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을 내릴 수 없는 선장

by 노경문

최근, 와이프와 나는 핸드폰을 바꿨다.
나는 여전히 갤럭시를 골랐고, 아내는 아이폰을 택했다.
작은 선택이었지만 그 순간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우리가 왜 같은 걸 고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작고 단순한 갈림이, 어쩐지 지금의 삼성과 이재용 회장을 떠올리게 했다.

갈림길에 선 사람. 지금 그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이 회장이 시진핑 주석과 10년 만에 마주 앉았다.
형식은 회담이었지만, 본질은 선택에 대한 메시지였다.
그의 발걸음 하나가 삼성의 방향성을 말해주는 시대이기에, 중국을 선택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삼성을 이끄는 그는 단순한 경영인이 아니다.
기업인인 동시에,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
거대한 배를 몰고 세계 기술 전쟁의 바다를 항해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 배는 이제 어느 쪽으로든 닻을 내려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재용 앞에는 세 갈래 길이 있다.

1. 미국의 품 안으로
정책 안정성과 기술 보호를 얻지만, 자율성과 독립성은 희생해야 한다.
국가와 함께 성장한 기업이 다시 국가에 종속되는 구조로 회귀하는 셈이다.

2. 중국과의 깊은 연계
경영권 보호와 영향력 확대에는 유리하다.
하지만 기술 유출과 글로벌 신뢰 하락, 미국의 제재 가능성, 그리고 ‘차이나 삼성’이라는 이미지 고착이라는 리스크가 따른다.

3. 균형, 초국적 기업으로의 독립 시도
삼성이 스스로 하나의 독립된 기술 국가처럼 서는 전략.
한국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삼성 자체가 기술 주권을 가진 플레이어가 되는 길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재벌 지배구조, 국내 정치의 제약, 사법 시스템은 진정한 독립을 허락하지 않는다.
초국적화는 바다 위에 모래성을 쌓는 일과 같고, 이상적이지만 허망한 선택일 수 있다.

지금은 두 번째 갈래에 무게가 실린 듯하다.
시진핑과의 회담은 ‘삼성’보다 ‘이재용’ 개인에게 더 유리한 수였을지도 모른다.
중국은 존중했고, 한국은 구속했다.
그 머릿속에 이 두 기억은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왜 한국은 삼성을 가장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가장 미워했을까?”

국가의 전략 자산으로 키워놓고,
재벌개혁 바람이 불자 가장 먼저 죄인으로 세운 존재.
그 안에서 그는 어떤 신뢰를 잃고, 어떤 각성을 했을까.

삼성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없이 존재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배경은, 때로는 그를 죄인 취급했다.

법정에 섰고, 구속되었고, 그 사이 삼성은 세계 무대에서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이재용은 삼성의 총수일까, 아니면 국가 시스템의 마지막 희생양일까?”

조국은 그에게 ‘자부심’이자 ‘구속’이었다.

다시, 아내와 다른 핸드폰을 골랐던 그날이 떠오른다.
나는 왜 아내와 다른 폰을 고르게 되었을까.
어쩌면 이 나라는 더 이상 같은 선택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갈라지고 있다.
가정 안에서도, 국가와 기업 사이에서도.

이재용은 기업의 얼굴이자, 동시에 국가 전략의 민간 버전이다.
그가 어느 쪽에 닻을 내리느냐에 따라 삼성의 미래, 산업의 지형도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무게중심을 끝까지 중앙에 두려 한다.
하지만 세상은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나는 그가 중국을 잠깐 활용하고,
결국 미국에 더 깊이 발을 담글 것이라 예상한다.

삼성이라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기술 보안,
글로벌 신뢰의 축은 결국 중국이 아닌 미국에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재용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와 영향력을 보장할 곳은 중국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안위와 기업의 지속 가능성, 이 두 축 사이에서 이재용이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은 머지않았다.
그때 우리는 진짜로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삼성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여전히 혼자다.
국가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배웠지만, 국가는 끝내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가 머뭇거리는 이유,
줄타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어쩌면 삼성 때문이 아니라,
자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삼성 핸드폰을 쓴다.
익숙해서.
그리고 삼성이라는 이름이 아직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함’만으로 자부심을 지킬 수 있을까,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재용이 어느 바다에 닻을 내릴까.
그 순간,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우리의 배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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