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손님이 왔다.
하얗게 벚꽃이 피었나 보다. 아름답다. 벚꽃이 만개한 것을 며칠 새 인스타 안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지인들의 사진으로 확인한다. 작년 봄의 상황은 정말 갑작스러웠는데 그때 꿈꿨던 올해의 봄은 그때의 예상과는 다르다. 여전히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니.
잔잔히 음악이 흐르는 한가한 카페 안에서 따끈한 커피를 들고 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 일이란 아주 낭만적인 일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카페 사장으로서 홀을 바라보면 ‘카페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카페에 있는 카페 사장의 일상은 지난해 봄부터 더 별일이 없다. 더 한가한 늦은 오후에 통유리 바깥의 뒷골목을 홀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구의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정지된 시간 같은 일상에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날씨가 화창하여 카페에 문을 열어놓으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찾아든다. 겨우내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던 화분들을 카페 앞에 다시 빼곡히 꺼내놓았다. 이제 이곳 화분에도 꽃이 피기 시작하겠지. 어디선가 날아온 조그만 들꽃들도. 올해 봄도 꽃의 일상에 관심이 많아질 것 같다.
화창한 늦은 오후의 봄날. 어김없이 춘곤증도 찾아오는지 살짝 몽롱해진다. 그때, 뜻밖의 손님이 카페에 찾아왔다. ‘뜻밖의 손님’이라 하는 것은 카페를 하고 있는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마주하지 못했거나 바깥에서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이다. 자신의 시간을 들여 누군가를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의 거리를 말하기도 하니까. 문자보다는 전화가 어렵고 발걸음을 옮겨 찾아가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기에 ‘네가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라는 말은 언제나 마음이 좋아진다.
어쨌든 어려운 발걸음을 한 뜻밖의 손님 세 명이 봄이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카페에 연달아 찾아왔다. 나의 20대와 30대에 함께 했던 지인들이다. 오래된 지인들과 대화할 때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데 마치 그 나이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왜 그렇게 밤을 새워서 놀았을까.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을까. 일을 몸 상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다. 지금은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그때와는 체력이 많이 달라서. 이제는 그 시간밖에 있으니 굉장히 여유롭게 말할 수 있는 일들. 내 상관할 바 아니게 된 것은 이렇게 마음을 가볍게 만들 수 있구나.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힘들었던 때라도 피식 웃음이 난다. 아련하니 그립다. 기억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순간들이 각색되어 행복한 기억으로 편집되었다. 마주하고 있는 상대에게도 그런 것 같고. 그렇게 이제는 추억으로만 누릴 수 있는 한 시절을 생각하니 감성을 살짝살짝 건드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오랜만에 만난 뜻밖의 손님으로 마음이 넉넉해지고 따뜻해졌다.
봄은 왔지만 아직도 눈이 덜 녹은 것 같은 지금의 시간은 언제쯤 괜찮아질까.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세월이 먼 곳으로 많이 흐른 뒤에 ‘나의 얼마 안 된 사십 대 봄에 그랬었지.’ 하며 웃을 날은 오겠지? 지금의 걱정도 그때가 되면 굉장히 여유롭게 말할 수 있을 거다.
나도 이번 봄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누군가를 찾아가고 싶다. 어떤 공간에 있는 지인을 눈에 잘 담고 그곳에 공기를 한껏 느껴야지. 먼 훗날에도 지금의 나와 너를 기억할 수 있게 말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좋았던 시절로도 날아가야지.
이번 봄도 괜히 설렌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지라도 살금살금 어떤 희망이 마음에 솔솔 자라고 있는 느낌이다. 노래가 잔잔히 흐르고 나의 마음이 몽글몽글한 지금. 카페 안은 누가 뭐랄지라도 굉장히 낭만적이다.
채널예스 칼럼에서 '봄날의 손님' 글을 볼수 있습니다. ^^
링크 ▶ ▶ [에세이스트의 하루] 봄날의 손님 - 김경희 | YES24 채널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