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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모 Jun 15. 2021

내가 이준석이라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할 것 같다

어제 차별금지법 국회 청원이 10만 명을 드디어 돌파했다. 너무 기뻤다. 그다음 프로세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이준석이 받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이준석이라면 받는다'였다. 


'이준석이 받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던 이유는, 이 의제마저 빼앗기면, 민주당 진짜 힘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겨야지. 왜 그러니. 너'라고 나에게 혼냈다. '응. 맞아 맞아 반성해.'라고 바로 반성했다. 


'내가 이준석이라면 받는다'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1. 일단 10만 명이 넘었다. 물론 지역 단위에서 이 이슈가 조직되었냐 와는 별개로 사회적 힘이 구체적 수치로 보인 것은 큰 압력이다. 물론 이 이슈 관련해서 청와대 국민청원  20만을 통과한 것을 찾아보면. 휴… 여기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부족했나라고 보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튼. 



2. 엘리트주의, 반페미니즘 등등 이준석, 자신이 받고 있는 비판 지점을 한 번에 날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차별금지법의 세부 내용과 이준석이 받고 있는 비판 지점이 서로 겹치냐 안 겹치냐의 문제와 별개로, 그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3. 국회 입법 청원 10만 명을 넘겼으니, 어차피 국회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 이때 국민의힘이 선제적으로 차별금지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그 공을 민주당에 돌릴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물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실질적으로 통과하기까지 국민의힘이 적극적으로 협력하느냐, 사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지 혹은 되려 방해를 하는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 정치 영역에서 먼저 선언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니셔티브를 쥔다는 것. 키를 가진다는 것. 그것이 가지는 힘. 흠. 민주당 의원들이 여기에 욕심을 부렸으면 좋겠다. 


4. 이번에 이준석을 당선시키는데 큰 힘이 된 국민의힘 MZ 지지그룹은 국민의힘을 전통적으로 지지하던 그룹들과 결이 다를 것 같다. 직접 조사해보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지난번 경향신문 20대 여성, 남성 좌담회 때 만났던,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당연히 통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놀라웠다. 진보 그룹의 청년들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물론 아주 작은 샘플일 수 있지만, 작년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8.5%가 한국 사회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 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한 결과와도 맥이 닿아 있지 않을까 싶다. 기성세대의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개념과 MZ 세대가 내리는 진보와 보수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5. 이준석이 1년 뒤, 2년 뒤가 아닌 5년 뒤, 10년, 20년 뒤에도 계속 정치를 하겠다고 판단한다면, 자기가 어느 그룹의 지지를 받아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찬성한다면, 국민의힘 내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그룹뿐 아니라, 진보 그룹의 적극적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극적 반대는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이준석이라면’이라는 가정 하에서다. 


6. 종종 정치를 하고 있는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가 있는데, 그때 꼭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혹시 큰 꿈을 품고 계시면, 그게 수년 내에 도전할 게 아니라면, 부디 위가 아닌 당신보다 10년, 20년, 30년 젊은 그룹의 눈치를 봐주시면 좋겠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 이 친구들이 뭐라고 이야기할지 생각해보면, 좀 간단하게 정리가 되지 않을까요? 문제는 버티기겠지만요. 현재의 압력을 버텨낼 내면의 힘, 외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당신과 당신 팀의 몫이겠지만요. 그렇게 버티기를 하면 친구들이 달려와 주지 않을까요."라고. 이 이야기를 취하느냐 취하지 않느냐는 그의 몫이겠지만. 꼭 한다.  


7. 이준석이 당 대표 선거에 나서고 얼마 안돼서 친구들과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될 것 같냐 아니냐’로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준석이 당대표가 될 것 같다는 것에 한 표를 던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됐으면 좋겠다 안 좋겠다, 그의 주장이 옳냐 틀리냐는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내가 국민의힘 지지자라면 그를 뽑겠다'가 판단의 기준이었다. 


8. 지난 재보궐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힘 당원들 & 지지자들이 '어랏. 이겼네. 한동안 절대 못 이길 것 같았는데, 이겼네’라는 이기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공은 진짜 크다 크다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9. "지난 재보궐은 민주당의 페미니즘 정책 때문에 졌다"라는 사실 말이 안 되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준석이 재보궐 결과에 대해 선제적으로 해석을 던지면서, 재보궐 평가 자체가 이준석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계속 어젠다 세팅이 이준석의 말 중심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신문 정치면에 있어서도, 구석으로 내쳐짐을 당했던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마이크, 즉 이니셔티브가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경험을 이준석 덕분에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언론의 책임이 있냐 없냐는 또 다른 이슈니까 일단 패스하기로 하고. '오호라~~~ 뭐지 뭐지' 내가 이준석을 지지하지 않는, 50대 이상의 국민의힘 전통 지지자라도, 이 분위기가 계속되게 하려면 이준석을 당대표로 뽑을 수 밖엔 없을 것으로 봤다. 대선까지 이 국면으로 가게 하려면 이준석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당원들도 결국에는 이준석을 택하게 될 거고, 당대표로 선출될 거라는 예측을 해봤다. 그런 관점에서 이준석이 당대표가 된 것이 큰 사건으로 봐지지 않고, 논리상 당연한 결론이라고 봤다. 여기서 이준석이 어떻게 그걸 해내게 됐냐는 또 다른 이슈니까 그건 다음 기회에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0. 여튼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가자면, 위와 비슷한 관점으로, 이준석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이준석이라면 차별금지법을 받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래 KBS 열린토론에서 발언을 보니 이준석이 "차별금지법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0hJfs9AQ00


11. 민주당.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해서 이준석보다 한 박자 늦는다면 지금보다 정말 더 큰 충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차별금지법 제정, 정말 적극적으로 받길 바란다. 뒤늦게 허둥지둥 따라가지 않길 바란다. ‘이런이런 환경의 제약 때문에 못 받는데요’라고 말하지 말고, 입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데, 혹은 제약을 뚫어내는데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했으면 좋겠다. 농부에게 밭을 갈라고, 그 밭을 갈 권한을 주었지, 밭이 가시밭이라고, 돌밭이라고 안돼요라는 변명을 늘여놓으라고 표를, 입법의 권한을 준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시민들이. 


12. 그런 측면에서 이준석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 찬성했으면 좋겠다. 이건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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