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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Jun 29. 2021

[독서기록] 동사형 상품을 파는 곳, 츠타야서점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을 읽고



현재 회사생활의 가장 큰 골칫덩이인 '기획'을  배우고자 들었던 강의에서 처음 추천받았던 책이 바로 <지적 자본론>이다. '고객'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강의가 끝난 지도 한참이 지났건만, 이 책을 다 읽은 건 겨우 하루 전이다.

책의 구성이 특이하여 기억에 남는다. 경제경영서이지만 글 배열은 에세이 같다고 생각했다. 왼쪽정렬로 된 본문과  꽤 넓은 여백 때문이었다. 한 꼭지를 읽는 데도, 한 챕터를 읽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경제경영서보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으며 읽었다. 얇고 가벼워서 심리적 장벽도 낮았다.

한 가지 특이한 본문 표기 방식이 있었다. 바로 밑줄이었다. 굵은 글씨나 색자를 입힘으로써 강조하는 방식을 경제경영서에서는 많이 쓴다. 밑줄도 같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특이할 게 없다. 하지만 본문 배열이 에세이처럼 되어 있는데, 이 강조 방식이 어울릴까 고민하면서 읽었다. 내 예상보다 잘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개인적으로 책에 강조할 곳을 표시하는 건 편집자의(또는 저자의) 큰 도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도전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나중에 다시 책을 봐야 할 일이 있을 때, 밑줄 친 문장만 봐도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꼭 필요한 내용에만 밑줄이 가 있었다.


<지적 자본론>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사고를 변화시키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구립도서관에 있는 18만 권의 장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리하는 것과 같은 비현실적인 일이 저자에게는 가능했다. 그것은 생각이 말랑말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금세 굳어버릴 수 있는 우리의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것이 그의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기존의 십진분류법을 버리고 보다 현실 생활과 밀접한 '22종 분류법'을 채용해  장서를 관리하기로 했다. 예컨대 아동 패션을 다룬 책은 패션 서적 코너에 진열해야 하는 것일까, 육아 서적 코너에 진열해야 하는 것일까. 아름다운 정원 사진만을 모아 놓은 사진집은 예술 코너일까, 원예코너일까. 이것은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어떤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인 것인가, 하는 점을 세밀하게 파악해 분류하는 방법으로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만들 때에 CCC가 독자적으로 창조해낸 것이다(85쪽).


당인리 책발전소를 비롯한 많은 국내 독립 서점들이 롤모델로 '츠타야서점'을 꼽고는 한다. 그것 역시 이러한 사고방식을 따르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례를 읽으며 나는 내가 얼마나 단단하고 고루하게 생각했는지 깨달았다. '아크앤북'이 새롭게 론칭할 때, 색다른 도서 분류 방식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나는 그게 보여주기 식 마케팅이라고만 생각했다. 독자를 고려한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때의 내가 참 부끄러웠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저자가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팔았다는 점이다.


CCC의 중심철학은 앞에서 예로 든 '고객가치'와 이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라는 두 가지 단순한 키워드로 요약된다.

다시 TSUTAYA를 예로 들면, 나는 지난 30년 동안 TSUTAYA의 상품이 DVD나 CD, 또는 책이나 잡지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눈에 보이는 그런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각 상품의 내면에 표현되어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상품이라고 생각해 왔다(51쪽).


그들이 팔았던 것은 '어떻게 살지(live)'에 대함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들이 고객에게 '동사형' 상품을 팔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등장하는 만화책이 츠타야서점에 있었다면 그것은 고양이책이 아니라 '마음에 온기를 더해주는 방법-고양이와 함께하기'라는 스타일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고객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게 너무 어렵다. 고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행인에게 억지로 전단지를 들려주는 것처럼 상품을 팔려고 하기 때문이다.

츠타야 서점에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책과 음료수 매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는 것이다. 책은 종이다. 그래서 습기에 약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객을 위해 음료수를 책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즐길 수 있게 해두었다. 물론 우리나라 서점도 그러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곳에서는 음료를 마셔도 편할 것 같았다. 낮은 의자와 소파가 많았고, 캔음료가 많아서 접근이 쉬웠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먹어야 하는 음료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음료는 '서점에서 쉬어가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사물이었던 것 같다.


책을 한 번 읽었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깨야 할 고정관념들이 너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이 책을 든다면, 실패의 이유를 지금보다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부제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이다. 사실 나는 내가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에라도 몸담고 있는 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책이 그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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