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어린이집 하원을 준비하다가 ’서울시내 어린이집 휴원명령’ 공지 문자를 받았다. 올해 초등학생이 되는 큰아이의 입학 역시 일주일 연기됐다. 대체 언제쯤 이 상황이 끝날지 아무도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뉴스는 세상이 곧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실시간으로 반갑지 않은 소식을 타전하지만, 스피노자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일상이다.
피로가 가득한 질병본부 담당자의 얼굴빛이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쉴 새 없이 주변을 오가는 택배노동자도 안스러운 생각이 든다. 오전에 내 새치염색을 해준 헤어디자이너도 마스크를 쓴 것 만 빼면 이전과 다를 게 없는 노동을 했을 것이다. 전업주부라 불리 우는 나는 어제도 오늘도 점심을 먹은 후, 아이들을 데릴러 가기 직전까지 꼬박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쓰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왜 쓰고 싶은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고 싶은지’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요즈음. ‘쓰고 싶고’,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간절하다.
<사람은 무엇인가 표현할 것이 있으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내면에 어떤 가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글로 표현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대학시절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하고 집에 간 날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책을 읽었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신혼이던 아내에게 하소연하다 복받쳐 울었다. 나만의 분투였다. 투명인간으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강원국의 글쓰기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표현하지 않으면 투명인간이 된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나를 표현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글로써 무죄를 증명할 필요도 없고, 명문장을 쓸 필요도 없는 나는, 오늘도 한 송이 꽃을 심듯 여백을 채운다. 언젠가 완성될 소박한 정원을 꿈꾸며. 어젯밤, 강원국이 아들에게 쓴 편지가 나한테도 위안이어서 옮긴다.
아들 하람아,
살다 보면 정말 솟아날 구멍이 없을 것 같은 캄캄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가 한두 번은 있단다. 불이 난 지하철 열차 안에 갇힐 수도 있고, 자동차를 탄 채 물에 빠질 수도 있으며, 비행기 사고로 오지에 추락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이 힘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람아,
그 순간에 절망하지 마라, 결코 포기하지 마라. 네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라.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그래서 이젠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그 순간이 밑바닥이다. 바로 그 너머에 살길이 있다. 10초만 더 참아내면 너를 구해줄 누군가가 온다고 생각해라. 그래도 못 버티겠으면 어떤 경우에도 네 편이 되어 너를 도울 것이라는 아빠의 약속을 믿어라.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날 아빠가
(강원국의 글쓰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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