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마르고>는 주인공 앙헬과 그녀의 선배 체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산에 씨를 뿌리는 동아리 ‘마음씨’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체는 말이 어눌했고 걷는 게 불편했다. 하지만 자신을 이용하려는 자들을 가차 없이 끊어내는 단단함이 있었다.
-체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다. 술꾼이지만 해장술이나 혼자 마시는 술을 경계했고 담배를 피웠지만 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언제나 가방에 스테인리스 컵을 넣고 다니며 일회용 컵 대신 그 컵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이었으나 거절할 땐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앙헬과 체는 선후배 사이로 잘 지냈다. 그렇지만 체가 앙헬에게 ‘결혼하자’고 말한 이후부터 둘은 멀어진다. 앙헬은 체가 부담스러웠다. 체는 좋은 선배였지만 여자였기 때문이다.
‘친했다가 멀어진 대학 선배’라는 존재가 내게도 있다. 앙헬과 체의 관계와 달랐던 건, 우리 둘은 다른 성염색체를 지닌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붙어다니면 정분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멀어진 건 아니지만, 우리는 멀어졌다. 남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나뭇잎이 마르고>를 읽으며 그 선배가 생각났다. 심지어 동갑내기였다. 그런데도 나는 참 많은 속엣말을 털어놓았고, 그는 꽤 오래 들어주었다. 힘들다는 한마디에 나를 찾아와주기도 했고, 술 한잔 못하는 체질임에도 내 앞에 앉아 술주정을 들어주었다. 다른 후배보다 밥도 많이 얻어먹었다. 그렇게 많이 의지했던 사람인데, 나는 그에게 좋은 후배는 되어주지 못한 것 같다. 그게 참 미안했다. 언젠가 그가 꼭 들어달라는 부탁이 있으면 들어주어야지 생각했다. 앙헬이 체의 부탁에 그의 외갓집으로 내려온 것처럼 말이다.
-앙헬은 자신이 언제부터 체의 연락을 피했는지 생각했다. 그 시기를 정확히 짚을 수 없었으나 이유까지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리뷰를 쓰면서, 나도 선배와 멀어진 이유가 생각났다. 너무 작고 치졸한 이유라서 말하지 못하겠다. 그 작은 마음이 오랜 공백을 만들었다. 지나간 관계는 바꿀 수 없겠지만, 아직 닿아 있는 인연은 그렇게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해지는 게 인간관계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