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점수만 줄 거야
고향으로 내려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3월의 어느 날, 선생님께서 수행평가를 공지하셨다.
"다음 시간에 수행평가를 볼 거야."
"오픈북이니까 쓰기만 하면 돼."
나는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학교 다니면서 글씨를 못 써 시험을 못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험 당일이 되어서도 대체 평가에 대한 공지를 받지 못했다.
'내가 대체 평가를 요구하지 않았나?' 아니다. 몇 번씩 전 글씨를 못 쓴다고 알렸고, 한글 파일 제출이나 분리 시험 등의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안내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이 시험을 보는 동안 다시 질문했다.
"그럼 제 점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선생님은 평가 기준표를 가리키며
"저기, 기본 점수만 줄 거야."
라고 하시고는 내 시험지에 직접 이름을 쓰시고 걷어 가셨다.
순간 말문이 막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경민이 기본 점수만 주시는 거예요?"
"그럼 어떡하니. 쓴 게 없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반 전체가 일어섰다.
"다른 선생님들은 경민이가 못 하는 건 다른 걸로 대체해 주시는데 왜 선생님은 기본 점수만 주려고 하시죠?"
반 전체가 선생님을 둘러싸고 이야기했다.
"경민이만 어떻게 특혜를 주니?"
친구들은
"그건 특혜가 아니라 권리죠!"
라며 식사도 미룬 채 논쟁을 벌였다.
"그럼 너네 다 경민이 다른 방식으로 시험 보는 거 동의한 거다."
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우리는 급식실로 갔다.
어떻게 본 지 한 달도 안 된 나를 위해 싸워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순간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이 일을 겪으며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했다.
누군가는 "퇴직을 앞둔 교사라서 어쩔 수 없다. 네가 이해해."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남을 위해 싸워 줄 줄 아는 좋은 친구를 만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혼자서는 절대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학을 꿈꾸며 공부할 장애 후배들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세상에 남을 차별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나이가 많아서, 어려서 등 갖가지 이유를 붙여가며 하나씩 넘어가다 보면 이 세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을 알고 즉시 바로잡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