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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won Kim Jul 25. 2022

세 번째 새해맞이

Covid-19이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던 2020년은 '잃어버린 한 해'로 묘사되기도 한다. 우리 세대와 자녀들이 경험하고 있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부모님 세대가 일제 압박과 해방, 그리고 전쟁을 겪으셨던 것과 비길만한 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들을 하기도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괄호 안에 집어넣고 새해에 다시 '2020'이란 레이블을 붙여야 한다고.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WHO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을 선언하고 주정부가 학교와 직장을 락 다운하기로 하고 일상을 낯선 모습으로 바꾸기 시작했던 것이 1년 전 이맘때였다. 처음 School District로부터 임시 휴교를 통보받을 때만 해도 설마 했었는데 1년이 넘도록 아직 학교는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고, 수업은 Hybrid로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파행에 가깝다. 큰 아이는 가장 중요하다고들 말하는 Junior year(11학년)을 이 시기에 보내는 불운을 맛보았다.


올해만큼 새해의 의미가 가슴 깊숙이 다가왔던 적이 있었던가. '새해'라는 두 글자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오버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신 개발과 보급이 본격화되며 저 멀리 끝이 보이는 듯 여겨지기도 한다.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합리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펼치는 것도 희망의 불씨가 살아날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난 왜 때 지난 새해 타령을 하는 걸까. 최근 들어 Covid-19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락다운도 완화되어 일상의 회복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앞에서 '잃어버린 한 해' 운운하긴 했지만 사실 작년 한 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팬데믹으로 인해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재난을 겪으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하지 않았던가. 수면 아래에 감추어져 있거나, 애써 외면했던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남으로 인해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질문들이다. 부조리하고 모순 투성이인 사회와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더불어 함께 사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를 돌아보게 했다.


사실 나와 우리 가족은 팬데믹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은 축에 들지 않기 때문에 엄살을 부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겪은 불편함은 비껴갈 수 없었지만, 나와 아내는 직장에서 이전보다 오히려 안정된 자리를 찾아 경제적으로 손실이 없었다.  또 업종 특성상 누구보다 일찌감치 백신도 맞을 수 있어 우려와 걱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위기가 닥치면 몸의 긴장도가 높아지는 것과 함께 정신도 고양된다. 삶을(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으려고 더 애쓰게 된다. 내 주위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끈을 놓지 않으려 하게 된다. 어쩌면 팬데믹의 해가 잃어버린 한 해가 아닌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여길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나에게는 재난의 해 2020년보다 희망의 해 2021년의 지난 두 달여가 '잃어버린 시간'이 된 것 같다. 이젠 익숙해지고 편안해져서였을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았다. 물론 직장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고,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만 했던 탓도 있지만 '나'를 어디엔가 내팽개치고 살았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책도 별로 읽지 못하고, 여물지 못한 생각이나마 페북에 남기곤 하던 것마저도 오랜 기간 하지 못한 것은 그것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오늘 아침 Laguna Woods에 있는 오피스에 출근하니 로비 한 구석에 갖가지 장식이 놓여있는 테이블이 눈에 띈다. 페르시안 뉴 이어를 기념하는 장식이다. 페르시아력으로 '춘분'이 새해 첫날이다.  이곳 직원들 중 이란인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예년에 비해 소박하지만 정성 어린 상을 차려 놓았다. 오전 10시가 되자 이란인 매니저가 내 방 문을 노크하고 열더니 간단한 티파티를 하려고 하니 나오란다. 다과와 커피, 티를 세팅해 놓은 또 다른 테이블 주위에 10여 명의 직원들이 모여 도란도란 새해 덕담(?)을 나눈다.


새해의 계획과 결심이 흐릿해져 가고, 한국 고유의 설날도 모르고 지나갔던 이때, 세 번째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다민족 사회에 사는 덕이기도 하고. 매일 보는 캘린더이지만 3월 중순을 가리키고 있는 달력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 지난 주말이었다. 두 달여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정신없이 살았던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마침 오늘 새해 파티에 초대받으며 난 내 정신을 새롭게 할 계기를 선물 받았다. 남들이 보기엔 그게 그것 같은 특별할 것 없는 내 삶이지만 나만 알 수 있다. 의미가 담기는 삶과 그렇지 않은 시간이 얼마나 다른가를.


누루즈 무바라크!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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