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날은 흔치 않아

에필로그

by 박규리


이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나는 어떤 결론을 향해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날의 순간에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바쁘게 지나가느라 붙잡지 못했던 장면들, 아무 일 아닌 것처럼 흘려보냈던 하루의 일상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보니 마음에 오래 남아 있던 순간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을 수용하기보다는 다음을 향해 있었다.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 더 배워야 한다는 조급함, 멈추면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 속에서 하루를 재촉하며 살았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멈춤 앞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 의미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 없어 보이던 시간들 속에도 이미 충분한 삶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아침에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발바닥에 전해지던 감각, 익숙한 거리의 풍경, 누군가와 나눈 짧은 인사, 배우는 자리에서의 작은 깨달음, 몸을 움직이며 웃음이 새어 나오던 시간들. 그 순간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처럼 연약했지만, 사실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단단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동안 너무 쉽게 지나쳐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이 브런치북에 담긴 이야기들은 대단한 성취의 목록이 아니다. 오히려 잘 보이지 않았던 순간들, 나중에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 사건들, 그때는 그저 지나가는 하루였지만 다시 바라보니 귀하고 고마운 장면들이다. 한 편 한 편의 글을 쓰며 나는 삶을 바꾸기보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모든 순간이 특별해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지나간 모든 순간이었기에 이미 소중해졌다는 것을. 잘한 날도, 서툴렀던 날도, 멈춰 서 있던 시간도 모두 나를 여기로 데려온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특별한 날만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소중하게 맞이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 글들을 덮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예전처럼 무심히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시간, 이 숨결까지도 한 번쯤 마음에 담아보려 한다. 그렇게 살아내는 날들이 쌓인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삶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안다. 이렇게 좋은 날은 흔치 않은 것이 아니라, 알아보지 못했을 뿐 늘 곁에 있었다는 것을.