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살아도 권태로울까?

by 김룰루

이상의 <권태(1937)>를 읽는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라는 수필의 구절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90년 전 작가가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온 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을 채우며 살아가는 내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 런던이라는 커다란 도시에서 갈 곳을 잃은 그 기분이 권태였구나. 무릎을 친다.


나는 한동안 권태의 늪에 빠져있었다. 런던 한복판에서 가능한 일일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작이 어디였나 생각해보면 미술관이고 박물관이고 들뜬 마음에 전부 다 가보고, 오며 가며 랜드마크를 한 번씩 들른 후 목적지까지 구글 맵의 도움 없이 갈 수 있게 된 시기 언저리였던 것 같다. 빅벤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뛰었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감상이었다. 가까운 거리의 박물관들도 갈 때마다 놀랍기는 했지만 자질구레한 매일의 일상들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발길이 뜸해졌다. 브런치 구독자가 늘었다는 알람에도 런던 기행문을 계속 써나가기엔 반짝이는 설렘이 무뎌져 버려 선뜻 글을 쓰기 어려웠다. 사무엘 존슨이 말했듯 인생이 지겨워진 나는 런던에 무뎌져 있었다.


KakaoTalk_20250519_232436618.jpg 대충 10번째가 넘는 영국박물관. 박물관에 갈 때마다 새롭고 놀라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런던까지 와서 아니 될 말이지. 싶어서 여기저기 가보았지만 내가 채워지는 기분이 아니라 오히려 소진되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들뜨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느라 바쁜 이 도시에서 나는 쌓이는 것 없이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소모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 집과 오가는 곳들만 다니다 보면 여기가 한국인지 영국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한국에서 나는 대체 뭘 하고 살았지? 싶어 생각해보면 어쩌다 회사에 하루 연차라도 쓴 날에는 은행에, 병원에 행정업무를 보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는 걸 보니 배부른 투정 같아 권태가 죄책감으로 둔갑해 오기도 했다.


내가 어딘가 고장 난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살던 어느 날 이 기분이 낯설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어딘가 익숙한 권태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대학 입학 새내기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1학년 2학기, 입사 초기 정신없는 적응을 마치고 찾아온 3년 차 권태기의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일상이 겹쳤다. 공간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 끝에는 이전과 조금 달라지기는 했어도 결국 나의 반복되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인생이 뭐 이런가 싶어 좌절했고, 그다음엔 이번엔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기다렸다는 듯 찾아온 권태를 견디며 현실을 받아들였었다. 에이, 설마 런던에서도 그러겠어. 싶었지만 런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입국했을 때의 놀라움과 흥분이 가라앉고 집안일과 아이들의 등하교로 가득한 평일과 아이들 수영과 축구 수업을 쫓아다니는 주말이 계속되면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운 순간들이 찾아왔다. 좋게 말하면 런던에서의 삶이 스쳐 가는 여행이 아닌 일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KakaoTalk_20250519_232229437.jpg 일주일에 2번은 가는 기숙사 놀이터. 철마다 바뀌는 꽃과 자연이 늘 새롭게 만들어준다.


어디를 가나 매일 파티일 수는 없다. 반복되는 일상을 잘 가꾸고 다듬어 하루하루를 반짝이도록 만드는 수밖에. 그렇게 약간의 빈둥거림과 권태를 즐기듯 괴로워하는 시간 속에서 다시 나를 활기차게 만들어 준 것은 런던에서 새로 시작한 작은 일상들이었다. 지난겨울 3달 동안 수강했던 노래 교실에 이어 이번 봄에는 플라멩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춤을 추러 가면 유쾌한 아주머니들이 한껏 멋을 내고 춤을 춘다. 그 모습이 참 즐겁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정해서 함께 해나가는 중이다. 나는 매일 만 보 걷기, 영어 필기체 2페이지 연습하기, 유튜브로 짧은 요가 프로그램, 좋아하는 책 읽기를 정했다. 매일 할 일을 다 하면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데 아이들이 의외로 매우 열정적으로 스티커를 붙이는 중이라 나도 얼결에 매일 스티커를 쟁취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매일 만 보를 걷기 위해 런던 곳곳을 누비는 것도 좋고, 영어 필기체가 점점 손에 익어 이방인 글씨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뿌듯하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아직은 서투르지만 짧게나마 몸을 움직이는 시간도, 런던에서 관심이 생긴 서양 고대사 책을 뒤적이는 것도 내 마음을 채워준다.


런던에 살아도 일상이 권태로울 수 있다. 그럴 땐 빅벤도, 타워 브릿지도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나를 세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일어서고 나면 세상 어디를 가도, 다시 비슷한 권태를 만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동네에 살았던 버틀란드 러셀(Betrand Russell)이 쓴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이라는 책의 ‘모든 위대한 책은 지루한 부분이 있고, 모든 위대한 삶도 재미없는 부분이 있다(All great books contain boring portions, and all great lives have contained uninteresting stretches)’는 구절이 위로되는 시간이었다.


사는 곳이 달라진다고 한순간에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달라진 생활 방식이 나의 하루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채우다 보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약간의 권태와 지루함을 넘어 새로운 재미를 찾아갈 앞으로의 런던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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