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인생을 무조건 응원해

자퇴원서를 내려고 하는 제자이자 후배를 보며.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24학번 000입니다.
자퇴 원서 제출 및 지도교수님 면담 과정 때문에 메일 드렸습니다.

010-000-0000


정말 딱 네 줄. 감정도 설명도 없는, 용건만 남은 메일이었다.

지난 학기 내 수업에 두 번 얼굴을 비추고, 이후엔 휴학도 하지 않은 채 한 학기를 결석으로 채운 학생이었다. 이런 경우는 종종 있다.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교대에 진학했다가, 결국 자신의 길을 다시 선택하는 경우다.

나는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00이니? 나 000 교수야.”
“아… 네, 교수님.”

목소리에는 당황이 묻어 있었다.


“네가 원하는 길로 가게 되었구나. 축하한다.”

학생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말릴 거라고,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영화감독은 꼭 영화과를 나오지 않아도 될 수 있다며, 우선 교대에 가 보자고 하셨다고 한다. 2년을 지내보니 확신이 들었고, 이번에 영화학과로 진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용기가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내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 역시 부모님의 권유로 교대에 진학했고, 그 길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벗어날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언젠가 영화감독이 되면 꼭 연락하라며, 우리 학생들 데리고 단체 관람하러 가겠다고 웃으며 응원했다.


학생들이 자퇴나 휴학 이야기를 꺼낼 때면 늘 조심스럽다.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내가 그 선택을 말릴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강요된 선택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떠나는 경우다.

그래서 나는 그런 선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거라는 용기도, 그 길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내 대학 시절은 꽤 오래 흔들렸던 시간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나는 남들이 보기엔 안정적인 교수일지 모르지만, 실은 가장 안전한 틀 안에서 겨우 다른 선택지를 찾은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용기를 내어 떠나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잘되기를 바란다.


통화를 마치기 전, 선생으로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00아,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메일을 보내거나 말을 전할 때는 공손하게, 네 생각을 진심 있게 전하는 게 중요해. 이번에는 네가 몰라서 그랬다는 걸 선생님은 알지만, 사회에서는 한 번의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도 많아. 굳이 나쁘게 헤어질 필요는 없단다.”

꼰대 같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잠시나마 그 아이의 선생이었기에 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한참 뒤, 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교수님
아침에 연락드린 000입니다. 제 선택을 말씀드리는 것이 너무 죄송스럽게 느껴져서 용건만 적어 메일을 보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항상 제 선택에 응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선택을 떨면서 결정할 때 교수님 전화나 말씀으로 따뜻하게 응원해 주셔서 항상 용기를 얻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교대에서 보낸 시간과 교수님의 응원을 마음에 담고 가겠습니다. 잘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교수로 지내다 보면 학생들의 선택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남는 선택도, 떠나는 선택도 대부분은 오래 고민한 끝에 나온 결정이다. 그 선택이 언제나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태도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선생이자 선배로서, 그 결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다음 장면을 살아갈 이들을 조용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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