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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Jul 03. 2021

[독서기록] 희망의 BLUE로 풍덩!

우지현 그림 에세이<풍덩! : 완전한 휴식 속으로>를 읽고



지난주,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는 글을 썼다. 그래서 돈을 내고서 명상을 했다. 지금 나에게 '휴식'이란 단어는 가장 신경 쓰이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온라인 서점에서 '완전한 휴식 속으로'라는 부제에 끌린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끌린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호크니의 <더 큰 첨벙>이다. 회사 커피머신 앞에 이 그림이 걸려 있다. 매일 보는 그림인 셈이다. 회사에서는 아무 감흥 없이 봤던 이 그림이 '풍덩'이란 두 글자와 함께 보니, 청량한 바람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잘 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휴식'용으로 산 책이기에 깊은 정보를 얻거나 감동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이런 생각이 사라졌다. 본업이 화가인 작가는 짧은 글 안에서도 화가의 정보를 전달해주었고, '잘 휴식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림을 시원하게 보는 것만으로 감명을 받을 수 있음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구구단도 배우고 관계대명사도 배웠다.
 교통 규칙도 배우고 공중도덕도 배웠다.
 그러나 휴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는 배웠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쉬는 것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휴식도 배워야 한다> 중에서

   





본문의 첫 시작은 '휴식도 배워야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어른이 될 때까지 어떤 '쉼'이 좋은 것인지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네가 알아서 정해야지'라는 말로 어른들은 선택권을 나에게 미뤘다. 그런데 휴식을 갖기엔 삶은 너무 바빴고 쉼의 기준이 없어진 채 서른을 넘겼다. 그래서 늘 쉼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제 인생의 보호자다.
어떻게든 자신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자신을 지켜야 할 책임>


일은 일일 뿐이다.
일이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과 삶에 대하여>





이보다 인상적인 문장이 더 많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싶은 건 이 두 문장이었다. 나는 보호자로의 역할 중 생계를 꾸리는 데에만 너무 집중했다.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커리어를 쌓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동안 몸과 마음이 지친 건 다스리지 못했다. 한동안 나는 '쉼'이 벌이라고 느꼈다. 아직 완벽히 적응하지 못한 회사에서 일과라고 할 수 있듯 나는 깨졌고, 이 상태에서 마음 편히 쉬는 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였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보는 시간도 줄였다. 그렇게 해서 남은 건 건강악화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쉼과 일을 구분하려고 한다. 그게 나를 지키는 보호자로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과 나를 구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꿈을 명사에서 동사로 수정했다. '행복하게 살자' 나의 꿈은 이것이다. 좋은 편집자가 꿈이었을 때는 일이 성공적이지 못하면 너무 슬프고 아팠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에 기준점을 두니 그리 슬프지 않았다. 지금 해왔던 것들을 다져서 내일은 좀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리하게 일하지 않게 됐다. 과도한 일은 행복과 멀어진다는 생각에서였다. 휴식과 한 발짝 가까워진 삶을 찾아가고 있었다.


<풍덩!>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제대로 쉬지 못하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봤던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됐다. 쉴 때 마음 불편하게 쉬면 안 된다. 결국 나는 그때 쉬지도 못하고 일하지도 못하는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어떤 상태에도 있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먹은 대로 한번에 놓아지진 않았으나, 쉴 때는 일을 놓으려고 노력 중이다. 휴식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책이다.


또 수영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처음 숨쉬기를 배우는 것, 수영을 좋아한 화가들 등. 사실 나는 수영을 못한다. 어릴 때 물에 빠진 적이 있어서 물에 들어가면 절대 몸에서 힘을 못 뺀다. 그럼에도 이 책이 불쾌하지 않았다. 내가 하지 못하는 수영을 대리로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영에 관한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마티스의 이야기였다. 노환으로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되자 "나만의 수영장을 만들 거야"라고 종이로 수영장을 창조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나는 언제나 바다를 동경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수영을 할 수 없게 되었기에, 내 주변에 바다를 둘러놓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수영을 못해서 바다를 체험하는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그런데 바다는 좋아했다. 이 말을 못해 겨울바다만 구경했다. 그런데 그처럼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는 사람들이 헤엄치는 바다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을 '코로나블루'라고 부른다. 코로나로 우울해졌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파란색이 왜 우울함이 상징일까? 나는 오히려 파란색이 희망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마음이 답답하면 바다를 보고 온다. 넓음도 있겠지만 파란색도 사람들을 끄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코로나블루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있지만 희망이 있는 시기'로 해석되었으면 좋겠다.

<풍덩!>의 파란빛을 보면 안정감이 느껴진다. 마음껏 수영할 수 없는 시기, 지면의 파란빛으로 희망을 얻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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