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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차 카페사장이 바들바들 버티다가 시작한 일은?

- 기대와 실망이 빈번하게 찾아오는 삶일지라도.

by 김경희

지난해 여름. 나는 브랜드출시가 임박한 외식업 회사의 메뉴개발팀처럼 신메뉴를 아주 미친 듯이 만들고 있었다. 달콤한 크림을 듬뿍 올린 색색의 라떼, 달콤 쌉쌀한 에스프레소의 다양한 변신, 상큼하고 영롱한 에이드... 이전에 나의 카페에 없었던 메뉴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기분이 좋아지는 크림커피를 집중적으로 다양하게 만들어내다가 몸무게도 점점 늘어났다. 카페창업한 지 8년이나 되었음에도, 마치 창업 초기처럼 아침에 일찍 나와서 메뉴를 신나게 만들고 레시피를 정비하다가 멍해진 상태로 자정즈음에 들어갔다. 왜 갑자기 그런 열정을 부렸을까?




2023년 5월 코로나 종식선언이 되었지만 코로나가 끝나고도 매출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매출은 나아지지 않았고, 심지어 코로나 이전처럼 회복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하는 것에 한동안은 마냥 즐거웠고 기뻤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르고. 많은 것은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카페는 여전히 거리 두기를 하는 것처럼 여유롭고 한산했다. 카페 매출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근처 학습지 선생님들의 출근 횟수가 줄었고, 점심시간이면 카페에 와서 잠시나마 힐링을 하던 직장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는 세상을 대면에서 비대면 활동으로 많이 바꾸어 놓았다. 누구에게는 기회를, 누구에게는 어려움을 마주하게 하였다. 어려움은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처럼 번져갔다.


가끔씩 자영업자들의 커뮤니티(캐시노트)에 들어가서 올린 글들을 실시간으로 보며 나만 어려운 상황이 아님을 보았다. 내가 가졌던 매출의 의아함을 비슷하게 가지고 있었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특히 카페사장님들의 글들을 보다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슬픈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버티면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 하는 불안감도 동시에 밀려왔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원두를 바꾸는 노력도 해보았다.(고심해서 바꾼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카페는 단골손님을 점점 잃어갔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손님이 채워지지 않았다. 새로운 손님이 방문하는 횟수보다 오래된 단골손님들의 방문이 뜸해졌다. 단골손님의 매일의 방문루틴이었던 것이, 일주일 동안 한 번의 루틴이 되는 변화들을 마주했다.


원두 교체작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원두선별 작업을 할 때에는 신이 나기도 했는데, 교체작업이 끝나고도 한산한 카페를 바라보니 마음은 다시 공허해졌다. '그래, 뭘 해도 나아지진 않는 건가...' 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의 카페를 둘러보니 오래된 세월이 보였다. 간판도, 인테리어도, 메뉴도.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한 달, 한 달 지나니 위기감이 자꾸 내 마음을 침범했다. 더군다나 그즈음에 8년의 카페 영업동안 경험해보지 않았던 손님을 겪었던 것은 나를 더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를 늪으로 깊숙이 밀어 넣는 어떤 마음들이 자꾸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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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마음이 범람하던 어느 날.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주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래서 카페현관문을 활짝 열었는데 따스한 햇볕 사이로 가볍고 산뜻한 공기가 나에게 살며시 불어왔다. 숨을 크게 쉬니 기분이 좋아졌다. 바람하나로 사람의 마음이 바뀔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무기력한 마음이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이 문득 생겼다. 그러더니 희망과 기대의 마음까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날 나에게 불어온 바람은 나의 무기력과 우울을 하루 종일 쓱쓱 밀어내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갑자기 열정을 부리게 된 것은. 지금까지 잘 보지 않았던 커피 관련 유투버들을 보며, 내가 많이 정체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하며. '고인물'이었네. 자책도 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 더 맛있다고 하는 방식들은 모두 따라 해 보았다. 2016년 카페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다르게 커피를 만들어 내는 방식은 더 다양하게 변화되어 있었다. 커피를 맛있게 하기 위한 에스프레소 추출 방식의 섬세한 변화들과 바리스타들의 메뉴 레시피를 보면서 나는 점차 활기를 찾아갔다. 몸은 활력이 생겼고, 마음은 매일 아침마다 설렘으로 시작했다. 어떤 크림라떼를 만들어볼까? 오늘은 어떤 에스프레소로 내려볼까? 어떤 추출 방식으로 드립커피를 내려보지?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접할 수 없었던 숙련된 바리스타들의 커피 추출방식을 보면서 기록하고 따라 해 보았다. 더불어 판매를 멈췄던 베이커리 디저트도 판매를 다시 시작하며 종류도 늘려가기 시작했다.


카페 내부의 묵은 짐들도 정리해 나갔다. 손님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묵은 짐들을 묵은 때를 벗겨내듯 매일 정리했다. 그런 와중에 매출도 점점 더 나아졌다. 2024년의 초여름은 나에게 기대와 희망을 가져다준 계절이었다. 그리고 여름의 절정으로 가는 7월의 끝자락. 나의 한 달 매출도 상반기의 매출들을 넘어, 최고 매출을 찍었다. 근 3년 만에 보게 된 매출이랄까.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오로지 핑크빛으로만 바라보는, 희망에 부푼 2024년의 여름날이었다.




8월이 되었다. 날씨가 정말 너무 더웠다. 그리고 8월 초 계획되어 있던 아버지의 암수술이 있었다. 너무나도 더웠던 8월의 여름. 병원을 오가느라 카페도 보름간 열지 못했다. 그렇게 모두에게 더웠고, 마음도 지쳤던 2024년 8월의 여름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 지나갔다.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9월. 다시 제대로 된 카페영업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이상했다. 7월에 그렇게 좋았던 매출은 8월이 되고 영업을 하지 않은 만큼 아주 빠르게 하향하고 나서, 이상하리만치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9월이 지나고 10월, 11월이 돼도 매출이 나아지지 않았다. 자영업자들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여전히 모두가 힘들다는 말들 뿐이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지만 그것이 안심의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산한 카페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매장 안에 있는 책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출간한 책에 눈이 갔다. '저때는 참 좋았는데...' 하며 책을 넘겨보았다. 그러다 눈이 멈추게 된 한 단락.


... 나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주변의 카페들이 1,2년도 안 돼서 다 문을 닫았다. 이것은 경쟁자가 포기했다는 뜻이다. 전쟁터 같은 카페공화국에서 내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그런 가게가 하나하나 늘어갈 때마다 내 마음도 씁쓸하고 슬픈 마음이 든다. 1년 뒤에 폐업한다는 것을 개업할 때 상상하는 사장이 있을까?

하루 평균 2,500여 개 업체가 폐업하는 이 시대의 현실에서 과연 나도 괜찮은 걸까? 그곳에 내가 줄 서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_ <이래 봬도 카페사장입니다만_이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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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들바들 창업한때가 엊그제같은데, 이제는 바들바들 폐업을 생각하고 있다니...


저 글을 썼을 때가 2018년이었다. '그럼 나도 결국은 폐업에 줄 서있었던 걸까...?'


마음이 쓸쓸해지고 슬퍼졌다. 차라리 희망과 기대가 없었던 봄과 여름이었다면 어땠을까? 무기력한 마음이었던 봄날과 여름날을 지나, 또 그저 그런 가을을 맞이했었다면 이 절망감은 덜했을까...?

나아진다는 희망과 기대로 한껏 부풀었던 그 마음은 모두 터져버리고 카페바닥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바람까지 쓸쓸해진 11월의 가을. 축 늘어진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이며, 우울이 스며들지 않도록 매일 정신을 바짝 차리던 날들이었다.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강남에 있는 한 공간대여 매장에 방문하게 되었다. 카페를 시작하면서 서울 쪽은 잘 가게 되지 않았는데 그날은 꼭 가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방문 이후 서재 같은 안락한 느낌이 좋았었는지 자꾸 그 공간이 생각났다. 머릿속에서 계속 아른거렸다. 그래서 그 프랜차이즈 공간을 호기심에 하나씩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점점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공간은 어느새 내 마음에 들어와 나의 마음을 점점 데우고 있었다.


12월의 겨울이 되자, 그 공간처럼 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것은 카페를 계속 운영한다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느새 나는 카페 인테리어를 공간대여 매장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상상하고 있었다. 이 어려운 때에 내가 '제정신' 인가 싶기도 했다. 마흔 중반에 갑자기 다른 걸 하겠다는 나를 이성적으로 계속 자제시켜 보았다. 그렇지만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다.


지루한 삶 속에서 무기력함을 동반하며 하던 대로 살고 있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샘솟고 가슴이 벅차오르며 보이지 않던 희망을 보는 순간이 있다.(그게 오히려 제정신일수도 있다.) 살다 보니 그럴 때가 별로 없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든다. 그런데 그 순간이. 나에게 또다시 찾아왔다. 또 열정을 부릴 때인가? 그렇게 나는 '제정신'에서 본 희망을 다시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미련이 겹겹이 쌓인 카페 7번길과 결국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결심만 했다.(뭘 당장 바꾸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아주 천천히 정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12월의 겨울 내내.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나의 카페와 이별하고 있는 중이었다. 매일매일 카페와 메뉴를 애틋한 마음으로 촬영하고. '내년 겨울에는 7번길 카페는 아닐 거야...'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하루. 우유부단한 마음으로.




마음을 천천히 정리해 가던 2025년의 1월 첫째 주. 그 공간대여 업체에 문의를 했고, 바로 브랜드 대표와 연락이 닿았다. 나는 전화로 문의만 하려고 했는데, 수원에 있던 대표는 인천에 있는 나의 카페로 지금 당장 방문 하겠다고 했다. 두 시간 뒤 대표는 이곳에 방문했고. 자신의 브랜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마도 그때 적극적으로 오겠다는 사람을 한사코 만류했다면 나는 이 공간을 안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월요일 미팅을 하고 목요일 계약을 하게 된다. 결단하니 속전속결. 그리고 2025년 새해의 겨울. 이 공간은 변화를 시작했다.


일단, 시작했으니. 짐을 치워야 했다. 작년에는 카페영업을 더 잘해보려고 묵은 짐을 정리했었는데 반년이 지나니 다른 목적으로 짐을 치우고 있었다. 문득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공간을 변화시키면서. 브랜드대표는 "버리세요, 버리세요!"를 외쳤다. 카페와 내가 함께한 세월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카페의 물건들이 그저 물체일 뿐이다. 그러기에 냉정하기가 쉽다.

그렇지만 나는 "안 돼요, 안 돼요!"를 말했다. 이 카페의 물건들은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의 존재의 일부였다. 그 함께한 세월이 그냥 사라지는 것 같아 얼마나 주저하는 마음이 커졌는지... 하나하나 미련이 가득한 물건들뿐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다시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은 뭐 하나 하기가 굉장히 힘든 사람이며 (버리기도 힘들고) 고민이 많다는 것. 그나마 육신의 나이 듦에 체력이 저하되어 생각은 줄어들고, 생략하는 것이 많아졌다는 것은 다행한 일일까? (공간의 변화과정은 다음 글로도 써볼예정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공간은 완성됐고, 마침내 2025년 봄. 3월 7일 오픈을 했다.(정말 갑자기)

이제 '카페 7번길'에서 '파티앤스터디 7번길'이 되었다. 지난해 여름. 카페가 다른 공간으로 바뀐다는 생각은 상상도 못 했다. 지나 보니 이 공간을 위해 그 모든 시간들이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상황도. 내 마음도. 모든 것이.


그렇게 나는 다른 세계로 문을 활짝 열었다. 다시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하며, 어려운 상황에도 나아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기대와 실망이 빈번하게 찾아오는 삶일지라도 희망을 보고 가능성이라는 것을 찾는 것은.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되어야 할 선택이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염려가 존재했지만 저 멀리 앞을 보고 도전했던 공간을 대여하는 일. 공간은 달라졌지만 카페를 하던 때처럼 늘 아침마다 출근을 하고, 나의 루틴을 진행한다. 그러다 예약이 들어와 손님들의 목적대로 다양하게 공간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덩달아 즐겁기도 한다.


5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이 공간을 준비한다. 지금도 세세한 것을 변화시키고 정비한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이 공간을 소개하는 블로그 글을 쓰는 것도 참 즐겁다. 공간을 시작하면서 좋은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더 많은 가능성들을 찾을 수 있어서이다.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전혀 모르는 손님들이 이 한적한 골목의 7번길 공간을 찾아서 방문할 때마다 나는 용기가 생긴다. 어려움이 도미노처럼 번져갔지만 이제는 다시 희망이 번져가는 계절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7번길 골목을 다시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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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넘게 ‘카페 7번길’이었던 이곳.

지금은 ‘파티앤스터디 7번길’이라는 이름으로

3월 7일, 새 출발을 했어요!


혼자 머물기에도

작은 모임을 열기에도

특별한 하루를 채우기에도

참 좋은 공간이 되었답니다.


같은 자리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시작되는 공간

당신의 시간도 이곳에서 특별해지길.

깊고 따뜻한 시간이 흐르는 이곳에서

당신의 공간을 준비해 둘게요!


이름은 바뀌었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7번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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