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으로 보는 2024년
2024년에는 영국 소설과 가벼운 자기개발서를 많이, 꾸준히 읽고 있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 지쳐 마음 한켠에 내 인생에 가장 아쉬움으로 남은 문학을 끊임없이 파고들었고, 혼란한 내면과 달리 대외적인 위치가 상승하면서 현재의 부족한 나를 채우고 싶어 유명하다는 자기개발서들을 뒤늦게 읽었다. 나의 성장에 집요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원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합쳐진 한 해였다.
2024년을 맞이하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roau)의 ‘월든(Walden)’을 읽기 시작했다. (영국 소설은 아니고 미국 작가의 글이다.) 이번엔 기필코 정독하리라는 다짐으로 천천히 읽다 보니 다 읽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월든 호수의 얼음이 몇 센티미터인지,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는데 비용이 얼마 들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직도 ‘나는 의도적으로 살고 싶어서 숲으로 갔다.(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는 말이 마음에 박혀있다. 그동안 상황에 휩쓸리며 살아온 내가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스스로 무의식중에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처음 영어 원서로 읽었던 존 르 카르(John le Carré)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롤’, ‘데이비드 카퍼필드’, ‘위대한 유산’을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어 부인’을 읽으면서 영화 <The Hours>를 보았고, ‘런던 정경’을 읽은 후 책에 나온 거리를 찾아 걷기도 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런던탑’을 읽고 난 후 런던탑은 소중하게 아껴두었다가 오랜 시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먼발치에서 탑을 바라보기도 했다. 요즘엔 옥스퍼드 여행을 준비하여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면서 눈밭의 나니아를 달리다 캐스피언 왕자의 배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기도 한다.
이토록 영국 소설을 읽는 까닭은 단지 내가 런던에 왔기 때문이 아니라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던 과거의 내가 그 시간을 충실히 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참회의 결과일 것이다. 영국 소설 시간에 교수님은 인간의 본성이 “사랑과 연민”이라고 하셨다. 마음이 따뜻했다. 나도, 너도 그런 것만 같았다. 하지만, 건물을 바꿔 경제학과 행정학 수업을 들으러 가면 인간의 본성은 “합리성”이라고 배웠다. 나의 대학 생활은 “합리성”을 갖추기 위한 일들로 채워졌다. 취업 공부를 한다고 꽤 자주 휴학했고, 전공수업보다 이중 전공 학과의 학점이 월등히 높았다. 마지막 학기는 회사에 입사하느라 채 마치지 못한 채 교수님들께 머리 숙여 사과하고 문학과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올해는 내가 묻어두어 오랫동안 꺼내지 않은 것들을 꺼내는 시간이었다. 마침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해이지 않은가. 오래되어 빛이 바랜 나의 마음을 꺼내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에 많은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
‘합리성’을 채우고 싶은 사회적 자아의 몸부림도 2024년 책장의 한 축을 담당했다. 올해는 내가 입사한 지 10년이 되는 해로 승진 시험을 거치면서 중간관리자에서 관리자로 한 단계 성장하는 시기였으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내 능력보다 과분한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속 꼬리표가 달랑달랑 나를 쫓아다녔다. 여러 상황에 의해 휴직하게 되면서 관리자로 가는 길에 한숨 쉬어가게 되었는데 이리저리 흩어진 내 자신을 정비할 시간이 주어진 기분이다. 휴직 직전에 우연히 읽은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은 읽으면서 정말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뒤돌아 보니 내 일상은 그 뻔한 것들을 하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읽은 후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힘이 생긴 기분이다. 물론 생각의 습관이 쉽게 바뀌는는 것은 아니기에 지금도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중심을 잡을 수 있지만 말이다.
그 외에 런던에서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기획과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옷장을 뒤집어 정리하면서 정리와 패션에 관한 책도 속독으로 빠르게 읽어 넘겼다. 그리고 그 끝엔 결국 ‘내 생각과 취향’을 정립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결론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나의 무기가 될 것이고, 주변을 정리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스스로에 묻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무슨 색을 좋아하지?’. ‘나는 이 일에 어떻게 생각하지?’, ‘나는 어떤 공간을 좋아하지?’. ‘나는 언제 행복하지?’ 그동안 두서없이 뿌려온 나의 점들을 하나씩 하나씩 선을 그어 이어가며 멋진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2024년 나의 책장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했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내면을 파고드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40살을 앞두고 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씁쓸하면서도 올해는 내 마음속에 심지 곧은 나무를 심겠다는 나의 새해 다짐에 부합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다.
마침 오늘 2025년 다이어리가 도착했다. 새해의 책장은 어떻게 채울지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