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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Apr 13. 2022

퇴사 후 카페 사장이 되기로 결심하다.

- 그러다 6년 차 카페 사장이라니... 


퇴사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제주도로 훌쩍 떠났다. 카페 인테리어를 시작하기 한 달 전이었다. 마음의 결단을 내리기 위해 떠난 제주도는 도착한 다음 날부터 비가 왔다. 나는 비가 부슬부슬 오는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흘 동안 제주도를 계속 걸었다, 6년 만에 걷는 첫 올레길이라 설렘이 가득한 채 출발했지만, 그날은 미스터리 공포영화를 찍는 듯했다. 여름휴가 직전의 초여름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차로 이동하는 것인지 6년 만에 온 제주도는 걷는 곳마다 나 혼자였고 음침했다. 인적이 없는 길을 걸어서인지 왠지 모를 긴장감과 스산함이 계속 엄습해 왔다. 이런 날 걷겠다고 나온 것이 후회되었지만 이미 코스 절반을 걸어온 상태였다. 애써 두려움을 물리치고 하얀 우비를 입은 채 음산한 공기를 해치며 앞만 보고 걸었다. 


타박타박 계단을 오르다가 차라리 타임슬립을 해서 다른 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이미 다시 돌아가나 끝까지 걸어가나 똑같은 지점이었다. 게다가 그 코스는 중간에 포기할 수 없는 길이었다. 아무도 없는 길. 그 길 끝까지 걸어가야만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10년도 훨씬 더 지난 지오디의 노래가 가물가물 생각났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내가 서른한 살에 했던 고민을 서른일곱에도 여전히 하고 있다니. 그때와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올레길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결국 인간은 사는 동안 자신의 인생길 위해서 계속 고민하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명언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그런데 과연 인생이 생각대로 살아지는 것일까? 예측 가능한 삶이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생각대로 첫발을 내딛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이후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반전 가득한 은밀한 삶의 법칙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아무튼 그 긴 시간 동안 비옷을 입고 부슬부슬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누군가 나를 봤다면 무서워서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제주도는 6년 전에 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서른한 살의 늦가을에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제주도가 이렇게 성장할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제주도에 땅이라도 사놨어야 했나. ‘역시 나는 선견지명은 있지만, 추진력과 실행력이 없구나. 끊임없는 결정장애 때문에 시도도 하지 못했구나’ 하고 쓸데없는 후회를 했다. 그리고 지난 일에 대한 뒤늦은 자책을 하며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이젠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기자. 더 망설이지 말고 카페를 시작하자’라고 마음먹었다. 홀로 결단을 내리기까지 고독했지만, 결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일단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한다는 혼자만의 책임감과 인내심과 의무감까지 동반된 길이었다. 


다음날이 밝자, 나는 또 걷기 위해 시작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올레길 시작점 푯말 앞에 서는 순간 무기력감이 들며 더 걷기가 싫어졌다. 오늘도 7시간 이상을 혼자 걷다 보면 어제처럼 만신창이가 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시작하기 싫은 마음이 저 밑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미 시작점에 섰으니 도착점까지 가야만 한다고. 나는 지금 걸어야 할 운명이고, 그 운명에 저항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어제 다잡은 마음에 비장한 각오가 더해졌다. 마치 마라톤 출발선에서 한번 출발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뛰는 걸 멈추지 말아야 하듯이. 느리게 뛰더라도 걷지 말고 결승점까지 가야 한다고 오기를 부리듯이. 묵묵히 끝을 향해 다시 걸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고, 다음 날이면 또다시 걸었다. 그리고 완전히 결심했다. 


‘그래, 내 카페를 시작해보자. 마음먹은 대로 시작하는 거야!’




- '이래 봬도 카페 사장입니다만' - PART 1 바들바들 개인 카페에 도전하다 - #01 퇴사 후 카페 사장이 되기로 결심하다. (책의 내용을 한 챕터씩 써봅니다.)





  

시간은 흘러 마흔을 조금 넘은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이 길이 나의 길인지 묻는 것도, 이 길의 끝이 어딘지도, 내 꿈은 이뤄지는지 묻는 것도 무의미한 듯하다. 인생은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으니까. 

     

무엇을 선택하든 그저 인생의 파도를 진지하게 즐겨보자. 그렇게 삶의 순간순간 진심을 다해 차곡차곡 쌓아나가다 보면 무언가 되어 있겠지. 즐거운 반전을 기대해! 





카페를 시작한 이후 가보지 못한 제주도. 지금 제주도는 유채꽃이 활짝 피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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