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마흔네 살이 되었고, 한 달 전에는 빈혈 판정을 받아 철분제를 먹게 됐고, 만성피로는 일상을 잠식해온 지 오래였다. 식단 변화와 운동습관만이 나를 구원해줄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우선 도서관에서 중년의 식단과 운동에 관한 책 4권을 빌려 비교하며 봤고 공통적으로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고 주 3회 40분 이상 꾸준한 운동을 권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전에는 운동을 시작하며 은근히 살이 빠지거나 근육이 생기리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운동이 그저 잠깐의 결심으로 하는 ‘이벤트’가 아닌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면 ‘노인정 코스식’일지라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굳어있던 몸을 당장 움직이게 할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는 필요했기에 제일 빠른 시일 내에 열리는 ‘부천 3.1절 마라톤대회’ 참가신청을 하게 됐다.
인스타와 단톡 방 인증은 나의 힘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닌 그것. 운동!! 셀프 칭찬이라도 칭찬과 응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린이집 엄마들과 하는 독서모임 단톡 방과 개인 인스타에 1월 20일 마라톤 참가신청을 알린 후 오늘(2월 14일)까지 매일 운동을 하고 자주 인증샷을 올렸다. 코로나 사태로 주로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15층 계단 오르기 5~7회(내려올 때는 기계의 힘으로)와 아파트 주변 걷기나 뛰기를 병행했다. 그 모든 운동은 만보계로 5 천보 이상이거나, 시간으로는 40분 이상 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매일 같은 사진을 올리면 자칫 단톡 방의 피로도를 높일 수도 있겠다 싶어 조심스러웠는데 의외로 ‘궁금하다’‘매일 올려도 좋다’‘결심을 실천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응원이 많았다. 죽어있던 인스타를 살려내 거의 매일 만보계 인증과 운동 후 셀피를 올렸는데 ‘좋아요’를 표시한 사람은 몇 안 되는 지인들이었지만, 그곳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이유로 왠지 모르게 책임감이 생기고 매일 빼먹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이제는 단톡 방에서 ‘계단운동’에 동참하고, 헬스장에 다시 나 가게 됐다는 ‘동조자’도 만들어졌다.
처절하게 위대하게
1월 20일부터 시작한 15층 계단 오르기. 1월 30일까지는 두 번밖에 하지 못했다. 걷기나 뛰기를 병행했기에 계단운동을 주로 피하게 됐다. 마침 설 명절이 끼어있어 핑계가 좋았다. 허나, 2월부터는 이틀 정도를 빼고는 가벼운 러닝과 함께 매일 15층 계단을 5회 이상 올랐다. 40분 러닝머신을 해도 땀이 잘 나지 않는데 15층 계단을 2~3회 오르면 어느새 등이 축축해진다. 너무 힘들어서 이어폰으로 유튜브에서 나오는 재밌는 이야기라도 들으며 오르니 어느새 계단운동이 끝나 있었다. 그런데 왠지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처절함이 없으니 오른 것도 아니고 안 오른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이제는 이어폰을 빼고 그냥 한 계단 한 계단 집중한다. 매일 처음 하는 것 같고, 매일 죽을 것 같은 것만은 변함이 없다.
고맙다! 삼일절 마라톤
계단운동을 이어온 지 한 달째, 오늘 부천 삼일절 마라톤 주최 측은 코로나 19로 인해 대회를 5월로 연기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연기’를 ‘취소’로 착각한 나는 그 즉시 홈피에 가서 참가비 환불신청을 했다. 연기라서 굳이 환불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지만 글을 삭제하지 않았다. 생애 첫 마라톤을 뛰지 못했어도, 그 날을 위해 한 달 가까이 운동을 해왔고 이제 대회 없이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 진짜 목표는 ‘마라톤 뛰기’가 아니라 ‘운동 습관 만들기’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