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사는 ‘동반자(dependent)’의 삶은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매시간을 채우는 과정이다. 학교에 다닐 땐 학교 시간표를 따라 살아왔고, 회사에 입사해서는 회사 시간표에 맞춰 9시에 출근하고, 12시에 점심 먹고, 퇴근 시간은 정해지지 않은 채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144분을 내가 모두 결정해서 만들라니, 좋으면서 부담스럽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3달 동안 거의 매일 박물관과 미술관에 출석 도장을 찍어보니 방문 간격은 넓히되, 공부해서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집안일과 식사 준비는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소요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물론 살림이 귀찮아지면서 점점 대충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여태 40년 가까이 살면서 해보지 않은 일, 런던이 아니면 용기 낼 수 없는 일을 찾아 한참을 검색하고 찾아봤다. 그러던 중 찾은 ‘Sing with Confidence’라는 수업이 눈에 띄었다. 노래?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불러보다가 잠시 멀어지고, 회사에 와서 다시 회식 날 3차로 노래방 가서 부르다가 또 멀어지고, 그러다 아이에게 동요를 불러주던 그 노래? 잘 부른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지만, 돈을 내고 배우고 싶을 만큼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노래를 ‘잘’ 부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업이라고 하니 나에게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래도 잘살고 있다고, 여기저기 치여도 꺾이지 말라고 응원해주는 내면의 자신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새해가 밝고 첫 수업에 가는 길이 어찌나 떨리던지. 그렇지 않아도 시리도록 추운 겨울의 냉기에 꽁꽁 얼어붙은 기분이었다. ‘강의실이 어딘가요?’ 묻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저쪽 극장이라며 손으로 가리킨다. 호흡이 더욱 빨라진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주민센터 노래 교실 같은 분위기를 예상하고 그래도 용기 내어 신청한 수업인데 본격적으로 극장에서 할 줄은 몰랐다. 교실 앞에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 나누는 영국 할머니들을 보니 어디 숨고 싶은 심정이다.
강의실 문이 열렸다. 전자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고 학생들을 위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자, 이 수업을 왜 듣는지, 노래를 불러본 경험이 있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집시다.’란다. ‘네, 저는 노래는 아이들 자장가 정도 불러주었는데 영국에 와서 갑자기 시간은 텅 비고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자신감이 좀 필요해서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진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나요?’라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영어 노래를 부를 때 이상하게 들리는 경향이 있고, 호흡이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 수업의 유일한 아시아인이자 젊은이이다. 할머니와 은퇴한 아저씨 사이에 할 일 없는 것이 티 나는 젊은 아시아인. 과연 이곳에서 나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첫날은 자기소개 후 대뜸 목 돌리기를 하고, 코와 뺨을 문지르지를 않나 입술을 부르르 풀고, 높은음이 올라갈 때 다 같이 만세 하며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들을 해냈다. 수업을 여러 번 들으신다는 할머니들은 앞줄에 대거 포진하시어 힘차게 만세 하며 ‘아베 마리아!’를 외치신다.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보다 보니 가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든가 생각하게 된다. 흠, 생일파티 때 가족들이 나에게 들려주던 ‘생일 축하 노래’ 정도 떠오른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 가창시험 볼 때 친구들의 노래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만세를 하고 얼굴을 찌그리며 ‘호우~~~’ 소리를 내뱉는다.
몸을 풀고 나니 노래를 부르는 시간. 악기를 꽤 오랜 시간 배운 터라 악보 보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은 아닌데 선생님의 첫마디부터 내가 이 악보에 적힌 기호들의 영어 명칭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 떠올랐다. 노래 가사는 어렵지 않았는데 다 같이 따라 부를 때 묘하게 나만 튀는 발음들이 들린다. 한 음정에 맞게 한 단어씩 부르다 보면 꽤 나 정확한 발음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특히 음정이 늘어질 때는 단어의 장음이 어디인지 알아야 이상하지 않게 늘여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수업을 들을수록 느낀 점이 두 가지 정도 있다. 첫째, 단어에 ‘r’, ‘f’와 ‘v’가 있으면 단어가 아무리 짧아도 내 발음이 이상하게 들린다. 옛날 옛적 배운 음성학이 스치듯 지나가길래 찾아보니 ‘순치음(Labiodentals)’과 ‘치경음(Aveoalars)’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둘째, 선생님이 계속 입을 크게 벌리라는 걸 보니 한국어가 영어에 비해 입 모양을 크게 바꾸지 않고 소리가 나는 언어인 듯하다.(전문가가 아니라서...추측만...) 입을 아무리 크게 벌려도 계속 더 크게 벌리라고 하신다. 셋째, 영국 할머니들이 정말 고양이 소리처럼 ‘Meowwwww’하면서 발성연습을 하는데 나는 콧소리가 잘 안난다. 한국은 비음을 없애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는데 노래를 부를 때 비음을 쓰라고 하니 도무지 어색해서 소리가 안난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노래를 부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음정과 박자가 난무한다. 나는 발음과 영어 가사 읽기에 급급해서 삐그덕거리는데 할머니들은 노쇠한 폐와 성대로 큰 소리를 내는데 고생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음정 감각이 좋지 못해 한 음으로만 부르는 분도 계신다. 나만 자신감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삐그덕거리는 노랫소리는 작아지지 않는다. 앞자리 할머니들은 텀블러에 담긴 물병을 들어 물을 마시곤 다시 노래한다. 한 명씩 앞에 나와 노래하라는 선생님 말에 ‘제가요?’, ‘저기 뒤에서부터 하면 안 돼요?’, ‘한 명씩 어떻게 불러요!라는 불평 하나없이 앞으로 나선다. 소리가 작으면 선생님이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더더더더더’를 외치고, 박자를 틀리면 유쾌하게 웃으며 ‘와 이거 진짜 어려운 노래네’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발음이 썩 듣기 좋지 않을 텐데 ‘네 목소리 좋다!’라고 말해주는 분들도 있다.
노래 5곡을 배우고 이제 수업은 중반을 넘어섰다. 수업에 가는 길이 즐겁다. 내가 틀려도, 이상해도 누구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 곳에서 조금의 나아짐을 향해 노래하는 나를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방학 전 마지막 수업 시간에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의 ‘Run’을 불렀다. 갑자기 3그룹을 나누어 하모니를 만들자며 모두가 둥글게 마주 보고 서서 노래를 부른다. 혼자 부를 때 보이던 단점들이 둥글게 묻혀 소리 난다.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we will run for our l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