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를 열기 전에 파티를 가봐야지
초등학교 시절 스위스 알프스 소녀가 입을 법한 드레스를 입고, 마분지로 높게 만든 고깔모자를 쓴 생일파티를 한 적이 있다. 반 아이들을 모두 초대하여 교자상 주위에 둘러 앉아 김밥, 치킨이 놓여있는 생일상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 낯설고 어색해서 케이크 앞에 앉아 모두가 나를 보며 생일축하노래를 부를 때 어딘가 숨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생일파티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주인공인 나의 고깔모자가 가장 화려해야 한다고 파티 전날 저녁 거실에 앉아 고깔에 레이스를 달고, 하트무늬 장식을 하는 엄마와 벽면 가득 달 풍선을 숨이 차도록 불던 아빠의 모습이 따뜻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국행에 앞서 가장 걱정하고, 기대하던 것이 아이들의 생일파티였다. 외국에서는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성대하게 열어주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저학년 때는 반 전체 아이들을 초대하는 Whole class Party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여 영국 입국 준비를 하면서 영국에 챙겨갈 상비약보다 ‘영국 생일파티’를 더 열심히 찾아보았다. 보통 생일파티는 집, 공원, 키즈카페(영국에서는 Softplay), 축구장, 레스토랑 등등 다양한 곳에서 각자의 취향대로 열린다고 한다. 영국을 가기도 전에 눈이 빠지도록 랜선 시장조사를 한 후 생일파티는 꼭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남편에게 “영국에 가서 아이들 생일파티를 꼭 해주고 싶어.” 통보했다. 남편은 별 걸 다한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나의 부푼 기대와 달리 아이는 9월에 입학한 이후 생일파티에 한동안 초대받지 못했다. 아이가 영어를 못하기 때문일까? 이미 친구 관계가 형성되어 새로운 친구가 들어갈 틈이 없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친해진 같은 반 엄마가 슬쩍 귀띔해준다. “작년(Reception)에는 생일파티가 꽤 많았었어. 근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올해는 파티가 없네.”란다. 아무래도 런던 도심에 있는 학교이다 보니 새로 정착한 이민 가족, 우리처럼 오가는 뜨내기 가족이 많은 학교라 내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영국 분위기의 문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압도적인 규모에 놀란 첫 번째 파티
예상치 못한 학교 분위기에 괜히 파티를 열었다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듣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찰나, 같은반 남자아이가 2월에 생일파티를 한다고 반 친구들 모두를 초대했다. 유레카! 드디어 영국의 생일파티를 가본다! 학교 앞 놀이터 강당에서 총쏘기 게임을 하는 파티란다. 초대장을 읽어도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다.
아이는 신이 잔뜩 났는데 나는 신경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생일파티 시간. 자고로 초대장이란 00시 정각, 00시 30분이라 생각하는 라떼 아줌마에게 일요일 오후 2시 15분부터 4시 15분까지라는 애매한 시간은 상당히 낯선 시간이었다. 그다음엔 생일파티 선물. 적정 예산이 어느 정도 인지 감이 오질 않아 인터넷 검색을 총동원했더니 대략 15파운드 선에서 하는 것이 좋단다. 첫째 아이에게 그 친구가 뭘 좋아하느냐 물어도 친하지 않아 얘기를 안 해봤다면서 자기는 모르겠단다. 구글창에 “6 years old boy birthday gift”를 불이 나도록 검색하여 결국 레고를 선택했다. 생일 카드와 생일 선물을 담을 예쁜 쇼핑백은 필수 중에 필수! 마지막으로는 파티 당일 에티켓. 나는 파티에서 쓸 인사말을 미리 연습하고, 아이에게 “친구야 생일 축하해”를 꼭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생일파티가 열리는 날 나와 첫째 아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두 손을 꼭 잡고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파티 장소에 꽤나 일찍 도착했다. 시간에 맞춰 들어가려고 놀이터 바깥을 뱅글뱅글 돌다가 2시 15분 땡. 파티 장소에 들어서자 깨달았다. 아, 2시 30분부터 파티가 시작된다는 뜻이었구나. 파티 주인공 아이의 엄마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고, 조금 일찍 온 아이들 서넛이 강당에 설치된 에어바운스(영국에서는 Bouncy Castle)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생일파티 주인공도 이미 에어바운스 안에서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고 있어 아이를 붙잡고 생일 축하한다고 인사하기도 상당히 어색한 상황이었다. 그때 주인공 엄마가 달려나와 와줘서 고맙다며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받아 환대해준다. 내가 머리 아프게 고민했던 파티시간, 선물, 축하인사 같은 것들이 도착한지 10분만에 모두 해결되었다. 나는 파티 정각에 도착한 줄 알았으나 일찍 간 편이었고, 선물은 아이 손에 전달되지 못한 채 아이 엄마가 어디론가 들고 가버렸으며, 아이에게 신신당부한 것이 무색하게 파티 주인공은 노느라 바빠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나와 아들에게는 1시간 50분의 사투가 남았다. 영국에 온 지 6개월, 아이는 영어를 알아듣기 시작했지만, 아직 말하지는 못하는 단계였다. 온갖 아이들이 에어바운스에서 뛰어노는 와중에 누군가와 대화하고 아는 척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능력이 갖춰지지 못했다. 에어바운스를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가 중간에 나와 내 옆에 꼭 붙어 앉았다. 팝콘을 먹으며 첫째는 나에게 오늘 온 친구들이 누구인지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 아이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래도 친구들과 놀겠다고 다시 용기 내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했다. 나도 오며 가며 만났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다시 내 옆으로 왔다. 이번엔 앉아서 같이 색칠놀이를 했다. 마지막엔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아이는 나를 찾다 엉엉 울어버렸다. 그렇게 첫 생일파티를 마쳤다. 말로만 듣던 파티 답례품(구디백)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래도 우리 둘다 진짜 멋있었다며 서로를 칭찬했다.
첫 번째 생일파티를 다녀오고 나니 5월에 있을 첫째 아이 생일파티에 대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첫 번째. 괜찮은 베뉴를 찾을 것. 두 번째. 호스트가 너무 바쁘지 않도록 파티를 구성할 것(우리의 언어능력을 생각했을 때 특히). 세 번째. 손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초대할 것. 네 번째. 생일 케이크는 최대한 예쁜 것으로 할 것.
작지만 알찬 구성의 두 번째 파티
한 달 뒤 두 번째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다. 이번에는 같은 반 여자아이 생일파티였다. 긴 머리의 친구라 머리핀을 사주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머리핀을 예쁘게 포장하고 카드를 썼다.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 파티 장소에 도착하니 역시나 초대장에는 파티시간이 1시 45분부터 3시 45분까지라고 적혀있었는데 2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단다. 장소도 이전 파티보다 작았고, 음식도 더 적었는 데다가 엔터테이너가 디스코 파티를 진행할 계획이라 주인공 엄마가 훨씬 여유롭게 손님을 맞았다. 주인공 엄마는 부모들을 위한 커피와 샴페인을 대접하면서 한명 한명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엔터테이너가 1시간 30분 동안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주는 사이 나는 옆자리 앉은 엄마와 용기 내어 이야기를 나눴다. 매일 아이를 등·하원시키는데도 어쩜 처음보는 엄마들이 많은지 인사하느라 바쁘게 시간이 흘렀다. 아이도 어디에 끼어서 놀아야 할지 어리둥절 했던 첫 번째 파티에 비해 엔터테이너의 능수능란한 진행에 휩쓸려 신나게 놀았다.
두 번째 파티에서 5월 첫째 아이 파티의 구원군을 발견했다. 엔터테이너를 불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