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먹고, 더 묻기로 했다

by 노경문

헬스를 하면서 벌크업도 해보고, 다이어트도 여러 번 시도해봤다.
그런데 늘 의문이 들었다.
왜 다이어트는 이렇게까지 힘든 걸까.

나는 평생 마른 편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체중 걱정을 크게 해본 적이 없었고,
식탐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는 단순히
“그냥 덜 먹으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덜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내 인바디상 기초대사량은 약 2000칼로리.
하루 섭취량을 1800kcal 이내로 맞추려면,
한 끼에 600칼로리를 넘기면 안 된다.
흔히 말하는 다이어트 식단의 기준이다.

그런데 실제 식사는 다르다.
600칼로리면 햄버거 하나.
밥 한 공기, 반찬 몇 가지면 끝이다.
거기에 간식 하나, 시럽 들어간 커피 한 잔만 추가돼도
하루 식단은 계획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밥을 혼자 먹지 않는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
부모님과의 외식,
회식, 친구들과의 점심, 사회적 약속들.

식단을 나에게만 맞춘다는 건
양보다 훨씬 더 정서적으로 고된 일이다.

거기서 끝나지도 않는다.
주변의 시선과, 가볍게 던지는 말들.

“그걸 참고 살아서 행복하냐?”
“그 정도면 말랐는데 뭘 더 빼.”
“하루쯤은 먹어도 되잖아. 유난 떨지 마.”

말하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웃지만,
그 말들은 묘하게 속에 남는다.
나는 단지 내 삶의 리듬과 목표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그 선택이 때론 ‘이상한 집착’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이어트는 그래서 어렵다.
배고파서가 아니라, 공감받지 못해서 힘든 일이다.

한때 나는 다이어트를 의지의 문제라고 믿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되고, 조금만 덜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문제는 음식보다 그걸 둘러싼 감정과 환경이었다.
관계, 분위기, 습관, 타인의 말들.
내가 지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그러다 위고비(Wegovy)를 알게 됐다.
다이어트 보조제.
일주일에 따끔 한 번 맞는 주사.
식욕이 줄고, 포만감이 빠르게 온다.
많이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약해진다.

‘참아야 한다’는 감정이 아예 생기지 않는 상태.
설득이 필요 없는 절제.
익숙했던 불편함이 사라진 자리에, 조용한 평온이 찾아왔다.
그건 생각보다 훨씬 편했다.

그 무렵,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자율성을 되찾은 걸까,
아니면 자율성을 대신하게 만든 걸까.”

예전의 다이어트는 늘 나와 나 사이의 설득 게임이었다.

“오늘은 그만 먹자.”
“이건 내일로 미루자.”
“이번엔 왜 또 실패했지.”

성공하면 순간의 기쁨과 따라오는 묘한 허무가 남았고,
실패하면 죄책감이 따라왔다.
어느 쪽이든 피로했다.

하지만 위고비를 맞으면,
나는 나를 설득하지 않는다.
욕망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죄책감도 사라진다.

몸은 가벼워졌고,
삶은 단순해졌다.

그런데, 이건 정말 내가 원한 자유일까?

자율성이란, 내가 선택한 결과를 스스로 감당하는 능력이다.
욕망을 억누른 상태가 아니라,
욕망을 느끼되 방향을 정하는 것.

약을 맞으면,
선택 자체를 덜 하게 된 상태에 가깝다.

그러니 이 자유는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라기보다
선택의 피로에서 도망친 대가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기술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계속 만들어낸다.
인공지능은 나보다 먼저 판단하고,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것을 미리 정한다.
이제 신약은 내 욕망까지 조정한다.

그런 시대에,
나는 얼마나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가.

다이어트로 3키로를 넘게 뺐다.
여전히 묻는다.

내가 내 의지를 이긴 걸까,
아니면 넘긴 걸까.

그 질문을 놓지 않는 한,
나는 아직 나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질문하는 태도는 도구보다 쓸모 있고, 오래간다.

결국, 이건 다이어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도구를 사용해왔다.
삽으로 땅을 팠고, 기계로 움직였으며,
이제는 주사로 식욕을 조절한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다.
문제는 그 도구를 쓰는 주체의 태도다.

그것이 자율성을 확장하는 수단이 될지,
반대로 외주화의 함정이 될지는
오직 이 물음에 달려 있다.

"이건 정말 내가 원한 선택인가?"

이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다이어트든 인간관계든, 사업이든
우리는 기술의 편리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천천히 잃어가기 시작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