띄워 보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나무 무게

때문이었던지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던 것 같았다.

그때 남몰래 익혀둔 나무 깎던 재주 덕분에 지금 양평에 있는 모새골 목공실에서

반장 노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월은 정말로 눈 부신 계절이다.

눈 부신 세월들이 겹을 더하며 쌓여가니 비록 힘들고 고달 폈으나 그대 그 시절

소싯적의 추억들이 그리워 진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미소를 머금게 하며 지난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201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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