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가 사라진 시대를 버티는 법

by 노경문

2025년 12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이 공개됐다.
읽다 보니 묘한 헛웃음이 났다. 오래 지켜보던 어떤 관계가 더 이상 예전 모습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때 느껴지는, 그 씁쓸함이었다.

전략서가 말하는 메시지는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는다.
“정의를 위한 싸움은 여기까지다. 앞으로는 각자 살아남아라.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면 그만한 비용을 감수하라.”

트럼프와 MAGA 진영은 늘 ‘반공’을 앞세워왔고, 중국을 최우선 위협으로 규정해 왔다.
그런데 정작 문서 안에서는 오랫동안 외쳐오던 ‘체제 전복’이나 ‘민주화’ 같은 구호가 사라졌다.
대신 무역 적자를 줄이고 실리를 챙기겠다는, 훨씬 차갑고 계산적인 접근이 자리를 차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제의 적이던 중국은 오히려 더 읽기 쉽다.
그들의 야심은 최소한 일정한 방향을 유지한다.
반면 함께 가치를 나눈다고 믿었던 미국은 하루 만에 태도를 바꾸며 동맹에게 청구서를 내밀었다.

냉전 시절의 ‘적대적 공생’은 그렇게 끝났다.
가치(Value)가 스러진 자리에는, 이제 얼음처럼 붙어버린 가격표만 남았다.

시장은 정직해서 추세선이 무너지면 반드시 무언가 대응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종목은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펀더멘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위에서는 미국이 ‘안보’를 담보로 우리의 기술과 공장을 가져가려 하고,
아래에서는 중국이 제조업 생태계를 숨 막히게 파고든다.
흔히 말하던 ‘샌드위치’가 아니라, 위아래에서 동시에 눌리는 압착에 가깝다.

취미로 하는 보디빌딩에서 배운 건 단순한데, 자꾸 떠오른다.
근육은 결국 내가 찢고 내가 회복시켜야 자란다는 것.
누구도 대신 내 몸을 강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
느린 축적, 작은 자세 조정, 방향을 잡아주는 조언들은 필요하지만 마지막 한 번의 반복은 결국 내 몫이다.

요즘 시대의 흐름도 그와 비슷해 보인다.
미국의 전략서에서 드러난 변화는, 더 이상 ‘우리 편’과 ‘그들’의 구호로 설명되는 세계가 아니라는 신호였다.
거대한 서사나 이념보다, 각 개인과 각 국가가 들 수 있는 실질적 무게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대.
‘국가’, ‘조국’, ‘민족’ 같은 단어들이 예전처럼 안정된 지지대가 되어주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정말 잃은 건 동맹 자체가 아니라 판단의 감각이었다는 사실을.
남이 세워준 가치의 틀을 너무 오래 신뢰한 나머지, 그 틀이 흔들리자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잊어버렸다는 것.

결국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근육이 하루 만에 만들어지지 않듯, 개인의 존엄과 가치도 삶의 선택과 태도를 통해 천천히 단련된다.
외부 환경이 요란하게 흔들려도, 내가 지키고 싶은 기준이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처럼.
시대의 패러다임이 흔들릴수록 더 거창한 충성심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인간으로 설 것인가가 중요해지는 흐름이다.
누군가의 그늘은 잠시 빌릴 수 있지만, 나를 세우는 일은 결국 내 손에서만 시작된다.

다섯 살 승원이에게 ‘100’이라는 숫자는 반듯하고 정확한 모양으로 다가오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숫자처럼 떨어지지 않고 늘 울퉁불퉁하고 예측이 어렵다.
승원이의 세대가 살아갈 미래는 “미국이 지켜주는 나라”라는 오래된 구호 속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혼란이 어쩌면 필요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달콤하게 포장돼 있던 동맹의 외피를 벗겨내고, 그 틈에서 우리가 직접 설 수 있는 힘을 확인하는 시간.
다시 말해, 우리의 근력을 실제로 키울 시기다.
불안은 남지만, 그 불안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이념의 전쟁은 끝났고, 이제는 생존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니 외부의 구호가 아니라, 흔들리는 세계 속에서도 끝까지 중심을 잡고 판단하려는 우리 자신의 '근력'을 믿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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